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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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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123

[신앙의 해 -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

고성균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은 유일신을 믿고 섬기는 종교입니다. 이 가운데 그리스도교는 약 2,000년 전 이스라엘 나자렛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자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와 타 종교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믿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과 같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그리고 우리의 답은 시몬 베드로의 대답과 같습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서의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톨릭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는 먼저,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이 바로 복음(기쁜 소식)이며 교리교육의 핵심이라고 가르칩니다(422-429항).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주님’이라는 이름을 지닌 분이시며(430-455항),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강생하신 ‘말씀’이십니다(456-463항). 그러기에 그분은 하느님 아들의 단일한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이 결합되어 있는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분입니다(464-483항).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되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484-511항). 그분의 전 생애는 크나큰 신비이며, 우리는 이러한 신비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512-521항). 예수님의 탄생, 공현, 어린 시절, 세례, 유혹받으심, 하느님 나라의 선포, 제자들을 뽑으심, 거룩한 변모, 예루살렘 입성 하나하나가 연속되는 가르침이며 신비입니다(522-570항).

예수님의 공생활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 ‘성전’, ‘유일신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574-594항).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에 의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십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595-630항).

당신의 신적 위격과 결합된 영혼으로 저승에 가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으며, 사흗날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이를 통해 우리 부활의 근원이 되셨습니다(631-658항).

그리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당신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659-667항). 아직도 살아계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교회를 통하여 다스리고 계시며, 마지막 날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668-682항).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교리서가 인용한 말씀들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가운데 일부를 정리해 봅니다(94쪽 표 참조).



사실, 신구약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습니다. 교리서는 생 빅토르의 위고의 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성경 전체는 단 하나의 책이며, 그 하나의 책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교리서, 134항).


구원에 필요한 유일한 이름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사도 4,10-12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문 곁에 있던 불구자를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고 솔로몬 주랑에서 설교한 다음에, 최고의회에 잡혀가서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 앞에서 한 증언의 일부분입니다.

사도들이 최고의회로부터 받은 질문은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사도 4,7)였습니다. 최고의회는 사도들로부터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대답을 듣고도 아무 반박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병이 나은 사람이 명백한 증인으로서 사도들 곁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우리가 구원받는 데 필요한 이름인 것은, 이 이름의 뜻(주님[야훼]께서 구원하신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가운데 ‘예호수아, 예수아, 또는 예슈’를 그리스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이름은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지만, ‘나자렛 사람’ 예수는, 특히 유다 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부활하신 그 ‘예수’는 단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교회는 이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구세주이자 왕인 ‘그리스도(메시아, ‘기름부음받은이’란 뜻)’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 본문보다 앞에 나오는 사도 2,36에서 베드로 사도는 성령을 받고 다음과 같이 설교합니다.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이 ‘내 주님’이라고 일컫는 이(사도 2,34 참조)는 바로 야훼께서 당신만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이름(주님)을 주신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주님(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

우리는 ‘성자’에 대해서 생각할 때, 때로는 그분이 진정 인간 역사 속에서 우리와 똑같이 되신 ‘사람’이셨다는 것을 잊기도 합니다.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요 말씀이시며, 육체를 취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상징적인 사건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상징적’ 사건이 아니라, ‘실재적’ 사건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류 역사에 존재하셨던 단 한 사람인 ‘나자렛 예수’이셨고,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진리를 깨닫고 따르는 것을 넘어 단 한 사람 ‘나자렛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나자렛 예수’라는 단 한 사람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믿고 고백한다. 그분은 …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한 딸에게서 유다인으로 태어났으며, 직업은 목수였다.

…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아드님이시고, ‘하느님에게서 나오셨으며’(요한 13,3), ‘하늘에서 내려오셨고’(요한 3,13; 6,33),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고백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4.16)”(교리서, 423항).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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