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2001년 4월 주일 어린이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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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1-03-24 ㅣ No.242

사순 제 5주일(요한 8,1-11)

 

어린이 여러분, 혹시 올가미를 본 적이 있어요?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나쁜 사람들이 산에 사는 동물들을 잡기 위해 올가미 놓은 것을 보았어요.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미끼로 놓고 그 둘레에 올가미를 쳐서 아무것도 모르고 미끼를 먹던 동물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버리는 아주 무서운 사냥 도구예요. 동물들이 도망가려고 하면 할수록 올가미는 더욱 세게 조여져요. 그래서 발목이나 목덜미에 깊은 상처가 난 동물들을 치료하고 풀어주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가끔 사람들도 가끔 다른 사람에게 올가미를 놓아요. 철사가 아닌 아주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내서 어떤 대답을 해도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그런 올가미예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올가미에 빠지셨어요. 예수님을 미워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여쭈었어요. 만약 예수님께서 여자를 벌주라고 하시면 로마법을 어긴 죄로 로마총독에게 고발할 수 있고, 또 용서해 주라 하시면 율법을 무시한 비윤리적인 분으로 비난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올가미처럼 어렵고 힘든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나쁜 속마음을 모두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들이 원하던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잠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시다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사람들은 순간 찔끔했어요. 세상에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만약 여자에게 돌을 던진다면 자기는 한 번도 죄를 진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거든요. 결국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죄를 진 여자에게 말씀하셨어요.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예수님의 슬기로운 판결과 용서에 함께 박수를 보냅시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루가 22,14-23,56)

 

오늘부터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성주간이 시작되었어요. 이 거룩한 한 주일의 시작을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에요. 그래서 미사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복음을 들었고, 또 미사 중에 아주 긴 수난복음을 들었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드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군인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으시고 사형판결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긴 내용이었어요.

 

오늘의 두 복음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아요. 첫 번째 복음에서 사람들은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놓고 손에는 나뭇가지를 들고 흔들며 큰소리로 예수님을 환영했어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찬미 받으소서." 그런데 두 번째 복음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은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 앞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며 큰소리로 외쳤어요. 정말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은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다짐하고서도 자주 변덕스럽게 약속을 어긴 적이 많았어요. 바로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누가 나한테 약속한 것을 이렇게 쉽게 지키지 않으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예수님도 그러셨을 것이에요.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까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며 기도하셨어요.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의 변덕스러움을 뉘우치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꼭 기억하는 어린이가 되도록 해요.

 

 

예수 부활 대축일(요한 20,1-9)

 

우리 어린이들은 '공동묘지' 하면 무슨 생각이 나요? 혹시 밤마다 귀신 울음소리가 나고 도깨비  불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으시시한 모습이 생각나나요? 가끔 만화영화나 영화 속에 이런 모습이 등장하곤 하지요.

 

그런데 공동묘지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수님을 믿어온 서양 그리스도인들은 마을을 건설할 때 한 가운데 성당을 짓고, 바로 옆이나 뒤에 마을사람들을 위한 묘지를 만들고, 앞에는 넓은 광장을 마련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마을 축제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주일이면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집에 가는 길에 묘지에 들러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산책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지를 장식했어요. 자기가 사는 동네 근처에 공동묘지가 생긴다고 하면 머리에 띠 두르고 피켓 들고 절대 안 된다고 데모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빈 무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어요.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몇몇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무덤을 막았던 커다란 돌문이 열려 있고 무덤 안에는 아무도 없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은 한쪽에 잘 개켜져 있었어요. 바로 예수님께서 이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부활하신 것이에요.

 

오늘이 바로 예수 부활 대축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 예수님의 영광을 경축하는 날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무덤을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제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당 옆에 공동묘지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있겠죠. 한 가지 더 들자면, 서양의 많은 대성당들은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세워졌어요.

 

 

부활 제 2주일(요한 20,19-31)

 

우리는 눈을 통해 이 세상 모든 것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도 있어요. 또 요즘은 텔레비전, 신문, 잡지, 인터넷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매체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을 가장 확실하다고 믿고 살아요.

 

그런데 때로는 눈을 지긋이 감고 조용히 기도하기도 해요. 왜 기도할 때는 조용히 눈을 감을까요? 그것은 우리 눈으로는 직접 볼 수 없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예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유대인들이 무서워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며 다정스럽게 인사하셨어요. 제자들은 무척 놀랐지만 금방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하지만 토마 사도는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자랑하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도 전혀 믿지를 않았어요. 한 주일 후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토마에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갓난아기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적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품안에 있을 때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아기는 자라면서 직접 자기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엄마 아빠로부터 들음으로써 알게 되요. 직접 본 것이 아니라고 해서 의심하지도 않아요. 그것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에요.

 

 

부활 제 3주일(요한 21,1-19)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데모를 했어요. 그러다가 수십 명의 학생들이 교무실로 몰려갔어요. 흥분한 학생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선생님들은 자리를 피하셨어요. 하지만 한 선생님은 끝까지 교무실에 남아 계셨어요. 그리고 큰소리로 학생들의 잘못을 야단치셨어요. 선생님의 야단에 잠시 움찔했던 학생들은 다시 흥분해서 버릇없이 선생님께 마구 대들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두 손으로 눈을 꼭 가리고 떼지 않으셨어요.

 

나중에 문제가 해결된 후 선생님께 대들었던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선생님께 용서를 빌러 왔어요. 그리고 왜 두 눈을 가리고 계셨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선생님은 혹시라도 대드는 학생들에게 나쁜 감정을 갖게 될까봐 일부로 눈을 가리고 계셨다고 하셨어요.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예수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자기들도 죽을까봐 무서워서 대부분 도망갔어요.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고기를 잡으며 살고자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배반한 잘못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나오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어요. 그리고 호숫가에서 예수님께서 요리해주신 물고기와 빵을 다정하게 나누어 먹었어요. 예수님을 제자들을 야단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들을 위해 손수 음식까지 마련해 주셨어요. 그 때 제자들은 3년 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나를 따르라" 하며 제자로 불러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다시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어요.

 

<이 글은 소년 2001년 4월호에 "주일마다 기쁜 소식"이란 주제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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