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슬픈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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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cathol7] 쪽지 캡슐

1999-04-13 ㅣ No.310

추기경님, 슬픈 소식입니다.

저와 저희 공동체가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스러운 군인이라고 한다면 전사자가 하나 나왔다고 할까요? 작년 10월에 암말기 판정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 투병하던 저의 후임자 조선우 가브리엘라가 지난 주 목요일에 시한부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그 생명의 자리를 옮겨 갔습니다.

  저의 후임자로서 제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했던 아이였고 주님의 복음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제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아이였는데 더 이상 지상에서는 만날 수도 없고 만져 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 요며칠 동안 저를 매우 괴롭힙니다. 이제 겨우 나이 스물 셋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 견디기 어렵고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긴 머리 휘날리며 옛날처럼 "오빠"하며 뛰어 올 것만 같을 때 그 아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투병 중일 때 좀더 자주 찾아가 보고 더 많이 사랑해 줄 걸 하는 생각만 간절합니다.

 

 갑자기 상황이 나빠져서 가브리엘라의 임종을 지켜 주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가브리엘라 시신을 염할 때 가브리엘라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추기경님께서 주셔서 제가 썼던 묵주를, 알이 네 개나 빠진 향나무 묵주를 가브리엘라 손에 쥐어 주고 나왔습니다.  9일에는 수원 화서동 성당에서 가브리엘라를 주님께 보내는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화장된 가브리엘라를 김대건 신부님이 계신, 그리고 투병중에 가브리엘라가 자주 갔던 미리내 성지 소나무 밭에 뿌리고 돌아왔습니다. 너무도 아쉬워서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서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가브리엘라의 뼛조각을 몇 개 주워서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크게 외치고 또 '다시 오겠다'고 외치고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며 내려왔습니다.

 

 가브리엘라의 죽음을 통해서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제 것이 없다는 것, 제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사랑했고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조차도 하느님께서는 일순간에 거두어 가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저희 fiat회원들은 더 일치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 할 때 오히려 더 많은 환난에 부딪혀서 마침내는 주 하느님만 의지하게 되었다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이 제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형 선고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고린, 1:8-9)     

 

인간적인 마음은 너무나 슬프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극복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선교에 있어서 오른 팔을 잃었지만 그 빈자리를 성령께서 더 크신 능력으로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추기경님 안녕히 계세요.

 

추신:

 지난주에 이재을 사도 요한 신부님이 추기경님께서 외국에 나기시기 전에 김대군 신부님께  저와 연락을 부탁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장례를 치르느라 경황이 없어서 김대군 신부님께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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