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성당 게시판

이런 강론을 해야지!(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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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2-08-13 ㅣ No.1797

 

 

2002, 8, 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마태오 18,15-20 (형제가 죄를 짓거든 고쳐 주라)

 

"당신의 형제가 [당신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당신과 그만이 마주하여 그를 책망하시오. 만일 그가 당신의 말을 들으면 당신은 그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당신과 함께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시오. 두 증인이나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이 확정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그들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시오. 교회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거든 당신은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시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여러분이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요,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입니다."

 

"거듭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여러분 가운데서 둘이 땅에서 합심하여 청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사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에 대체로 무감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신부님! 오늘 강론 참 좋았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한편으로 쑥스러우면서도 내심 기분은 참 좋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기왕이면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평가보다 참으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저의 부족한 강론을 들으면서 신자분들이 기쁨과 희망을 가졌는지, 아니면 슬픔과 절망을 느꼈는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할 때 제 자신에 대해서는 좀 더 냉정해지려고 하고, 강론을 준비할 때는 무엇인가 신자분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끔 애를 쓰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사실 사제로서 제가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도, 왜 그렇게 다른 이들의 부족함이 눈에 잘 들어오는지, 그러다 보니 강론 시간이나 공지 사항 시간에 질책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언제가 '강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묵상을 하면서 이런 강론을 해야 한다고 정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을 주는 강론, 기쁨을 주는 강론, 자신을 찾게끔 이끄는 강론,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강론, 부담을 주지 않는 강론...'이 그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만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니 두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고요.

 

자칫 질책 섞인 강론이 되면 기쁘게 함께 모인 자리가 어색해지기 십상입니다. 질책에서 벗어난 분들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때로는 득의양양한 기분까지 가질 수 있겠지만, 질책의 범위 안에 들어 있는 분에게는 그 자리가 말 그대로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워 미사만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픈 심정일 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내심 서로 손가락질하고 평가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하나인 교회의 보이지 않는 분열이 이미 그곳에서 시작이 되는 지도 모르고.

 

그럼 칭찬 가득한 강론을 한다면 어떨까요?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들은 그 칭찬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갈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지요. 서로 기분 좋게 자신을 찾고 새로운 활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지요.

 

함께 있는 자리, 그리고 특별히 주님의 이름으로 한데 모여 있는 자리에서는 정말로 기쁨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고, 그 가운데 미사 강론이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강론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제로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니 어쩌면 간곡한 부탁처럼 들립니다. "당신의 형제가 [당신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당신과 그만이 마주하여 그를 책망하시오" 라고. 바로 이것이 한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길일 것입니다. 부족한 한 사람, 잘못한 한 사람, 그 사람은 결코 주위 사람들의 가시 돋친 시선이나 공개적인 질타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수치심 없이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는 공동체대로 몇 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이래저래 갈라지는 아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요.

 

같은 믿음 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벗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믿는 이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사명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사제로서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살림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유학 준비로 말미암아 사목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이로서 믿는 이들과 함께 하는 공적인 시간이 매일 매일의 미사 정도이기에, 미사 안에서, 특별히 강론을 통해서 살림의 길을 걸으며 살림의 길로 이끌고 싶은 소박한 마음 가져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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