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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이야기 15[어느 신부님의 동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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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2-04-30 ㅣ No.3244

 

 

게시자: 손희송(hsson) 정말 장한 내 동창!

게시일: 2002-04-29 21:12:13

본문크기: 7 K bytes 번호: 32553 조회/추천: 537/69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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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몇 년만에 동창생 K와 통화를 했습니다.

 

 먼저 그 동창생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야겠네요.

 

그 동창생은 제 고향인 경기 북부의 어느 시골에서 중학교

 

(남녀 공학이었지요) 다닐 때 한 동네에 살던 여자 동창생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 있는 소신학교(성신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서 고향을 떠나 살았기에

 

그 동창생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후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20여년이 지난

 

1993년 봄에 어떻게 어떻게 연락이 돼서 중학교 때 여 동창생들 몇이

 

저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K 동창도 함께 왔지요.

 

저는 그때 서울 어느 본당에서 주임 신부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그 동창들은 학교 다닐 때에는 신자가 아니었는데

 

그 사이에 모두 영세해서 성당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자가 되고 보니 중학교 때부터 신부되겠다고 설치던(?) 제가

 

생각이 났고, 그래서 신부가 된 저를 한 번 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오랜 만이라서 반가우면서도 서먹 서먹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좀 나아지더군요.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서 다음에 또 만나자고

 

약속을 했지만,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한 채

 

또 세월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두 주 전인 4월 중순 다른 동창생으로부터

 

K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갑자기 K의 맏딸이 세상을 떠났다고요.

 

26살짜리 다 큰 딸이 몸이 좀 아파서 근처 큰 병원에 갔는데,

 

주사 맞다가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곧 운명을 달리했다고요.

 

K는 너무 기가 막혀서 실성한 사람처럼 되버렸다고요.

 

자기도 소식을 듣고 급히 갔는데 위로로 제대로 못해주고 왔다고요.

 

그래서 신부인 제가 방문해서 위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가겠노라고 대답은 못했습니다.

 

신부로서 부끄럽지만, 그런 엄청난 일을 당한 동창을 딱히

 

위로해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딸 아이의 본명만 알아내서 미사 중에 기억하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오전에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습니다.

 

’소식 들었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을 건넸더니

 

지친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신부님, 나 어떻게 해요’하고 묻더군요.

 

경과를 좀 알려달라고 했지요.

 

그 동창 얘기를 그랬습니다.

 

’정말 어려웠지만, 일을 낸 의사를 용서하기로 했다.

 

내 딸 빈소에 와서 잘못했다고 문상을 하면 불문에 붙이겠다.

 

그 의사가 내 요구대로 해서 용서했다.

 

그 사람인들 사람을 일부러 죽이려고 했겠느냐?

 

살리려다가 그런 것인데... 그 사람 잡아넣어봐야

 

내 딸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의사가 문상 와서 자신도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의사 그만 두겠다고 했는데, 말렸다.

 

앞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하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힘들어요,

 

신부님. 89년 영세 이후 성당에 열심히 나갔는데,

 

하느님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원망스러워요...".

 

 

 나름대로 이런 저런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속으로 ’너 참 장하다.

 

신부인 나보다 백 배 더 낫구나.

 

내가 너의 입장이라도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요.

 

다 키운 딸이 갑자기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쉽게 용납이 되겠습니까? 용서는 했다고 했지만,

 

그 의사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원망스러운 감정이 어떻게 한 순간에 사라지겠습니까?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어쩌면 눈을 감는 날까지 그 아픔은 사라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제 동창 K가 지금의 큰 슬픔에서 일어나

 

다시 굳건하게 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잃고 그분의 무덤 앞에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큰 슬픔을 딛고 다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슬픔 때문에 견디기 어려워 하는 이들이 위로와 힘이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 생활은 제가 훨씬 먼저 시작했고, 신부까지 됐지만,

 

저를 부끄럽게한 그 큰 용서를 하느님께서는 값지게 보셔서

 

K를 잘 이끌어 주시리라, 좋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용서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들이 교회 곳곳에 보이지 않게 여럿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우리 교회를 거듭 나게 만듭니다.

 

맑은 샘이 되어야 할 교회가 복구 불가능한 흙탕물이 되었다,

 

흙탕물로 더럽혀진 샘을 아예 묻어버리라고 거세게 외치는 분들이 있군요.

 

교회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너무 실망이 크면

 

그런 격한 반응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애써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더럽혀진 샘의 한구석에서 맑은 물이 뿜어나온다면,

 

심하게 절망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맑은 물 한 줄기를 제 동창 K에게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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