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성당 게시판

[아띵]퍼온글... 두봉 주교님!

인쇄

이형성 [cattus] 쪽지 캡슐

2002-06-21 ㅣ No.2502

+. 찬미 예수님

두봉 주교님에 대한 글입니다.

 

 

[만나고 싶은 종교인] 한국 사제생활 48년 두봉 주교  

높은 자리에 올랐다가 일선에서 물러선 종교인을 만날 때면 속인의 짧은 생각이지만 공허감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먼저 궁금해진다.

1990년 "한국의 천주교 교구장은 가급적 한국인이 맡아야 한다"며 정년 15년을 앞두고 안동교구장 자리를 내놓은 두봉(杜峰.73.본명 르네 뒤퐁.사진)주교를 만나러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의 행주공소를 들어서는 순간 그런 호기심을 품었던 맘이 부끄러워진다.

행주성당이라는 간판만 내리면 아무도 성당이라는 사실을 모를 그 곳에 딸린 가건물에 거주하며 두봉주교는 능곡 본당 신부를 도와 사목 활동을 펴고 있었다.

"궁궐에 살다 보면 왕이 되고픈 맘이 생긴다고 하지요. 그렇듯 오막살이에 살면 평범한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지요. 가건물 주교관에 사는 것은 늘 나보다 못한 사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가건물이라도 두봉주교에겐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창이 아주 큰게 인상적이다.

성당엔 울타리도 없다.

그래서 이웃들은 언제든지 주교의 손을 잡고 고민을 나눈다.

두봉 주교 본인도 이제 마을 사람으로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은퇴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은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이곳에서 미사를 올리고, 환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장례를 돌봐주고…. 본당 신부를 대신해 이쪽의 교구를 돌봐 주는 보조자의 입장입니다. 아파트를 얻어 산다고 한번 상상해봐요. 사람 만나기도 어려웠을 테고…. 행운이지요." 안동교구장 시절 문화.교육.농민사목을 활발히 펴다 79년에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기도 했던 그지만 지금은 조용히 성직자와 수도자, 신도들의 피정을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

"피정은 자신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놓고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헤아려 보는 시간이지요. 많은 사람이 영성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게끔 돕는 길잡이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두봉주교가 주교서품을 받은 것은 안동교구가 생기던 69년이었다.

그 때도 그는 "외국인은 한국인 밑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지 권력을 가져서는 곤란하다"며 몇차례 임용을 고사했었다.

이런 정신은 그가 소속된 파리외방전교회의 이념과 일치한다.

19세기 여러 나라가 선교회를 내세워 종교를 식민개척의 수단으로 동원하는데 맞서 교황청이 설립한 선교회가 파리 외방 전교회다.

한국 천주교의 성인 103인 중 10명이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이었다.

아무리 순명의 삶을 사는 성직자라지만 고희를 넘긴 나이로 외국에 산다는 것은 남다른 감상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이제 99% 한국 사람이에요.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래도 고향길이 뜸해지는 법입니다요. 3~4년에 한번꼴로 프랑스를 찾지만 이젠 고향이 오히려 불편해요. 간판이나 광고 문구에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이 많이 나와요. 한국이 더 편하니까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웃으며 말하면서도 두봉주교는 "나이가 더 들어 운신이 불편해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국사랑이 큰 그에게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좀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누워 침뱉긴데…. 본래 한국사람이 그랬던 것 아닌데…, 인신공격이 너무 심해요. 지금의 정치상황 정상이 아닙니다. 옳은 건 찬성해야되는데 상대방이 하거나 말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반대하는 것은 너무 섭섭해요. 그리고 경제에 너무 치우쳐 있어요. 사람에게 중요한 게 어디 돈뿐입니까. 인간미가 많이 사라졌어요. 사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부정부패 고발도 좋지만 꼭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 같아요. 온통 나쁜 이야기에요. 양심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마저도 그런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고 올바른 삶을 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까워요." 월드컵 이야기로 옮겨가 "프랑스가 탈락해 섭섭하시겠습니다"라고 묻자 두봉 주교는 "교만하면 그렇게 되는 법입니다."라며 웃었다.

파리 외방 전교회 한국지부장으로 프랑스 손님을 만나러 서울 나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어떤 사람은 주교를 잘못 듣고 교주라고 부르기도 한다거나 오늘은 불어를 실컷 해보게 됐다며 자주 웃는 두봉 주교는 분명히 가슴이 포근한 한국 할아버지였다.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빌며...

 

                  이태원의   썰렁이     아오스딩

 



3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