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샘무리제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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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모 [leebm] 쪽지 캡슐

1999-12-01 ㅣ No.518

바쁘다는 핑계로 오늘에서야 샘무리제 후기를 올린다. 우선 샘무리제를 준비하신 모든 준비위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빼먹을 수 없겠다. 샘무리제가 모든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여야 한다는 대전제는 동감하지만, 일회성으로 놀고 마시는 축제의 장보다는 뭔가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피정 형식으로 치뤄진 샘무리제는 내 취향에 꼭 맞는 행사였던 것 같다. 일년의 이맘때면 몸도 마음도 지쳐버리고, 한해를 마감하느라 정신없이 뛰다보면 자칫 신앙에 소흘해질 수 있는데 이때 이러한 행사가 있었다는건 매우 시기 적절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전술했듯이 이번 샘무리제는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다시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금요일의 이병화 신부님의 강론은 매우 기억에 남는다. 특히 창세기와 욥기를 통한 말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늘 신앙과 현실 속에서 갈등을 느끼고 방황하고 있지만, 우리가 찾고자 하는 자유는 한계속에서의 자유여야 한다는 말씀. 그냥 들으면 젊은이의 뜨거운 피를 무시한 노예적인 발상일 수도 있겠지만, 내 안에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그런 한계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의 자유를 찾을때 자유롭고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은 언제나 가질려고 하고, 언제나 최고가 되려고 아둥바둥하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던가? 돈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돈을 추구하고, 사람에게서 자유롭고 싶어서 나만의 사람을 찾고...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라는 것이었던가? 그야말로 무소유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가난한 것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욥기를 곰곰히 들여다본다.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욥이 자기가 가진 것들을 모두 잃고서 울부짖는 그 호소들, 그 기도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현실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될지, 비록 울부짖기는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뢰는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될지, 그렇게 시련만 주시는 하느님은 필요없다며 돌아서는 사람이 될지...? 하느님께 대들었던 사람, 욥. 그러나 그런 반항의 강도만큼 더 깊이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을 사랑했던 사람 욥. 그런 욥이 참 친근하게 느껴진다.

 

금요일의 강의가 설탕같이 달콤한 강의였다면, 일요일의 김지형 교수님의 강의는 사탕같은 강의였다. 입안에 놓고 우물우물 하면 할수록 더욱 단맛이 우러나는 강의. 성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쩌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성모님의 위상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용감한 여인이신 성모님, 그분-강의를 듣다가 어떤 형제의 대답에서 연유한-의 말을 빌자면, 독한 여인(?)인 성모님-강의를 안들으신 분은 오해없으시길...- 그런 분이 우리 등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하고 억척스러운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느낌이다.

 

미사 도중에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교수님 말씀대로 나는 세상을 향해 알몸으로 손을 벌리고 계신 그분의 모습에서 전능하신 분의 권능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지만, 그렇게 나약하신 주님의 모습만은 거부하고픈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떤이는 인간의 손에 의해 허무하게 돌아가신 주님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하고 나약한 자가 되기 싫어하는 나의 생활상 또한 그 어떤이와 마찬가지로 나약한 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것이 아닐까? 결코 남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십자가 위의 주님의 모습에서 그분의 권능을 느낄 때 십자가의 주님을 이해하고 그분의 한없는 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 같다.

 

한해의 마지막, 이십대의 마지막 겨울, 새천년을 눈앞에 앞두고 별 상념이 다든다. 더욱이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요즈음, 그런 갈증에 시원한 샘물이 되어준 것 같은 강의들이었기에 더더욱 고맙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마련해준 샘준위 여러분과 강의해주신 두분께 주님의 축복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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