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2001년 6월 주일 어린이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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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1-05-25 ㅣ No.268

성령 강림 대축일(요한 20,19-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용감하게 복음을 전했어요.

 

제자들은 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냐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이시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그토록 힘없이 돌아가셨다고 외쳤어요.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이 드러나고 거기서부터 하느님과의 일치, 바로 우리의 구원이 가능해졌음을 전한 것이어요. 그곳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들 제자들이 하는 말뜻을 알아들었어요.

 

다른 나라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여러 나라의 아기들, 어린이들, 어른들이 각 방에 모였어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기들은 어차피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어린이들 역시 자기 나라말을 하고는 있지만 서로의 눈빛과 몸짓을 보면서 금방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어른들 방은 조용했어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나를 깔보지는 않을까?' 하며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애써 눈빛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우리가 서로 하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기들이나 어린이들 같은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해요. 서로의 다른 점을 생각해 꼭꼭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해요. 그런데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에요.

 

 

삼위일체 대축일(요한 16,12-15)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는 미사나 기도, 식사를 전후해서 성호경을 바칩니다. 성호경은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삼위일체 교리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어깨는 서로 구분은 되지만 결코 다른 세 명의 몸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의 몸이에요. 이와 비슷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구별은 되지만 셋이 아니라 한 '하느님'이라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예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어요.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며, 우리를 도와 세상 끝날까지 당신께서 들려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잘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한 분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삼위일체 교리는 이해하기 참 어려워요. 왜냐하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1 + 1 + 1 = 3"이라고 배웠고 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3'이 아니고 '1'이라니?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를 신비라고 해요. 비록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믿고 고백하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은 굉장히 많아요.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삼위일체는 신앙의 신비, 바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예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분명 계시고, 또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루가 9,11ㄴ-17)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과연 이것으로 몇 명이나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요? 1인당 빵 하나에 물고기 조금씩 하면 겨우 다섯 명 정도가 배고픔을 채울 수 있겠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다섯 명이 아니라 남자 어른만도 5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 두 광주리나 음식이 남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이런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어요.

 

'빵과 물고기의 기적!' 이것은 예수님처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돼요.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아파하고 내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과 만났을 때 기적은 언제든지 우리 가운데서 시작될 수 있어요.

 

이탈리아의 한 소년이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돌보며 사는 슈바이처 박사님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어요. 소년은 박사님을 돕고 싶었지만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금통을 톡톡 털어 산 아스피린 한 병을 공군 사령관에게 보내면서, 혹시 아프리카를 지나가는 비행기가 있으면 낙하산으로 슈바이처 박사님께 전해달라고 편지를 썼어요. 참 황당한 내용이었지만 공군 사령관은 소년의 착한 마음에 감동되어 이 사실을 방송에 내보냈어요.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어요. 방송국과 군부대에 아프리카에 보내 달라며 많은 사람들이 각종 의료용품을 보내왔어요. 이렇게 해서 소년의 착한 마음은 많은 이웃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어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는 예수님께 "지금 제가 가진 것으로는 저 하나 먹기에도 부족해요" 하고 외면한다면 '빵과 물고기의 기적', 우리 영혼을 살리는 참된 음식인 성체성사의 신비는 우리 안에서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말 거예요.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루가 1,57-66. 80)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 해 스무 살에 군수가 된 선비가 어느 날 이름 없는 한 스님을 찾아갔어요. 그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서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하고 물었어요. 그러자 스님은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선비는 어린 아이도 다 아는 이치라며 오히려 화를 내고 가려 했어요.

 

스님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따뜻한 차를 대접했어요.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 차를 따랐어요.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그러자 스님은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하고 따끔하게 충고를 했어요. 부끄러워진 맹사성은 얼른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그만 문에 부딪히고 말았어요. 그 때 스님이 웃으시며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오늘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며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이에요. 사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만 해도 백성들 사이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또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요한은 진정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백성들 앞에서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어요. 자기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앞세웠던 참 신앙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함께 축하해요.

 

<이 글은 소년 2001년 6월호에 "주일마다 기쁜 소식"이란 주제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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