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푸코일보 제4호 누굴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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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락 [cyscus] 쪽지 캡슐

2000-08-08 ㅣ No.3536

      푸 코 일 보  제4호        

 

 사 훈 : 단무지  

                             단 - 단순

                             무 - 무대포와 무자비

                             지 - 지입쩍 (발음:찝쩍)

         창간정신 : 신앙업계에 바른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자고요.

주의-유사언론 개코일보를 주의하세요

 

 

 

요즘 항간에는 각종 살리기 운동이 장마철 중랑천에 빗물 넘치듯 범람하고 있다.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동강 살리기 운동을 비롯하여 총선을 강타한 유권자 권리 살리기(?)운동, 그리고 현재 광복적 특사를 단행하면서 정치권에서 암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김헌칠(김앵삼 전 대통령 차남)살리기 운동까지 그 범위와 내용은 실로 다양하다. 그 가운데 특정 인물 살리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어서 신앙업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게시판을 통해 손모씨(36세,남,미아동)가 게시한 진정서(게시판 3505번)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진정서를 통해 손모씨는 한 특정인사를 거론하면서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그 인사와의 줄대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신앙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대로 손모씨와 상모씨(36세,남,종교서비스업)의 유착행위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이번엔 고객들의 비난을 의식한 듯 아주 새롭고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모든이들의 모든것이 되겠다는 선언과 함께 종교서비스업계의 지도부로부터 제사장자격을 취득한 상모씨와 각종 행사를 통해 업계에 얼굴알리기를 시도해온 손모씨의 천인공노할 유착은 이미 앞서 본보 제1호(게시판 3275호)에서 지적한 상교(商敎)유착의 전형에서 벗어나 건강이라는 수단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유착을 시도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비난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 보려는 가증스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태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손모씨의 관점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기존의 시도들이 고객들의 비난을 통해 원천봉쇄라는 철퇴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들을 연구, 동원하는 불구의 정신(이런경우는 불굴의 정신이라 칭하기가 매우 부적절함)을 통해 어떤 위기에도 유착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게시판 3505호에 게재된 손모씨의 논점을 분석해 보면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일획일획을 특수분해함으로써 손모씨와 상모씨에게 아주 잔혹한 찝쩍거림을 통해 더이상 순진한 고객들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재기불능의 상태에 이르도록 해 보겠다.

 

첫째, 내일 모래면 40대를 바라보시는 허약한 상신부님 살찌우는 방법?

제목에서부터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상모씨의 나이를 대략적으로 제시하면서 그의 살(육류)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상모씨가 매우 허약하다는 것이다. 누가 상모씨를 보면서 허약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상모씨가 허약하다는 논리에 감동을 받을 이는 아마 문제를 제기한 손모씨 이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이는 흡사 ’똥파리도 요정이다’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는 사실을 손모씨만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또한 손모씨는 총 5 가지의 지극히 강압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면서 제목에는 아주 부드러운 표현인 방법이라는 단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엄연한 언어 도단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자신이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 자신이나 쌀찌울 것이지 왜 자신은 만년 이쑤시게의 형상을 하고 있는것인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회식자리에서 절대로 신부님께 술을 권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정(情)문화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논리이다.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지 않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자기의 술을 자기가 알아서 챙겨먹어야 하는 분위기...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왜 손모씨는 서로 술을 권할 자유마저도 제한하려 하는가? 술을 권했을 때 상대방이 거절하면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는것이 우리 신앙업계 고객들의 현실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바로 술자리에서 상모씨를 바보로 만들려는 음모이거나 아니면 평소에 알콜을 과다하게 섭취하는 상모씨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사전에 방지해 보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부분이다. 권하는 술을 마실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상모씨의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바이다. 상모씨가 어린애인가?

 

셋째, 신부님이 잔을 주시면 10분 후, 술을 7부능선만 부어드린다?

손모씨와 상모씨의 유착의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내용이다. 또한 앞의 주장과는 논리적으로 절대적 모순에 빠지는 대목이다. 고객들은 상모씨에게 잔을 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모씨는 친히 고객들의 잔을 걱정해 주는 인정...가히 감동적이다. 또한 권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10분 후 7부능선이라도 부어드려야 하는 고객들의 고뇌...지극히 인간적인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손모씨는 자신의 주장을 바로 번복하는 것일까? 그것도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의 산물인 7부능선이라는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까지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모순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어떤 형태로든 술을 제공해야 하는데 문제는 바로 나중에 떠안게 될 음주 후의 비용에 있는 것이다. 사회적 전통에 따르면 소주는 8부능선이 원칙이요, 맥주는 500cc의 경우 거품이 2-3cm에 이르는 것이 통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모씨는 7부능선을 고집함으로써 1부능선에 대한 비용절감효과를 노려 볼 수 있고, 또한 10분이라는 시간적 간격을 강요함으로써 알콜과다섭취로 인한 비용손실을 보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넷째, 성가대 레지오 교사회는 회식자리에서 필히 신부님으로 부터 5미터 이상 떨어져 술 마실 것 (단 수사님은 마구마구 부어도 됨)?

이는 또 무슨 논리인가? 과연 업계에서 상모씨와 함께 지금까지 술자리를 함께 한 고객이 누구였단 말인가? 손모씨가 주장하는 바로 그들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상모씨로부터 그들을 분리수거함으로써 상모씨를 업계로부터 왕따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더군다나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애꿎은 수사님이라는 가당치 않은 존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미 손모씨와 몇차례 접선을 한 탓에 약간의 면식을 튼 수사라는 자를 이용함으로써 업계에서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온전하게 수사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획책하는 천인공노할 망언을 일삼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의도는 손모씨의 주장가운데 마구마구 라는 표현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냥 부어도 되는 술을 수사는 상모씨에게 마구마구 부었으므로, 문제는 수사에게 있다라는 논리를 주장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다섯째, 각 단체는 신부님 술상무를 필히 둘것?

필시 술상무라는 직함은 우리 신앙업계와 맞지 않는 용어이다. 온갖 방법을 총 동원해서라도 거사를 성공시키려는 일반사회업계의 풍토인 술상무라는 제도를 신성한 우리 신앙업계에 도입함으로써 신앙업계의 분열을 획책하려는 의도로 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다. 만일 손모씨의 주장대로 그렇게 한다면, 각 단체와 상모씨와의 관계가 일반업계와 같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는 손모씨 자신이 속해있는 일반업계와 그저 자신의 발만 담그고 있는 신앙업계를 혼동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그대로 노출해 버린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또한 상모씨의 평소 성품으로 보아 이런 술상무제도를 흔쾌히 수락할 만한 위인도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상모씨가 자신의 오장육부적 평안을 영위하기 위해 이러한 만행에 동참할 것으로 판단했다면 이는 지금까지 손모씨가 상모씨를 잘못 파악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여섯째, 모든 단체는 신부님께 소주 반병 이상을 권하지 말것?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인간들에게 그들만의 주량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손모씨도 자신의 주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손모씨를 위해 특별한 예를 하나 제시하겠다. 식사를 가정해 보자. 누구나 밥량을 가지고 있다. 이를 우리는 식사량이라는 전문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개인단량이라는 것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의 주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손모씨의 주장대로 라면 만일 밥 1공기가 정량인 인간에게 밥 반공기만 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고픈배를 부여잡고 "엄마가 보고플땐, 엄마사진 꺼내놓고~"라는 군발이 프로그램의 주제가나 불러야 한단말인가? 주량도 마찬가지이다. 쪼잔하게시리 먹는 음식가지고 양이나 재지 말자는 얘기다. 그러나 이 이면에 숨어있는 의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에도 또한 음주 후 비용절감에 대한 처절한 노력이 숨어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양껏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상모씨에게 소주 반병(업소정가 1000원)만을 제공함으로써 손모씨는 그에대한 반사적 이익을 몇십배나 노리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손모씨의 주장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논리적 모순을 파 뒤적거려보았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대로 그 내용적 심각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손모씨는 진정서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최후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이고 있다. 즉 ’어기는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누가 누굴 처한다는 것인가. 또한 그 집행자가 개코라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개코라는 인물과 손모씨는 상호간에 비방과 헐뜻음을 일생일대의 중요한 업적으로 치부하고 있음을 모르는 고객이 없는데 이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제의 적이었던 개코라는 함량미달의 고객을 자신의 베이스캠프에 영입함으로써 다수의 고객들에게 심리적 정신적 위압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과연 누가 누구를 참수하고 누가 누구를 살리겠다는 말인가? 이 진정서의 전체적인 의도는 바로 구체적으로는 음주 후 비용문제에 있어서 손모씨 자신을 살리겠다는 의도로 밖에 파악되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자신의 의도를 위해, 자신이 살기 위해 상모씨를 수단으로 끌어들였고, 또한 수사라는 자를 비상구 정도의 역할로 이용하려 하였으며,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애꿎은 고객들을 참수하려는 저의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한번 공개적으로 묻는다. 누구를 살리겠다는 것인가?

 

미아3동의 담배연기 자욱한 푸코일보 편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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