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성당 게시판

항아리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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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호 [ephphatha] 쪽지 캡슐

2001-08-15 ㅣ No.1315

                  항아리의 비유

 

 

나는 옹기장이 손에 들려진 진흙이다.

내 모습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채 나는 그의 손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멀리서 거져온 한덩이의 진흙이다.

다른 진흙덩어리와 함께 왔을 때 나는 오고 싶지 않았다.

옹기장이 손에서 짓이겨질 때 화까지 났고 그의 손 안에서 나는 반항하였다.

숲속에 파묻혀 꼴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옹기장기는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잘 알았다.

그는 좋은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 짓이기며, 손질하며 진흙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진흙으로서 순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익혀 나갔다.

진흙인 나는 ’네’라는 응답을 하였고 오늘 하나의 물동이가 된 것이다.

 

- 나는 물동이이다.

  나는 대지의 품에 살았다. 돌맹이와 가시덤불, 잡초와 같이 살았다.

  오늘 내가 하나의 물동이가 된 것은 내 옹기장이 덕분이다.

- 내 이야기가 네 이야기와 흡사하기에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 어느 날 나는 어떤 사람이 내 주변을 거니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땅을 유심히 보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어떤 전율감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분의 눈이 이상하리만큼 빛났기 때문이다.

  나는 안간힘을 다하여 평온해지려고 애썼고 흥분을 겨우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분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더니, 몸을 굽혀 내가 사랑하고 익숙했

  던 그곳에서 나를 떼어 갔다.

  나는 그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 나를 놔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안주 했던 땅... 으로 부터 떠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 그러나 그분이 나를 조용하면서도 평화롭게 어루만지는 동안 나는 기

  쁨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 알겠는가?

  내가 지금의 물동이가 되기까지는 그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는 사

  실을.

  그분이 나를 당신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 안으로 돌맹이, 잡초,

  실뿌리를 빼내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흙덩이를 고를 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를.

- 그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안에 있는 공기를 빼내고 그 공백을 메꾸

  려면 펑펑 쳐대야 한다고 했다.

- 그 이후 나는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울부짖고 때때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더이상 견디어 낼 수 없다고, 내가 있던 자유로

  운 곳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 이말을 할 때 옹기장이 어머니가 오시더니 아들에게 "얘야 나 항아리

  하나만 만들어 다오" 하셨다.

- 그분의 고운 음성에 나는 넋을 잃었고 옹기장이는 나를 회전선반에 올

  려놓고 한없이 돌리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 여인의 고운 음성과 함께 옹기장이의 손은 느슨해지기 시작

  하였다.

- 능란한 옹기장이의 손에서 나는 돌리고 또 돌리어져 마침내 그분이 사

  랑하고 생각한대로 나의 모습으로 변화되였다.

- 이제 내 모양을 만드는 일이 끝났다.

  산들바람이 물기있는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었다.

  옹기장이는 나를 쥐고 끝없는 불 속에 집어 넣었고 그 곳에서 나는 인

  내를 체득하며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

- 나는 아름다운 항아리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에 소용될 것인가? 나는 두럽고 떨렸으며 환상으로 나타나

  는 수만가지 해야될 일과 가능성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 어느 날 옹기장기 어머니가 오셔서 여러 항아리 가운데 잘 살피시더니

  나를 고르셨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어디로 나를 데리고 갈 지, 어떻게 사용될 지 몰

  랐지만 그분과 함께 다닌다면 어느 곳이든지 행복 할 것 같았다.

- 그녀의 발걸음은 우물을 향해 나아갔고 나는 그녀의 어깨에서 내리어

  져 물속에 잠졌다.

  물이 내게 가득 채워졌을 때 나는 변화되었다.

  내 안에 담거진 물을 어느 누구에게 나눠주고 싶은 열망을 느끼었다.

- 나는 행복에 잠겨 외출을 하였다.

  나를 동행한 어머니는 계속 발걸음을 재촉하며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갈증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물을 마시고 나서 처음의 얼굴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

  되어 갔다.

  하느님의 아들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하느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처럼 나는 물을 주면 줄수록

  더욱 줘야할 필요를 느꼈다.

- 나는 다른 항아리와 다를바 없는 항아리다.

  그러나 나는 선택된 물동이다.

- 나는 옹기장이와 그 어머니의 물동이가 되었다.

  생명수를 나눠주는 물동이가 된 것이다.

- 주여, 나는 당신의 항아리입니다.

                       

                                            JOSE  MALDONADO

 

 

 

 

    어느 수도회 교재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2001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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