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그래도 한번(연중33주간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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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근수 [seopius] 쪽지 캡슐

1999-11-13 ㅣ No.405

연중33주간(평신도 주일)

연중33주간(평신도 주일)

잠언 31, 10-13.19-20.30-31 1데살 5, 1-6

마태 25, 14-30

 

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시 예전의 영화 속에서 ’아마데우스’란 영화를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모챠르트의 생애를 화려한 음악과 함께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감명을 준 명작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영화 중에 두 사람의 인물대비가 아주 인상깊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당시 국립 악장이었던 샬리에르와 모챠르트와의 관계였습니다. 한 명의 천재적인 음악가였던 모챠르트와 제한된 능력과 자신의 소질의 부족을 모챠르트에게 느끼며 열등감에 빠져 인간적인 고민에 휩싸였던 샬리에르는 현실 속의 우리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기에 더욱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 속에서 나온 달란트의 비유를 콤플렉스와 두려움과 신뢰라는 주제하에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것은 제일 먼저 ’나는 몇 개의 달란트를 받았냐’하는 비교였습니다. 저희들은 참으로 주변사람들 특히 가까운 친구들과 많은 비교를 합니다. 그러면서 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흐뭇해 하기도 하지만 때론 ’나는 저 친구보다 참으로 못 하구나’할 때는 시기심도 들고 열등감도 들어 씁쓸한 감정을 가지기도 합니다. 친구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재력과 사회적 지위나 능력에 있어서도 많은 비교와 함께 많은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열등감은 우월감에 또 다른 표현이라는 말도 있고, 그것의 원인은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부족과 삶의 우열을 나눌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척도에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왜 이렇게 모든게 부족한 채 태어났나’ 비관하십니까?

 

우리 인간은 각자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났습니다. 이전의 신학적 흐름에서 이 하느님의 모상성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은 다른 짐승들에게서는 없는 이성이 있다는 것, 또는 다른 사물과 생물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으로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해석을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지체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인간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 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이성이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에 주어져 있는 ’다르마’ 즉 법성도 그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가에서는 삶의 무상과 무구 청정한 인간의 본심을 이야기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 본심일이라고 믿습니다. 만들고 채워짐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하느님을 수용함으로써 얻는 하느님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교한다는 것, 우열을 나눈 다는 것은 저희들의 편견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모상성을 나름대로 자신의 삶으로 이루어 내야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에 누구나 다 하느님의 붓손질에 그려지는 풍경의 소중한 부분일 뿐 더 낫고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인간으로 이해할 때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두려움과 신뢰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하느님의 대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비교와 열등 속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 일달란트를 받은 사람 처럼 ’언제나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으로’ 즉 두려움으로 삶을 살아가며 인생을 비관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 자체로 인생이 지옥 같을 것입니다.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인생의 여정에 있어서 누구나가 수 없이 다른 얼굴의 모양새처럼 그 삶의 질과 양을 달리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 되었다는 믿음과 하느님을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조력자로서의 신뢰를 가질 때 이미 그 삶은 천상에 사는 이로서 머물 것입니다.

 

참된 나를 발견하려 하고 그 참된 나를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아주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살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신뢰하는 모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빛의 자녀로서 태어난 저희들은 이미 복된 사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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