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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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4-23 ㅣ No.242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16-3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2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교의 주옥같은 교리들이 무수하게 들어 있습니다요한은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만일 하느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처지가 어떠한 것인지를 무시무시한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을 합니다.

본문 16절을 잘 보시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외아들을 보내신 이유가 외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외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거기에는 만일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모든 인류는 하나도 빠짐없이 멸망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입니다이 멸망하다라는 단어아폴뤼미는 요한이 아주 즐겨 쓰는 단어입니다요한복음에만 10번이 나옵니다이 단어가 가진 뜻은 잃다상실하다없어지다파괴되다입니다그래서 요한은 그가 기록한 편지인 요한 2서에서 그 단어를 마땅히 받아 야 할 어떤 것을 잃어버리다의 의미로도 씁니다.

(2요한8)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마르코는 이 단어를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의 의미로 씁니다.

(마르14:1) 1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죽이다라고 쓰인 단어가 아폴뤼미입니다바오로는 이 단어를 존속(存續)’과 반대되는 멸망을 나타낼 때 씁니다.

(고전1:19)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된 이 단어 아폴뤼미의 의미를 종합해서 3장 16절의 멸망하지 않고를 해석해 보면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난 자들 중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절망과 상실과 죽음과 멸망과 끊어짐 속으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그 것을 성경이 다른 말로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하겠지요본문18절을 보시면 예수를 믿는 것을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도 표기를 합니다.

(요한3:18)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름을 풀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예수‘’Jesus'라는 이름은 야훼‘’Jehovah'라는 단어와 구원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Jesus'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께서 구원하시다라는 뜻입니다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이름을 풀어 준 곳이 있지요?

(마태1:21)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자기들의 힘과 노력으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행하는 모든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18절은 그들이 이미 이 땅에서 심판을 받았다라고 완료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그 말은 심판을 받은 자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사53:6)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여기도 보시면 이미 모든 인간들이 다 그릇 행하여 저마다 제 길로 갔다라고 과거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면 그렇게 저마다 제 길로 간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시편으로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14:1-3) 1 어리석은 자 마음속으로 하느님은 없다.’ 말하네모두 타락하여 악행을 일삼고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 2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들을 굽어 살피신다그 누가 깨달음 있어 하느님을 찾는지 보시려고. 3 모두 빗나가 온통 썩어 버려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하나도 없구나.

성경은 다윗의 입을 통해서 이미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다 더러운 자로 낙인이 찍혀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모두 멸망으로 떨어질 운명이었습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 창조이전에 택하신 어떤 무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그리고 그들이 떨어져야 할 멸망의 자리로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밀어 버리신 것입니다그런데 그 멸망의 자리로 떨어진 예수의 품속에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이제 예수의 멸망 속에서 이미 멸망을 당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여기서 적용이 되었습니다동일 사건에 대하여 다시 공소제기 할 수 없다는 것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죄 값을 치른 자들이 된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그 것이 예수의 이름이 가진 내용성경은 그러한 사람들을 예수’(Jesus)의 이름을 믿는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일하심의 결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보시다시피 성경은 받아들이는 이를 그 이름을 믿는 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10:40-42)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이들인데 주 예수를 받아들이는 너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 땅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너희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하느님의 말씀을 몸으로 입으로 살아내는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몸으로 입으로 살아내는 자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그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세상의 기존 질서의 틀을 깨는 모습으로 옵니다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기존 질서와 틀로부터 늘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예수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기존 세상의 질서와 틀을 깨는 자들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그러한 연고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러한 권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10:21-23.28-39)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기존 세상의 질서와 틀에 으로 들어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세상은 거부하고 공격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세상으로 주님의 말씀을 들고 나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기에 세상의 기존 질서나 틀이 그들을 그렇게 공격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마태10:5-15)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 모습이 지금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인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시고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그 말은 하느님의 일은 세상의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게 하신 것입니다그들은 유대교라는 기존 질서의 틀을 깨러 들어가면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들어간 것입니다다른 말로 믿는 이들이 받아들여야 할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의 힘의 원리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원리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믿는 이들이고 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의 힘의 원리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자이들을 멸망한자심판을 받은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사도일행이 테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유대 인들이 거리의 불량배들을 모아서 그 일행을 잡으려고 했습니다바오로 사도와 일행은 급히 몸을 피했고 대신 야손과 신도 몇 사람 이 불량배들에게 붙잡혔습니다그 때 불량배들이 관원들에게 야손과 신도들을 어떻게 고발하는지 보세요.

(사도17:6-7) 6 그러나 그들을 찾아내지 못하자 야손과 몇몇 형제를 시 당국자들에게 끌고 가서 외쳐 댔다.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7 야손이 그자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습니다그자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들을 어기고 있습니다.”

 

성경이 야손을 가리켜 세상을 소란하게 한 자다른 말로 세상의 기존 질서와 틀을 깬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쫓아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세상의 기존 질서와 틀을 소란케 하는 자들이고 그들의 삶이 옳다고 인정하여 그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가리켜 받아들이는 이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더욱 확실한 증거를 대 드리겠습니다.

(루가24:25-32)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들아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그 때 예수께서 나타나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주님은 친절하게 성경 말씀을 풀어서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그 순간 그들의 마음 이 뜨거워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그들의 눈이 밝아지고 두 제자는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마침내 말씀을 받아들인 자가 된 것입니다그 때 홀연히 주님이 사라지셨습니다어디로 가신 것일까요성경이 주님은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 자들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힘을 추구하며 그 세상의 힘으로 행복에 도달하려 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 땅에서 심판을 받은 자의 삶을 살게 된다고 성경은 진술하고 있습니다.

(요한3:19-21)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렇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여전히 이 세상의 삶의 원리인 어두움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바로 심판 받은 자들의 삶이며 단죄 받을 짓이라는 것을 성경은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절부터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가 세 번째로 등장합니다. 115절 이하그리고 19절 이하 그리고 오늘 본문인 3장 22절 이하에서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사도 요한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교회에게 증거 하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마태복음 3장을 보시면 세례자요한은 당시 꽤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3:5-7)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의 엘리야와 모세의 예언에 나오는 그 예언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자 그가 바로 자기들이 기다리던 사람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르단강 사방에서 바리새인들 뿐 아니라 사두가이인들까지 세례자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그리고 헤로데까지 세례자 요한을 초청해서 설교를 들었을 정도로 세례자 요한은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인물이었습니다.

(마르6:20)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똑같이 세례를 베푸셨습니다그러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 버렸습니다그 즈음에 어떤 유대인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찾아와서 정결례에 대해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러니까 의식을 중요시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더 나으냐예수의 세례가 더 나으냐라는 토론이 일어 난 것입니다그 때 제자들이 사뭇 못 마땅해서 자기 스승인 세례자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당신의 별이 지고 있습니다요르단강 저편에 있던 이에게로 사람들이 다 몰려가고 있습니다라고 불만 어린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그러한 제자들의 불만 섞인 보고를 받고 세례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준 대답 속에 성도의 삶의 원리의 정수가 들어 있습니다.

(요한3:27-30)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이 오히려 자기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오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요한은 하느님의 주권에 대해 확고한 신앙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모든 일은 하느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고 자신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음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주권과 섭리그리고 성도의 역할론에 관해 잘 정리를 하고 있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특히 봉사자들 사이에 그러한 시기와 질투가 자주 시험으로 찾아오는 걸 왕왕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도 교우들끼리의 다툼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합니다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기를 쫓다보면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험담을 일삼게 되고 그러한 경쟁이 심화되면 패거리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모든 성도들은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우리는 전부 티끌’ ‘아파르의 상태에서 하느님의 은혜로 이렇게 살아난 자들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보고 멸시할 수가 있습니까우리는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가장 알 맞는 환경과 상황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믿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1역대29:10-13) 10 다윗은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에 주님을 찬미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 조상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 받으소서. 11 주님위대함과 권능과 영화와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입니다주님정녕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고나라도 당신의 것입니다또한 당신께서는 으뜸으로서 만물 위에 드높으십니다. 12 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옵니다당신께서는 만물을 통치하십니다당신의 손에 힘과 권능이 있으니바로 당신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위대함과 능력을 얻습니다. 13 저희의 하느님저희는 지금 당신을 찬송하고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시편16:5-6) 5 제가 받을 몫이며 제가 마실 잔이신 주님 당신께서 저의 제비를 쥐고 계십니다. 6 저의 차지로 좋은 땅 위에 측량줄 내려지니 저의 재산에 제 마음 흐뭇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느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그래서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갈 때 사울의 집안사람 시므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그토록 모독하는데도 겸허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사무16:5-13) 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꺼져이 살인자야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너는 살인자다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이 길을 걷는 동안시므이는 다윗을 따라 산비탈을 걸으며 저주를 퍼붓고그에게 돌을 던지며 흙먼지를 뿌려 대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하느님의 일하심을 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은 그렇게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라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한 후에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신랑이시며 자신은 신랑의 친구라고 비유를 들어 예수님을 높입니다유대인들의 혼인 관습 중에 특이한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신랑의 친구의 역할입니다유대인들의 혼인 예식에서 신랑의 친구의 역할은 대단한 것입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결혼식을 주관하고 혼인 예식 날에는 신부의 방 앞을 지키다가 신랑이 오면 기쁘게 신랑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역할을 했었습니다그러한 신랑의 친구를 가리켜 유대인들은 쇼쉬벤이라 불렀습니다세례 요한은 자신을 그 쇼쉬벤에 비유하여 예수님의 높으심을 증거한 것입니다진짜 주인공은 예수님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이어서 그 유명한 말을 덧붙입니다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커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예수님을 쫓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커진다라고 하나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예수 의 커짐이라고 합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습니다그게 예수님의 커지심입니다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저주를 받아 죽는 것으로 성공을 하셔야 하는 분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의 커지심은 세례자요한의 작아짐을 발판으로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커지기 위해 나는 작아저야 한다’ 그 짧은 구절 속에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가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커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있는 모든 이들은 이 땅에서 작아짐의 삶을 살게 된다는 역설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성도의 작아짐을 딛고 골고타에 성공적으로 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커지심을 위해 성도들도 이 땅에서 커져야 하고 커질 것이라고 가르칩니다그렇게 예수님의 커지심을 가로막고 섰던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바로 베드로였습니다.

(마태16:22-24)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주님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커짐을 위해 예수님의 커지심을 막아섰던 사람입니다그 때 주님은 그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외치셨습니다그게 바로 사탄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주님은 자신의 커지심과 관계있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십자가가 뭡니까속 썩이는 남편이 십자가입니까아니면 말 안듣는 자식이 십자가입니까아니면 원치 않는 지병이 십자가입니까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예수의 커지심과 관계있는 자이들은 이 땅에서 죽음으로 작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그 죽음을 자기 부인이라 부릅니다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삶은 내 옛 자아가 품고 있는 죄에 대한 오염과 부패성과 집착과 중독 등을 죽여 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구절이 담고 있는 진의인 것입니다주님은 그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딛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그 세례 요한의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로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작아짐으로 임무를 완성했습니다.

그렇게 왔다 간 사람이 또 있지요스테파노입니다스테파노는 은혜와 능력이 충만했고 지혜와 성령의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오죽하면 그가 죽을 때 그의 모습이 천사와 같았다고 하지 않습니까그가 와서 한 일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를 세상이 어떻게 때려죽이는가를 보여준 일입니다엄밀히 말하면 스테파노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바로 그 역할을 하다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그렇게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을 하느님의 형상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며 그 하느님의 형상을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거룩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고 그 사랑의 삶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게 만들어 줍니다그렇게 우리가 사랑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살게 될 때 성도의 하나 됨이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성경은 그러 한 삶을 하느님을 가장 가치 있는 자리에 올려놓는 삶(worship) 예배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죽어 가는 그 길에 선교와 전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선교와 전도는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전도는 세례자 요한의 경우처럼 우리가 작아질 때다른 말로 죽어 질 때 그 삶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루가17:7-10)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우리는 모두 無益한 종입니다우리의 일이 하느님께 도움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진행하시고 완성하십니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주시는 것은 그 일을 통해 너희의 작아짐즉 너희 옛 자아의 죽음을 이루어 가라고 주시는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사례가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봉사를 하고 과분한 헌금을 하고 몸을 바쳐 선교에 힘쓴다 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사례를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9절 보세요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이 땅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의 작아짐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작아지는 길에서 하느님께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잊지 마십시오하느님은 우리의 능력을 빌려야 할 만큼 약하신 분이 아닙니다우리의 돈과 힘을 빌려서 나중에 이자 쳐서 갚아 주시는 분도 아닙니다속지 마십시오내가 헌신하고 봉사한 만큼 하느님께서 돌려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데도 자기를 구원해 주신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 하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진심 어린 사랑을 보시고 싶으신 것입니다내가 죽고 아버지가 드러나게 되면 우리는 바로 그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바로 다음절인 31절과 32절을 보시면 왜 우리의 능력이 하느님께 도움이 되지 않는가가 명확하게 증명이 됩니다.

(요한3:31-32)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에서 오신 분이 직접 위의 것을 보고 듣고 증거 하셨는데도 그 증거를 받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하물며 땅에 속하여 땅에 있는 것을 말하는 우리의 일을 통하여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겠습니까그런데 그 가운데 증거를 받는 이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하느님은 참되시다라고 증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그게 33절입니다.

(요한3:33)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여기서 확증하다라고 번역이 된 스프라기조는 밀봉하다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재가(裁可)하다‘'증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그러니까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은 옳다’ ‘하느님은 참 되시다라고 증명해 내더라는 것입니다주님의 증거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하느님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줄타기의 명인인 캐나다의 코크란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횡단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그런데 코크란은 정말 가볍게 나이아가라 폭포를 횡단했습니다그 때 코크란이 외쳤습니다. ‘나는 한 사람을 등에 업고도 이 나이아가라를 횡단할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은 맞아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고 환호를 했습니다그 때 코크란이 그럼 당신들 중에 내 등에 업혀 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널 사람이 있으면 지금 앞으로 나오십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때 한 꼬마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나왔습니다코크란은 그 아이를 등에 업고 나이아가라를 건넜습니다사람들이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니무섭지 않았어? ‘ 그 때 아이가 대답했습니다.’난 우리 아빠가 날 업고도 무사히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실 수 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이렇게 믿음은 자기가 믿는 대상에게 자신의 삶을 거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인을 치는 행위 스프라기조인 것입니다.

 

성도는 그의 삶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혁이 일어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코페르니쿠스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 우주의 중심이 지구이고 하늘이 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그러한 세상에 대고 코페르니쿠스는 외쳤습니다하늘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도는 것이다

우리 성도의 인생에도 바로 그러한 코페르니쿠스적 대 변혁이 필요합니다내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인공이십니다우리는 그 하느님께 순종하며 의탁할 때 가장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하느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하느님은 전적인 하느님의 은혜로 그렇게 피조물에 티끌로 지어진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들을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그 사실을 믿는 자들은 지금 영생의 기쁨을 누립니다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삶의 원리인 힘의 원리로 사는 사람들은 지금 하느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요한3:36)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영생이 있고와 머물러 있다가 현재형입니다지금 누리는 것입니다그 행복 속으로 지금 우리들을 초대합니다예수를 믿으십시오이 땅에서 자꾸 작아져 가십시오그게 궁극 적으로 여러분이 커지는 유일한 길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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