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주님 수난 성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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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1-04-07 ㅣ No.572

주님 수난 성지 주일(다해. 2001. 4. 8)

                                              제1독서 : 이사 50, 4 ∼ 7

                                              제2독서 : 필립  2, 6 ∼ 11

                                              복   음 : 루가 22, 14 ∼ 23, 56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17세기 프랑스 우화작가 라 퐁텐의 이야기입니다.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이 제우스신을 찾아가 왕을 보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어느 날 개구리들이 사는 연못에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무엇인가가 풍덩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왕이 강림한 것이었습니다.  개구리들은 왕의 얼굴을 쳐다볼 생각도 못하고 벌벌 떨다가 한 두 녀석이 용기를 내어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까이 가도 아무 탈이 없자 개구리들은 왕의 다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어깨에 올라가 팔짝팔짝 뛰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온 연못의 개구리들이 무슨 짓을 해도 왕은 조용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제우스가 내려보낸 것은 커다란 통나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개구리들은 다시 제우스를 찾아가 '우리는 물 같은 왕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활동적인 왕입니다'라고 새로운 왕을 보내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제우스가 이번에는 큰 황새를 내려보냈습니다.  황새 왕은 연못의 개구리들을 닥치는 대로 쪼고, 찌르고, 잡아먹었습니다.  개구리들의 비명이 요란하자 제우스는 '내가 숙고 끝에 내려보낸 부드러운 평화의 왕을 너희들은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또 무엇을 보내줄까?  더 지독한 놈을 보내기 전에 만족하고 있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보통 때의 예수님 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좋으신 일은 늘 감추시는 분이시고, 겸손하기 그지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광내시고 입성하십니다.  백성들은 대대적인 환영을 합니다.  더구나 나귀를 타고 오시니 예수님이야말로 그들이 기다렸던 왕, 즉 메시아로 확신합니다.  이제 그들은 새 나라가 세워지리라 믿었으며 로마의 식민지라는 치욕에서 벗어나 자유의 날, 그리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건설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삶을 구하는 메시아를 예수님께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강한 메시아가 아닌 사랑만을 외치는 힘없는 겁쟁이요, 바보의 모습이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비굴하게 능력을 감추고 있었고 힘이 있으면서도 그 힘을 숨기고 있다고 백성들은 생각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자신이 위험해지면 죽음에 다가서면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백성들의 분노가 합쳐져서 소리칩니다.  죽이라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을 이해 못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백성들의 모습을, 지금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구리들과 그들이 사는 연못의 평화를 위해 평화의 왕을 보내주었지만 불만하고 무시하고 새로운 왕을 청하는 개구리들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인간에게 하느님이 지셨습니다.  당신의 구원의 의지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원은 저 멀리 떠나버린 소설의 한 장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구원의 시간은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야 생명을 얻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래시계는 모래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시간을 애용하기 때문에 한 단위의 시간이 흐르면 시계를 뒤집어야 되고, 이때부터 새로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한 이 시간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희망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모래시계를 뒤집을 시간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패배한 듯한 그 시간에 이제는 새롭게 빛과 부활의 새로운 시간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것입니다.

  성주간을 보내며 우리는 온전히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바로 이것이 희망입니다.  죽지 않고 구원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어둠과 빛의 흐름 속에서 하루하루가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온전히 맡겨져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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