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성당 게시판

내 아들 상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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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sylvia62] 쪽지 캡슐

2003-08-08 ㅣ No.1742

 

 

 

 

 

한 고급 주택가에서 할머니 한 분이 대문을 열고 나왔읍니다.

 

’다녀오세요, 어머니.’

 

 

 

노인대학에 다녀오신다며 곱게 단장하고

 

집을 나서는 할머니를 며느리가 배웅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는 일과로, 며느리는 언제나처럼

 

시어머니를 대문 앞까지 따라나왔습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

 

할머니의 걸음은 빨라졌습니다.

 

 

 

할머니가 날마다 가는 곳은 노인대학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달동네 허름한 가게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더니

 

맡겨 놓은 듯, 한 손수레에 배추를 가득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배추수레를 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배추들 사요 배추. 싱싱한 배추 왔어요."

 

할머니는 큰 소리로 손님을 불러모았습니다.

 

"한 포기 더 얹어 줄 테니 사 가요. 새댁!"

 

 

 

며느리도 모르게 하는 할머니의 배추 이동판매는 해질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둠이 내려앉고 배추가 열 포기쯤 남았을까,

 

큰 길에서 야채를 파는 트럭 한 대가 올라왔습니다.

 

 

 

"할머니, 오늘은 여기서 만나네요.

 

남은 배추 저 주세요. 팔아드릴게요."

 

"번번이...고마워서 원...허허허."

 

"날도 추워지는데 힘든 장사 그만하세요. 할머니."

 

 

 

할머니 고생하는게 늘 안타까웠던 트럭행상 청년이 배추를 옮겨싣다 말고 권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던 할머니가

 

그날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내가 왜 배추장살 하는지 아우?

 

그러니까...그날이 우리 아들 여섯살 생일이었지."

 

 

 

할머니는 잠시 회상에 잠겼습니다.

 

"엄마, 정말 시루떡 사 줄거지? 정말이지?"

 

"그럼, 이거 다 팔고 꼭 사 줄게."

 

 

 

젊은 배추장수 엄마의 말에 아들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습니다.

 

"헤헤, 야...신난다."

 

 

 

생일날 시루떡을 사 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를

 

얼르고 달래가며 장사를 나섰는데

 

그날따라 손님이 주체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수레에 가득 실린 배추는 금세 동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경황없이 떨이를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아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 얘가 어디갔지...상우야 상우야!"

 

할머니는 그렇게 아들 하날 잃었던 것입니다.

 

 

 

생일날,

 

먹고 싶다던 시루떡을 끝내 먹이지 못하고 손을 놓쳐 버린 아들.

 

 

 

그 아들이 어디선가

 

배추 사라고 외치는 엄마 목소리를 듣는다면

 

지금이라도 맨발로 달려 나올 것만 같아..

 

 

 

할머니는 부자가 된 오늘도

 

배추장수를 그만 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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