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주님의 손을 꼭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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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annasee] 쪽지 캡슐

2000-06-08 ㅣ No.1484

성서백주간에서 구약묵상 응모전을 개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어요. 이 밤에 그 중 한 작품을 올립니다.

어느 자매님의 진실된 마음 한 자락에 닿아볼 수 있는 행운을 드립니다.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유달순 체칠리아(요한반)

 

저는 95년 10월에 첫 영세를 받은 아무것도 모르는 70세의 할머니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98년 4월 서울주보에 성서 백주간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글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하지만 68세의 나이에 100주간이면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제가 71세가 될 터인데 그 때까지 건강을 주실런지 하는 생각이 났지만 그 두꺼운 성서를 매일 대할 수 있다는 설레임에 누군가 권유하지 않았음에도 혼자서 사무실을 찾아가 등록하였습니다.

 

첫날 모임에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전부 젊은 교우들이어서입니다. 저는 수녀님에게 부

탁드려서 그래도 반모임에서 조금은 안면이 있는 지금의 요한반으로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18명이었는데 자꾸 줄어 지금은 4명의 교우만이 남았습니다. 그나마 영세를 받고서 읽고 동그라미로 흔적을 남겼던 창세기 출애굽기 모두 낯설고 생소했습니다. 끝자리에 앉았는데도 남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제 차례가 올 때까지 가슴은 두근두근 손발은 덜덜 떨리고 몇 달은 그런 날로 보냈습니다.

 

그래도 집에서는 떨리는 일이 없이 차근차근 하느님의 성서에 참고가 되는 말씀을 성서에 기록하고 줄도 치고 동그라미도 그리고 아침마다 이리저리 돌리면서 보던 연속극도 일절 보지 않고 그 시간에 성서를 읽고 아침신문에 끼워오는 광고지의 뒷면을 이용하여 성서를 요약해서 쓰고 다시 공책에 옮겨 쓰고 하다보니 마음은 공부하는 어린 학생같이 젊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 이튿날엔 다 잊어버릴지라도 행복하였습니다.

 

남편도 광고지 뒷면을 이용하는 것이 안스웠는지 백지를 한 묶음을 가져다 주더군요. 그 때에는 자연스럽게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을 갖게 되더군요. 아침 연속극을 보지 않으니까 친구들과의 화제에는 낄 수 없었지만 99년 4월 일년되는 말씀잔치에서는 69세의 나이에 하와역을 해서 신부님에게서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높은 미사 집전하는 곳을 쳐다볼 때마다 제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남의 앞에서 마이크는 커녕 나서서 이야기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하느님은 저 같은 늦깎이 할머니에게도 그런 커다란 은총을 내려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녹슨 머리도 새 것 같이 닦아주시고 이 나이에 책상에 앉아 성서를 대하는 기쁨도 주시고 목요일 아침마다 성가 공부시간도 주시어 성가를 잘 모르는 저에게 목청 높여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도 주셨습니다.

 

이번 성서 백주간 2주년 기념 말씀 잔치에서 제가 루가복음서의 마리아역을 맡았습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와 하늘 엄마께서 이번에도 제게 용기를 주시고 이끌어 주실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약을 끝내고 신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 년이 지나면 그 두터운 성서를 통해 저와 하느님이 만났다는 영광스러움이 남겠지요. 하느님을 만날 때 제 손가락으로 한 장 한 장 넘겼던 성서를 하느님께 바치는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하느님 의 창조하심에 ’당신은 위대하십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저희들에게 이 자연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하고 꽃과 이야기도 나눕니다. 항상 저희 곁에서 같이 숨쉬며 일깨워 주시며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을 저만 독차지한 것 같습니다.

 

이북에서 1·4후퇴 때 홀홀 단신 월남하여 부모형제 아무도 없는 저에게 힘들 때나 외로울 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주님이 계시기에 빈집에 혼자 들어 갈 때에도 ’다녀왔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들어갑니다. ’오냐!’하시며 주님이 맞아 주시기에......

     

언제인가 서울주보 간장종지에 우리는 항상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사는 식인종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도 왕성한 식욕으로 성서의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여 제 안에 주님의 성서말씀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나날은 행복하고 감사하며 성서를 옆에 꼭 끼고 발걸음도 가볍게 깡충깡충 나의 아버지 아빠 앞으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을 놓칠까봐 꼭 붙잡고.

 

   8구역 12반  유달순 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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