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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턴과 회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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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0-02-27 ㅣ No.39

U턴과 회개의 삶

 

지난 1월 말쯤 친구의 사제서품을 축하하러 부산 남천 성당을 다녀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부산을 가보고 이번이 꼭 세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부산의 길이 참 좁고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직접 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열심히 지도와 표지판을 보며 성당을 찾았지만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도로 표지판을 믿고 갔다가는 이내 다른 길로 빠지곤 해서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무려 한 시간여만에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제 다음날 오전 서품식에 늦지 않기 위해 근처에 숙소를 정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부산 지리에 자신이 없던 터라 단순하게 성당 앞 도로 직진선상에서 숙소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차를 타고 무조건 직진만 하면 성당이 나오는 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당 앞 도로로 한참을 직진했는데도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쪽 방향은 틀렸고 반대편 방향으로 가면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편도 3차선 내지 4차선 길임에도 지하철 공사중이라 그런지 U턴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U턴이 나오겠지 하고 한참을 갔지만 여전히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자니 그 길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라 망설여졌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어서 결국 좌회전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좌회전도 없고 계속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성당을 찾던 처음 순간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지도와 표지판 그리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한참만에 성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다시 원점. 이제는 반대편 길로 곧장 갔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광안리 해수욕장 표지판이 있어서 그곳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성당까지 가는 길이 우회전, 좌회전 한 번으로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서 길을 한 번 잘못 들고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낯선 길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늘 앞으로만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한 곳에서 방향을 바꿔 새로 출발해야 하는데 정작 필요한 곳에 되돌릴 길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교회는 해마다 사순시기가 되면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습니다"(마태 3,1) 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들려줍니다. 성서가 말하는 '회개'는 자신이 가던 길에서 180도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면 정반대로 되돌아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교통용어를 빌리자면 U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U턴없는 길이 얼마나 복잡하고 난감한 지는 경험하신 분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매일같이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인생 여정을 걷고 있고, 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쉽게 죄에 빠지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신앙 여정중에 우리가 찾아야 할 U턴은 어디에 있을까요? 고해성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늘 반복되는 죄를 범하고 잘못된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런 길을 걷고 있나?" 하는 후회와 새로운 출발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됩니다. 이 때 우리를 도와주는 인생의 표지판이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 화해하고 잘못된 길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은총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되돌아서 다시 시작하는 길이 없고 계속 앞으로 또는 오른쪽, 왼쪽으로 가야만 한다면, 잘못하면 자신이 가야할 길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회개의 순간이 은총의 순간임을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난곡동 성당 월보 "난초골 성가정"에 쓴 글입니다.

게시판 30번에 있는 내용을 보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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