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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 당신의 맑은혼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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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1999-11-08 ㅣ No.974

 

 

생각하는 동화 - 서른네번째 이야기

 

< 왕릉과 풀씨 >

고아원의 뒷동산에 작은 무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서 풀씨가 익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밤, 큰 바람이 불어와 풀씨가 날려갔다.

풀씨가 떨어진 곳은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가였다.

아침이 되자 여기에 살고 있는 개미가 나타났다.

풀씨는 개미한테 물었다.

"여기가 어디니?"

"왕릉이다."

개미는 풀씨한테 자기네가 살고 있는 왕릉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능은 만 평도 넘어. 그리고 돌로 된 근엄한 대감도

 있고, 말도 있지."

풀씨가 물었다.

"그럼 그들이 지금 저기 저 나무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니?

개미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살아 있지 않아. 그냥 장식으로 여기에

 서 있는거야."

"그런 게 뭐가 자랑거리가 되니?"

나는 작고 힘이 약한 풀이지만 아무데나 떨어져도

뿌리를 내리고 살지.

이름을 갖지 못했지만 꽃을 피우기도 하고

풀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도 하는걸."

개미가 반박했다.

"물론 살아 있음이 중요하지.

 그러나 신분에 따라서 죽은 이의 무덤도 다른거야.

 이 왕릉을 보고 느껴지는 거 없어?"

풀씨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아원을 세우고 그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죽은 사람의 무덤 위에서 살았었어.

 그 무덤의 묘비글은 이래."

"나를 고아들이 자주 찾는 뒷동산에 묻어 주오.

 내 무덤은 그리고 내 한 몸 길이만 하게 작게 하여 주시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지도 모르니 돌로 된 것은

 아무 것도 만들지 마시오. 다만

 잔디가 벗겨지면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봄마다 잔디나 한번씩 손봐 주시오."

"네가 못 보아서 그렇지.

 이 무덤 속에 들어가면 임금님의 관이 있어.

 그리고 큰 칼도 있는걸."

"그건 진짜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야.

 진짜는 그런 왕관이나 칼에 의해 정복되지 않고

 위대한 영혼에 의해 정복되는거야."

한참 후 개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이제야 알겟다.

이곳에서 구경꾼들이 흘려버리는 과자부스러기나

주워 먹고 살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려서 먹이를

구하여야겠다.

그리고 내가 사는 뜻을 가꾸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들녘으로 나가야겠다."

풀씨도 말했다.

"그래, 네가 이곳을 떠난 후면 내가 대신 이곳에

 뿌리를 내려서 이 왕릉의 수평이

 기울어지지 않게 하겠다.

 그리고 뜻을 가진 이면 알아 볼 수 있게

 내 푸른 잎을 세우고 살아야지.

 그래서 이 왕릉의 위엄에 조금도 기죽지 않은

 내 맑은 혼을 보여주겠다.

 

  * 당신의 맑은 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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