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10월호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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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09-22 ㅣ No.69

 

1. 프란치스코 성인을 생각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되돌리고 싶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 삶이 온통 무지와 실수의 연속인 것 같다. 특히 말 못하는 생명에 대해 가한 악행이 더욱 그렇다. 개구리의 배를 가르는 장난을 반복했던 일, 또 뱀은 좋지 않은 짐승이라 하여 뱀만 보면 사정없이 짓이겨 놨던 일 등등. 넓게 포장된 길을 자동차로 지나면서, 마른 포가 되어 아스팔트에 붙어버린 짐승의 주검을 볼 때마다 편치 않은 마음이다.

자연과 멀어져, ꡐ무한 경쟁ꡑ이란 전쟁터에서 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우리자신에게서 살기(殺氣)를 본다.

몇 해 전, 학생들 성지순례 때 지도신부로서 외국에 나간 적이 있다. 어느 숙소에서 꽃병을 실수로 깬 한 학생이 ꡒ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ꡓ라는 말 대신 ꡒ그거 얼마면 돼요? 그까짓 것 물어주면 되잖아요?ꡓ라고 내뱉는 첫마디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았다.

서울 초중고학생 10명 중 3명이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환경오염 때문에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의 비율도 높지만, 물질문명의 오염 아래 훨씬 많은 우리 아이들의 정서가 병들어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전염시킨 어른들의 물질과 소비 중독, 끝없는 행복과 성공에 대한 환상, 모든 것을 즉시 이루려는 조급증은 우리 사회를 뒤덮어버렸다.

세계 모든 나라들도 한결같이 잘 먹고사는 것, 곧 경제발전에 힘쓰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지향하는 목표가 ꡐ미국같이 잘사는 나라ꡑ이다. 물론 1인당 GNP만 따지면 미국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있겠지만, 미국이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나라인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5%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사용하는 자연자원의 양은 전 세계가 쓰는 양의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나라를 모든 나라가 모델로 삼는다면, 얼마만큼의 자원이 더 필요할까? 아마도 몇 개의 지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지구같이 인간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행성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다. 그러므로 신앙의 여부를 떠나서 하나뿐인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책임이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자연을 지키자는 약간의 이기적인 이유를 넘어서서 자연 자체, 생명 자체를 사랑한 성인을 이달에 만날 수 있다. 바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그분은 모든 살아있는 것에서 하느님의 창조 손길을 느끼며, 그들을 형제와 자매로 대했다.


레지오 신심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누려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이 시대에 맞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성모님이 이 시대에 사셨다면, 어떤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셨을까? 아마도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과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투신하지 않으셨을까?

윤리신학에서 ꡐ부르주아 윤리ꡑ(bourgeois ethics)라는 것이 있다. 이는 바리사이적 양심을 말하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죽어가는 비참한 사회 환경의 원인을 방지하는 데 소홀하면서 자기에게 손해되는 것만을 방지하는 데 열심인 태도를 말한다. 곧 이웃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면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삶을 가리키는 것이다.

수없이 묵주를 돌리면서 나와 가족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보다 성모님처럼,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시대의 문제에 고민하고 행동하는 레지오 가족들이었으면 한다. 따라서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누리기보다, 적게 바라고 참된 행복에 이르려는 절제된 생활양식을 찾아가며 이웃의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성모님과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억하는 10월을 보내야겠다.

자연을 위해,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_한광석․마리요셉 신부

 


2. 민족복음화 대열에 앞장섭시다!

시월은 묵주기도 성월이면서 동시에 전교의 달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든지 모든 성인의 통공 가운데 미사성제와 성체성사의 신비를 따라 살며 또한 주님의 날에는 반드시 미사성제에 합심하여 참례하고 있습니다.

ꡒ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ꡓ

사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늘 새롭게 파견받습니다. 원래 선교란 파견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Missio에서 온 말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님은 십자가상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또한 이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권고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임무이며(선교교령 6) 교회의 설립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마르 16,15)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 ꡐ사랑, 선교의 얼ꡑ이라는 주제로 제80차 전교주일 담화문을 발표하신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물론 - 역대 교황님들의 말씀대로 ꡒ교회는 끝없이 파견을 받고 있는 공동체, 즉 선교 공동체로서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든 나라로 파견된다는 점에서도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ꡓ(세계 선교의 날 담화문)고 할 것입니다.

성모님 대전에 한 가족으로 살아가시는 레지오 단원 여러분!

최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작년 말 현재 한국교회 가톨릭 신자 수는 514만 6천 명으로서 10.9%의 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10년 전인 1995년의 295만 1천 명(전 인구 대비 6.6%)보다 무려 219만 5천 명이 증가한 것입니다. 1979년 4월말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가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앞두고 교세 2백만을 위한 ꡐ활동 5개년 계획안ꡑ을 수립하고, 전국 각 교구마다 교세 확장을 위한 각종 사업계획을 추진하던 28년 전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힘찬 진군을 재촉하시는 성모군 전사 여러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선조들 스스로 받아들인 신앙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크나큰 긍지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선조들은 1801년 신유교난의 박해 이후 10여 차례의 혹독한 박해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피로써 진리를 지키고 그 씨앗을 싹트게 하였습니다. 이는 당파싸움과 쇄국정치의 와중에서 하느님의 크나큰 선물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순교 선열들이 피흘려 증거하고 보전해 온 신앙의 유산을 공으로 물려받은 후예들입니다. 신앙의 보전이 지금 이 시대에도어렵지만 선조들의 시대에는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선조들의 유산에 우리의 피와 땀을 보태어 우리들 다음 세대에도 자랑스런 유산으로 전해 주어야 합니다,

ꡒ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ꡓ(마르 16,15).

지상 생애를 마감하시면서 유언처럼 남겨놓으신 주님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명령에 계속하여 두 귀를 막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면 신자보다는 비신자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틀림없이 우리 앞에는 우리의 가정과 사회, 국가와 민족, 그리고 정치와 경제와 문화까지도 복음화해야 할 선교의 막중한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묵주기도 성월과 전교의 달을 지내면서 오늘 우리는 레지오 전사로서 성모님 대전에 기도와 공부와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자기 점검과 더불어 영원한 선교공동체에 사는 뜻을 새기며 단단한 각오와 결의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할 줄 압니다.


ꡒ…교회가 생긴 그 처음부터 십자가 아래에 계시고 다락방에서 기도하시면서 교회의 사명에 활발하게 협력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선교사들의 활동을 보살펴 주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참된 사랑을 더욱 잘 실천하게 도와주시어 영적으로 목마른 이 세상에서 생명수의 원천이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러한 저의 간절한 바람과 더불어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보냅니다ꡓ(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2006년도 전교주일 담화문).

_최홍길 레오 신부

 


3. 공동체의 일치를 위하여

공동체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기에 각각의 생각이 다르고 취향도 달라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함 속에서 봉사할 때 종종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기 힘들고,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한다면, 먼저 각각의 생각이 공동체 전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공동체의 일치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공동체의 분열을 원하지 않으시고 일치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밀고 나가려 한다면 공동체는 분열로 치닫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일수록 기도와 묵상이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러한 때 봉사자들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침묵을 지키고 참을 줄 안다면 하느님께서 의심 없이 도우실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아닌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판단하고 남을 비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결국 화목은 사라지고 분열만 남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열을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의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ꡐ자기의 허물을 알고 스스로 겸손할 때 남들과 화목할 수 있음ꡑ을 준주성범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덕목은 바로 ꡐ겸손ꡑ입니다. 하느님께 겸손되이 순명하는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복음의 증거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형제자매들의 부족함이 보일 때 그것은 나의 부족함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거울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나에게 이웃의 부족함을 보여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먼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고 사랑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와 화목의 씨앗이 되도록 합시다.


겸손된 복종(준주성범 2권 2장)

1.누가 네 편에 있든지 혹 반대 편에 있든지 걱정말고,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록 행하고 힘써라. 너의 좋은 양심을 보존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너를 잘 보호하시리라.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고자 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사악이라도 그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일 네가 잠잠하고 참을 줄을 안다면 의심 없이 주께서 도우시리라. 그분은 너를 구할 시간과 방법을 아시니 너는 너를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 모든 일에 도와 주시고 모든 혼잡에서 구원하심은 하느님의 일이다. 우리가 겸손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우리의 허물을 남들이 알고 책망하는 것이 가끔 매우 유익한 일이다.

2. 사람이 제 허물로 인하여 자기를 낮출 때에는, 남을 쉽게 위로하고 자기에게 성낸 이의 마음을 쉬이 만족케 한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겸손한 이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며, 겸손한 이를 굽어보시어 큰 은총을 내리시고, 그를 낮추신 후에는 영광으로 올리신다.

겸손한 이에게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다정히 당신께로 이끄시며 당신께로 청하신다. 겸손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여도 평화를 잃지 않고 잘 있으니,  그는 세상에 마음을 붙이지 않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낮은 자라 생각되지 않거든, 완덕에 무슨 진보를 하였다고 생각지 말아라.

_윤병길 신부

 


4. 레지오와 새 복음선교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의 존재 이유가 복음선교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레지오 단원에게 완전히 복음적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레지오는 성인을 만들기 위하여 존재하는 학교이며 사도를 배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학교입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레지오가 계획 집행한 대규모 회의들 가운데 많은 회의에서 그 명칭의 일부로 ꡐ새 복음선교ꡑ를 채택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말씀에 의하면 ꡐ새 복음선교ꡑ는, 그 내용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주제가 ꡐ하나ꡑ(同一한)의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이 우리 자신들로부터 그리고 우리들이 처한 어떤 상황에서 생겨났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고 단순히 인간의 발명품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어떤 구원도 얻지 못합니다. 복음은 이에 대한 우리들의 열정과 방법, 표현에서는 새로울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새로운 힘과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적합한 모양과 말로써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ꡐ새 복음선교ꡑ는 ꡐ기초적인 복음선교ꡑ, 즉 이전에 복음에 관해서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또 이미 신자가 된 사람들의 신심을 심화시키는 과정인 ꡐ사목적 복음화ꡑ와도 구별됩니다. ꡐ새 복음선교ꡑ는 ꡐ재복음화ꡑ와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ꡐ새 복음선교ꡑ는 보다 큰 특별한 열정, 새로운 방법들, 새로운 말과 행동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제 새로운 결심, 새로운 열의, 새로운 열정, 새 출발의 자세로 복음화를 펼쳐나갑시다. 이러한 복음화는 분명히 현대 사회에서 많이 필요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ꡒꡐ새 복음선교ꡑ는 시작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복음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단 한 분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관계가 무엇인지 신자들이 다시 깨닫도록 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복음선교는 오직 우리 신자들과 예수님과의 개별적이며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 유지되는 가운데 펼쳐질 수 있다.ꡓ

이제 복음선교의 새로운 방법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카메라 기능이 첨가된 휴대폰과 인터넷 등을 이용해 초 단위로 전 세계와 통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기술이 복음선교의 가능성들과 방법들에 대하여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이 나타나자마자 옛 방법들이 쓸모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대면 접촉이야말로 세속적이고 개인적으로 고독하며, 개인주의적이고 기계종속적인 현대사회에서 훨씬 더 요구되는 방법입니다. 나는 개인적 접촉의 방법을 강력히 권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방법과 기법들이 아무리 가치 있고, 긴박하고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모색하는 중에 우리가 레지오의 없어서는 아니 될 이 방법을 모르고 놓쳐버린다면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정신은 바로 성모님의 정신입니다. 성모님의 우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언제나 몸소 보여주시며 직접적인 것으로, 이 성모님의 사랑을 우리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분에게는 예외 없이 귀중합니다. 성모님은 어느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레지오도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 모두가 그분에게 한없이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레지오가 펼쳐야 할 ꡐ새 복음선교ꡑ는 첫째로 레지오 본래의 성령의 은사(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능력)를 다시 구하고, 레지오 본래의 정신을 또다시 새로이 해야 함을 뜻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보다 확장된 활동을 하며, 보다 큰 기쁨 속에서 봉사하고, 레지오 교본이 요구하는 영성적 삶을 보다 새로이 하며 보다 심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마리아와 성령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_맥그리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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