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아이] 205번 버스를 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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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iloss] 쪽지 캡슐

1999-09-21 ㅣ No.1036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205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로도 여전히 205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학교 가는 길이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205번 버스기사 아저씨들의 밝은 인사 때문이지요.

학교가 이상해서 1교시가 8시거든요.그래서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잠이 덜 깬 얼굴로 찌부둥하게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파란색 205번 버스가

저만치 보이면 살며시 미소가 떠오르곤 합니다.

문이 열리고 차례로 올라오는 승객들 한 명 한 명에게 빠짐없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는 205번 아저씨들..그래서 그런지 205번 버스안에는

알게 모르게 밝은 분위기가 흐릅니다. 물론 아주 가끔은 좀 무뚝뚝한

아저씨들도 계시지만..

처음에는 기사 아저씨들의 인사에 승객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해 있었지요.

그리고는 어색하게 요금을 내고는 후다닥 뒤로 들어가버리곤 했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아마도 대중교통수단에서의 불쾌한 서비스에 대해 불평은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어쩌면 서로를 인간관계가 아니라 요금과 서비스라는 경제관계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젠 늘 205번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차에 올라타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합니다. 회사의 친절 교육이 엄격해져서 기사 아저씨들이 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는 사람과 같이 타지 않는 이상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지는 버스안..

그런 버스안에 나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으니까요.

저는 이제 다른 버스를 탈 때도 습관처럼 기사 아저씨께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 짧은 한 마디가 하루를 시작하는데 신선한 활력소가 된다는 것은 정말

값진 일이죠. 꼼짝없이 40분을 서서 가더라도 힘이 들지 않는 버스..

내가 짐짝처럼 실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어 타고 갈 수 있는

205번 버스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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