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미사의 정신, 시작의 정신[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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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3-01-13 ㅣ No.3267

주님 세례 축일                                                           2003. 1. 12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에는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남들은 새 해 첫 날 해맞이를 위해 동해로 달려가지만

저는 본당 미사 때문에 항상 뒤늦게 새 해 일출을 맞이합니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저는 다시 한 번 "시작"과 "출발"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해 12월, 대림절로 교회의 달력이 새롭게 시작하였을 때,

우리는 "기다림과 시작"에 대해서 묵상한 바 있습니다.

2003년 1월 1일,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였을 때도

우리는 또 다시 "시작"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교회의 달력이나 세속의 달력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정해 놓은 시간의 구분에 관계 없이,

시간의 흐름에 관계 없이

새로운 시작은 항상 가능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일신(日日新)하고 우일신(又日新)하라!

- 하루하루가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로워지기를!"

 

사실 새로운 시작은 달력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롭게 마음 먹을 때, 새로운 시작은 항상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냅니다.

세례는 세례 이전의 시간과 세례 이후의 시간을 질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 세례 축일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홰개하고 세례를 받으시오!"

마태오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마르코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세례를 베푸는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유다 지방 주민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나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물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마르 1,4-5).

 

위의 성서 구절이 말해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죄인들의 대열에 함께 서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과 하나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공생활을 이렇게 겸손하게 시작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죄인들과 함께!"

 

여기에서 미사 전례를 왜 참회 예식으로부터 시작 하는지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합니다.

저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또한 자주 해야 할 의무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제 탓이고 저의 큰 탓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고백의 기도를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데에 미사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에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먼저 인정합니다.

그런 다음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를 맡겨 드립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핑계를 대거나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단지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에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맡겨드립니다.

이것이 제사의 정신이고, 미사의 정신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들이 무엇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할 때

마땅히 지녀할 정신, 곧 시작의 정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죄인들의 대열에 서서 세례를 받으시고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미사를 시작합니다.

시작의 영성은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것인가 봅니다.

 

신앙의 싸움은 결국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과

스스로를 낮추려는 마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끈질긴 싸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은 겨울 휴가를 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저에게

그래서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은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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