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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교리서44: 은총과 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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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27 ㅣ No.276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44) 은총과 의화

믿음 실천 있을 때 의로운 삶 살 수 있어

 

은총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상의 은혜를 말합니다. 또 의화란 '의롭게 됨' 또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음'을 뜻합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느냐 아니면 믿음에 따르는 실천이 있어야만 의롭다고 인정받느냐 하는 것이 약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핵심 쟁점 중 하나였습니다. 이번 호에는 의화와 은총, 공로와 성덕(1987~2029항)에 대해 알아봅니다.


의화(1987~1995항)

성령의 은총에는 의화하는 힘, 곧 의롭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또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게 해줍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죄에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합니다. 또 새 생명으로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됩니다.
 
성령의 은총이 작용해서 내는 첫 결실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줍니다. 이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서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입니다. 이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 아니라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포함"(1989항)합니다.
 
의화는 하느님 사랑을 거스르는 죄에서 인간을 풀어 주고,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줍니다. 의화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고, 치유해 줍니다. 의화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질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에 힘입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으며,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속죄의 도구가 되었다"(1992항). 이 의화는 세례로 주어집니다.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협력 관계'를 이룹니다. 말하자면,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에 신앙으로 동의함으로써, 그리고 이렇게 동의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성령께 응답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은총(1996~2005항)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됩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1996항)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신성과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1997항)입니다. 은총은 우리를 거룩하신 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습니다. 이로써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양자'로서, 외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런 부름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이 부름은 호의로, 거저 베푸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전통에서 은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화은총(聖化恩寵) 또는 신화은총(神化恩寵)입니다. 성화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은총으로 우리 안에서 성화 활동의 샘이 됩니다. 성화은총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해주는 은총입니다. 이 성화은총은 초자연적이고 지속적이어서 상존은총(常存恩寵)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해서 성화은총 또는 상존은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가짐"(2000항)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력은총(助力恩寵)인데,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도움을 주시고자 직접 개입하시는 은총을 말합니다.
 
은총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하지만, 우리 인간을 준비시키는 또한 은총의 작용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의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 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

하지만 은총 생활에서 "하느님의 주도는 또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2002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자유와 함께 당신을 알고 사랑할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자유로울 때에만 사랑의 친교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공로와 성덕(2006~2016항)

일반적으로, 공로(meritum, merit)라는 말은 마땅한 보상을 받을 만한 행실을 가리킵니다. 공로가 크면 더 큰 보상을, 공로가 작으면, 더 작은 보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는 공로를 내세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선행을 했다 하더라도 그 공로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려야 하고 그 다음으로 선행을 한 사람에게 돌려야 합니다. 실제로는 인간의 공로 자체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간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주도하심과 도우심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작용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데 유용한 은총뿐 아니라 필요한 물질적 재화까지도 얻게 해주는 공로를 쌓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덕의 소명, 거룩하게 되라는 소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성덕에 이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 완덕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입니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 영적 진보는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도록 점차적으로 인도하는 고행과 극기를 내포한다"(2015항).

[평화신문, 2014년 3월 23일, 정
리=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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