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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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0-02-29 ㅣ No.40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 진리의 어원적 의미

 

오늘날 일상적인 언어 사용에서는 하나의 생각 또는 하나의 말마디가 사실과 부합할 때, 진리라고 말해진다. 또한 어떤 것이 자기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어서, 인간의 지성에 명백하고 자명하게 드러날 때 그것은 진리(aletheia, 아니 감추어져 있다)라고 말해진다.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지성 중심의 진리관은 오늘날 우리들 사이에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성서의 개념은 이와는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성서의 개념은 종교적 경험, 즉 '하느님과의 만남'에 그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진리(진실)과 자유의 관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는 힘이 있다.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벗겨내고 하늘 아래 하나 꺼리낌없이 살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다. 바로 진리는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 옳은 일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 최근의 우리 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진리와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이들의 작은 노력에 독재의 세력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민주화의 씨앗이 서서이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진리, 참된 것, 그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행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참다운 자유를 줄 수 있는가? 오프라 윈프리의 일화는 진실의 힘과 진정한 자유의 긴밀한 관계를 잘 말해준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중에 대담프로인 '오프라 윈프리 쇼'를 꼽을 수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170cm의 큰 키에 뚱뚱한 몸매를 지닌 흑인여성이다. 1976년 대학 4학년 때 방송에 몸을 담기 시작한 그녀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아픈 상처가 있다. 18세짜리 미혼소녀에게서 태어난 오프라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는 불규칙한 생활을 해야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나이 9살 때 10대의 친척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후 오프라는 14살이 되기전까지 2번이나 더 유린을 당했다.  이 일은 오프라의 가슴에 엄청난 수치심과 불안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오프라는 이 일을 늘 감추고자 애썼고, 특히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더욱 그러했다. 이 사실을 아는 변호사도 성공을 위해서는 과거를 밝혀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대담 프로 주제가 '성폭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고 몹시 불안했다. 방송이 시작되고 성폭행에 대한 몇 가지 사례가 먼저 소개된 다음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프라의 가슴은 미어질 듯 아팠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마음 속에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프라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한 피해자를 팔로 감싸안고 함께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온 방송국 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장면이 미국 전역에 방송으로 나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성폭행에 대한 심각성과 잔인성을 실감하며 가슴으로 그 고통을 나누었다.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신조인 오프라 윈프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진실은 언제든지 여러분을 구해 줄 것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명백한 진리앞에 오프라 윈프리는 갈등했고 처음에는 진실을 덮어두고자 노력했다. 특히 자신의 인기를 위해 더욱더 자신을 위장해야만 했다. 이러한 자세는 그녀에게 상당한 부자유를 안겨주었다. 자기 스스로 어떤 굴레에 자신을 집어넣고 그것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적당한 순간에 그 굴레에서 빠져나갈 용기를 얻었다. 그 결과 그녀는 수치와 인기하락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 자기 스스로 자신을 옭아맺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

 

이처럼 진리, 참된 것, 진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수없이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거짓말을 하고 있고 죄를 짓고 있다면 나는 하느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방어하고 사방으로 벽을 쌓아 자신을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진리와 진실에서 멀어지는 만큼 우리는 스스로 자유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3. 성서에 나타난 진리와 자유

 

구약성서에서 진리는 무엇보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대한 인간의 성실성을 말한다. 신약성서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계시의 완성을 의미한다. 특히 요한 복음 8장 32절에 나오는 이번 피정의 주제 말씀은 요한복음사가의 진리관을 잘 나타내준다. 31절 이하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내 말 속에 머물러 있으면 참으로 내 제자들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는 당신들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요한에 의하면 진리란 하느님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진리를 선포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증거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 따라서 진리란,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건네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인도해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그리스도 진리 자체이시다. 우리는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또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열어보이는 계시자의 역할을 마감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협조자인 진리의 성령을 약속하셨다. 요한에 의하면 성령의 기본 역할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 제자들을 온전한 진리에로 인도하는 것,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기억시켜 그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성령의 역할은 신앙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그 스스로가 '진리'라 불리우신다. 그분은 교회 속에서 증언하는 분이시며, 사람들을 신앙에로 인도하는 분이시다.

 

요한은 신앙인의 생활 속에서 진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진리에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머무는 사람만이 진리를 온전히 인식하게 되고, 그 진리를 통해서 내적으로 죄로부터 해방된다. 왜냐하면 신앙은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를 깨끗이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한의 진리라는 말마디 속에는 도덕적 생활의 내적 원리가 있다. 진리를 행하고(요한 3,21), 진리 속을 거닐다(2요한 1,4) 등의 표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이고, 우리의 행위가 진리에 의해 그리고 신앙에 의해 방향지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 의미에 있어서 진리란 결국 우리가 지성의 힘으로 파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실재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났고 성령에 의해서 밝혀진 아버지의 계시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이 진리가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성서적 의미의 자유는 곧 해방을 의미한다. 즉 죄로부터의 해방, 나를 구속하는 모든 잡다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방과 탈출은 하나의 방향을 갖고 있다.  즉 하느님께로 향한 해방과 탈출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 즉 진리 안에 머문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를 구원한다.

 

4. 진리안에 머뭄

 

이제 중요한 것은 진리 안에 머무는 행위이다.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 바로 계시진리이다. 이 하느님의 말씀안에 머무는 것이 우리가 진정한 자유, 바로 구원을 얻는 지름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교육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진리안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랍비들과는 달리 당신 스스로 사방을 다니시면서 눈에 드는 제자들을 직접 뽑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출신성분이나 학식, 재산의 많고 적음, 사회적 지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 제자될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건없이 제자들을 뽑고 교육시킨 것은 아니다. 유일한 조건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잡다한 생각과 걱정을 벗어버리고 자유로운 몸으로 당신 안에서 머물라는 요청이다. 실제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 안에 머물면서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보고 배우고 느꼈다. 하지만 3년의 시간이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될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도망가고 말았다. 하지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과 행위의 참된 뜻을 하나하나 깨우쳐 주셨고 제자들은 그제서야 예수님 안에서 머문 그 시간들이 의미없는 시간들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그 시간이 자신들을 서서히 변화시킨 가치있는 시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마저 아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진리를 따라 사는 삶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과 구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 조용히 머물고자 피정에 왔다.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3년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을 보고 느낀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안에서 머물면서 그분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느끼기 위해 왔다(침묵의 생활). 물론 이같은 느낌이 하루 아침에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피정이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제자들 역시 3년의 시간, 어떻게 보면 짧지 않은 시간을 준비하며 머물렀다. 우리 역시 이번 피정 한 번으로 진리의 말씀을 다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 안에 머물고 느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물론 지루하고 침묵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볼만한 것이다. 우리에게 침묵의 시간이 없다면 정작 말조차 제대로 못할 것이다. 침묵은 우리가 조리있게 그리고 힘있게 얘기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준다. 이번 피정 동안 참다운 자유를 얻기 위해 침묵하며 예수님 안에서 머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1995년 1월 6일 노원성당 중고등부 동계피정 때 한 주제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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