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년광익 11월 3일: 현석문의 친부 현계흠(1763-1801년)의 중국어 음역 세례명 '茀祿'(부루, 11월3일)는 언제부터 '플로로' 라고 불리기 시작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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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4 ㅣ No.3210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210.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3)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1. 들어가면서

 

1-1. 본 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현계흠의 친자 현석문(1797-1846년)의 우리말 세례명 '갸오로'(嘉祿갸루, 11월4일)는 언제부터 '가를로' 로 교체되었을까???" 제목의 졸고의 작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특이한 점이 인지되었기에, 별도로 작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에 마련된 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9.htm

 

그러니까, 상당히 특이한 점이란 다음을 말합니다: 즉,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에 따르면, 자신의 친자 현석문의 수호성인으로서 정해진 근거 문헌임이 분명한 성 갸오로(가록, 嘉綠, 중국어 발음: 갸루)의 축일 11월 4일보다 하루 앞선 11월 3일이 그 첨례일/축일인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이 현석문의 친부인 현계흠의 수호성인인 점입니다.

 

(질문 1) 여러분들 생각에, 바로 이 점이, 글자 그대로 우연히 발생한, 우연적 사건 한 개(an accidental event)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필자는 결코 우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2. 자신의 친자의 수호성인의 첨례일 11월 4일보다 하루 전날에 경축되는 성인인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는, 영어 표기로 St. Florus에 대한 기술이 있는 영어 자료들과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 동계, 11월 3일에 기록된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의 행실의 첫 문장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 이들 영어 자료들 중의 St. Florus와 동일한 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Catholic_Diocese_of_Saint-Flour 

(발췌 시작)

In two documents concerning the foundation of the second monastery of St-Flour, drawn up in 1013 and 1031, and in a letter written to Pope Urban IV in 1261 by Pierre de Saint-Haon, prior of Saint-Flour, St. Flour is already considered as belonging to the Apostolic times, and the Speculum sanctorale of Bernard Gui in 1329 relates at length the legend of this "disciple of Christ".

 

성 플로로는 사도들의 시기에 포힘되는 분으로서 이미 간주되고 있으며, 그리고 1329년에 GuiSpeculum sanctorale바로 이 "그리스도의 제자"에 대한 전설을 길게 이야기합니다.

(이상, 발췌 및 마지막 문장의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2: 그러니까,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 동계, 11월 3일에 기록된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의 성인전은 1738년 당시까지 이 성인의 행실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잘 보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38_성년광익//11월_동계/1738_성년광익_11월_동계.pdf  

 

1-3. 다른 한편으로,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은, 아래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듯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을 제외하고는, 당시의 "영첨례표", "천주강생성경직해" 등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분으로 파악되는, 그리고 "성년광익"에 주어진 성 불록(茀祿)의 행실을 읽어보더라도, 프랑스인 천주교 신자들이 아니라면, 크게 기억할 그 무엇이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왜냐하면  바로 이 분이 현석문의 친부 현계흠(1763-1801년)의 수호성인으로서 선택되었음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필자가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다고 바로 위의 제1-1항에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1-4. 바로 이 상당히 특이한 점에 대하여 필자가 생각할 때에, 현계흠(1763-1801년)의 세례명을 선택한 분은, 그분이 피조물인 누구이든지 간에, 1738년에 초간된 바로 이 "성년광익"을 학습하였음은 명확한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1738년에 초간된 바로 이 "성년광익" 이외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그의 존재, 활동 내역를 별로/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이 현계흠의 수호성인으로서 선택되었는지는 상당히 굼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1-5. (필자의 고유한 추정 한 개) 바로 이 상당히 특이한 점과 관련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현계흠(1763-1801년)은, 자신의 친자 현석문이 태어나 장엄 세례(solemm baptism) 혹은 대세(private baptism)를 받게 될 무렵에 즈음하여, 자신의 친자의 향후 삶의 모범이 될 성인을 선정하여 자신의 친자의 수호성인으로 삼고자 숙고한 분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분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친자의 세례명이 '가록'(嘉祿, 축일: 11월4일; 중국어 발음: 갸루)으로 정해질 무렵에, (i) 또한 자신이 직접 자신의 친자의 수호성인으로서 매우 적합한 성인의 성인전이 기록된 "성년광익", 동계, 11월 4일을 읽는 과정에서, (ii) 바로 이 날보다 하루 전인 11월 3일이 그 축일로 배치된 성 볼록(茀祿, 축일: 11월 3일; 중국어 발음: 부루)의 성인전을 읽었을 것이 매우 분명하며, 또한 더 나아가, (iii) 현계흠은 바로 이 성 불록(茀祿)이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선정되는 과정을 거쳐, 그 자신도 또한 장엄 세례(solemn baptism) 혹은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를 받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6. 그런데, 대단히 예상 밖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홈페이지 제공의, 2014년 8월 16일에 우리나라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여 집전된 윤지충 외 123위 시복 미사에서 복자품에 오르게 된 분들의 행적을 안내하는 124위 복자 약전에 기록된, 현계흠(1763-1801년)에 대한 생평은, 바로 위의 제1-4항에서 필자가 상당히 합리적으로 추정하고(presume) 있는 바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출처: https://cbck.or.kr/koreanmartyrs/124-Martyrs/55 

(124위 복자 약전에서 발췌 시작)

현 플로로는,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살다가, 1791년 신해박해로 체포된 다음에 석방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상, 발췌 끝)

 

1-7. 그러니까 무슨 말씀인고 하면, 만약에 바로 위의 제1-6항에 발췌된 바의 첫 번째 문장의 첫 번째 부분, 즉,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살다가' 부분이, 정녕 한 개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현계흠(1763-1801년)은, 아무리 늦더라도, 1791년 이전대세(代洗, private baptism)를 받았을 것임이 매우 분명하나, 그러나 이 경우에, 예를 들어, 다음의 문제점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i) 바로 위의 출처에 제시된 그의 생평에서 도대체 그가 언제, 누구로부터 대세(代洗)를 받았는지 전혀 밝히지 않고 있고, 그리고 (ii) 위의 제1-3항에서 필자가 지적한, 역사적으로 사실들인, 바와 결코 부합하지(conform, fitting) 않는 심각한 문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8. 그런데, 특히 다음에 발췌된 바는, 위의 제1-6항에 발췌된 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즉, 모순(contradiction)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순조1년 11월 5일

https://sillok.history.go.kr/id/kwa_10111005_002 <----- 여기를 클릭하여 반드시 전문을 필독하라

(발췌 시작)

罪人玄啓欽, 綢繆關通於嗣永昌顯完淑等諸人, 周文謨出來之後, 受洗受號。

 

而當初邪黨就獄, 知機逃躱, 自知難免, 旋卽自現, 以更不染汚之意, 納招蒙放。 及夫嗣永就捕, 而情節益著, 邪黨之請來洋舶, 爛漫參涉, 日夜佇企其出來矣, 聞異國船之漂舶東萊, 委往見之, 畫示十字, 乃是邪敎中相探之法, 而以此辨其眞贗。至發於漢之文蹟、嗣永之凶書, 皆以東萊探船, 作一話本, 狼藉譸張, 轉相醞釀, 以知情不告結案, 幷正法。

 

죄인 현계흠 황사영·최창현(崔昌顯)·강완숙 등 여러 사람에게 서로 주무하고 관통(關通)하여 주문모가 나온 뒤[필자 주: 즉, 중국을 떠나서() 우리나라 조선에 온() 뒤]에 세례를 받고 명호를 받았다.

 

당초에 사당이 옥(獄)에 갇히게 되자 기미를 알고서 도피하였는데, 스스로 면하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는 돌아서 바로 자수하기를 다시는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겠다는 뜻으로써 공초(供招)를 바쳐 방면(放免)받게 되었었다. 황사영이 체포되기에 미쳐 정절(情節)이 더 드러났는데, 사당이 서양 선박을 오도록 청할 때에 함께 난만하게 참섭하여 밤낮으로 그들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이국(異國)의 선박이 동래(東萊)에 표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세히 가 보고서 십자(十字)를 그리어 보였으니, 이는 사교(邪敎)들 사이에 서로 탐문하는 방법으로 이로써 그 진위(眞僞)를 분변하였다. 주문모의 문적(文蹟)과 황사영의 흉서(凶書)가 나타나기에 이르러 모두 동래에서 탐문한 선박으로써 동일한 화본(話本)을 만들어 낭자하게 터무니없이 속이고 바꾸어 가면서 서로 빚어내었기에 지정 불고 죄로써 결안하여 아울러 정법(正法)하였다.

(이상, 발췌 끝) 

 

1-9. (질문 2) 여기까지 읽으신 여러분들의 생각에, (i) 위의 제1-6항에 발췌된 첫 번째 문장의 앞부분의 기술, 즉,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살다가'와, (ii) 바로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순조1년 11월 5일 기록 중의 유관 부분의 내용, 즉, 바로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바의 첫 번째 문장, 이들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질문 2에 대한 간단한 답변) 위의 제1-3항에서 필자가 이미 지적한 바 및 바로 아래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 고찰할 바에 의하여, 바로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순조1년 11월 5일 기록 중의, 유관 부분의 내용, 즉, 바로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바의 첫 번째 문장이, 실체적 진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음이 대단히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2. 유관 사료 분석

 

2-1. 다음은, 1801년에 발생한 신유박해 문초 기록인 "사학징의"에서 발췌한 바인데, 현석문의 친부 현계흠(1763-1801년)의 중국어 음역 세례명 '茀祿'(부루, 11월3일)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6-1819_이기경_et_al/1801_사학징의.htm

(발췌 시작)

불록茀祿_현계음_in_정법죄인질_최필제_in_1801_사학징의_권1_제74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참고 자료: 하느님의 종 124위 선정 과정과 시복 자료 정리에 관한 연구
http://home.catholic.or.kr/pdsm/bbs_view.asp?num=29&id=163195&menu=4817

 

2-2.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메이야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그 초간이 출판된 "성년광익", 동계, 11월 3일,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의 성전, 즉, 성인전의 첫 시작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38_성년광익/11월_동계/1738_성년광익_11월_동계.pdf  

(발췌 시작)

성부루(聖茀祿)_in_1738_성년광익_동계_11월3일_제108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및 다섯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성인전 첫 시작 부분의 우리말 번역 시작)

오주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께서는 즉시 세속을 버리고(棄俗) [예수님을] 좇아 따르셨으며(追隨),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로마에서 성 베드로와 함께 하셨는데(偕), 성 베드로는 성인께서 덕을 가지고 있고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아시어, [이 분을] 프랑스 나라 전교에 파견하셨습니다(遣往). 

(이상, 우리말 번역 끝)

 

2-3. 다음메 발췌된 바들로부터, 음역 표현인 "茀祿"의 중국어 발음이 "부루"임을 확인합니다:

 

2-3-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4년판_경서정음_목판본/오구라문고_소장/1784_시전정음/시전정음_책1_권1-권2.pdf  

(발췌 시작)

부茀_불_in_시전정음_권1_국풍_위풍_碩人_1734년판_제27a쪽_오구라.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3-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4년판_경서정음_목판본/오구라문고_소장/1784_맹자정음/책2_권3-권4/맹자정음_책2_권3-권4.pdf  

(발췌 시작) 

루祿_록_in_맹자정음_권4_만장하_1734년판_제17b쪽_오구라.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의 마지막 부분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4. 다음에 발췌된 바들로부터, 현계흠이 살았을 당시와 그 이후의 시기에도,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전달되었을 "영첨례표", 즉, "축일표", 11월 3일성 불록(茀祿, 중국어 발음: 부루)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2-4-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59-1654_니콜라스_롱고바르디_et_al/수진일과.htm

(발췌 시작)

부루茀祿_불록(11월3일)은_없음_갸루加祿_가록(11월4일)_in_영첨례표_in_수진일과_속권2(1659년_이후_1692년_이전)_제68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4-2.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24-1692_필립푸스_쿠플레/1712년_필사본_천주성교영첨례단.htm  

(발췌 시작) 

부루茀祿_불록(11월3일)은_없음_갸루加祿_가록(11월4일)_in_1712년_필사된_천주성교영첨례단_제11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보라.

(이상, 발췌 끝)

 

출처: 상동

(발췌 시작) 

부루茀祿_불록(11월3일)은_없음_갸루加祿_가록(11월4일)_in_1712년_필사된_천주성교영첨례단_제71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보라.

(이상, 발췌 끝)

 

2-4-3.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24-1692_필립푸스_쿠플레/영첨례표_in_1823_수진일과_하권_제110a쪽.htm  

(발췌 시작)

부루茀祿_불록(11월3일)은_없음_갸루加祿_가록(11월4일)_in_영첨례표_in_1823_수진일과_하권_제115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보라.

(이상, 발췌 끝)

 

2-5.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는 1784년경의 한자 낱글자 "保"의 음값이 "바ㅗ"(즉, 바오)임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84년판_경서정음_목판본/오구라문고_소장/1784_시전정음/시전정음_책1_권1-권2.pdf  

(발췌 시작)

바오保_보_in_시전정음_권2_山有樞_1734년판_제18a쪽_오구라.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의 마지막 글자부터 보라.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0) (i) 위의 제2-3-1항에서 고찰한 바와 (ii) 바로 위에 발췌된 바가 제공하는 정보들로부터, 현계흠이 살아있을 당시의 중국어 음역 표현 '保祿"(보록)의 중국어 음값이 "바ㅗ" + "루"(즉, 바오루)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6. 다른 한편으로,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현계흠주문모 신부로부터 장엄 세례(solemn baptism)을 받았으며, 따라서 자신의 영세명 "茀祿"(불록)의 정확한 발음도 또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주문모 신부로부터, 자신의 두 귀들로 직접 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즉, 현계흠이 살아있을 당시에 음역 표현인 "茀祿"(불록)의 중국어 발음은 "부루"이나, 그러나 대응하는 원 라틴어 이름 Florus의 발음이 "플로로"임을 잘 알고 계셨을 주문모 신부님께서예를 들어, 라틴어 이름 "Paulus"의 음역 표현인 "保祿"(보록)의 발음이 "바오로"이듯이, 원 라틴어 이름 Florus의 음역인 "茀祿"(불록)은, "부루"아니라"부오로"로 발음하여야 한다고 "현계흠"에게, 몸소 목소리로, 가르쳐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바는, 현계흠이 살아있을 당시의 음역 표현인 "嘉祿"(가록)의 중국어 발음은 "갸루"이나, 그러나, 예를 들어, 라틴어 이름 "Paulus"의 음역 표현인 "保祿"(보록)의 발음이 "바오로"이듯이, 19세가 말 혹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 음역 표현을, "갸로" 보다도, "갸오로"라고 발음해 왔음으로부터 또한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현계흠의 친자인 현석문의 세례명의 경우에주문모 신부님께서, 몸소 목소리로,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3. 본글의 결과들

 

이상, 본글에서 실증적으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0. 다음은 위의 제2-5항에서 도출된 결론입니다:

 

(이 글의 결론 0) (i) 위의 제2-3-1항에서 고찰한 바와 (ii)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바가 제공하는 정보들로부터, 현계흠이 살아있을 당시의 중국어 음역 표현 '保祿"(보록)의 중국어 음값이 "바ㅗ" + "루"(즉, 바오루)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1. (이 글의 결론 1)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위의 제1-6항에 발췌된 그리고 또한 바로 아래에 발췌된, 2014년 8월 16일에 우리나라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여 집전된 윤지충 외 123위 시복 미사에서 복자품에 오르게 된 분들의 행적을 안내하는 124위 복자 약전에 기록된, 현계흠(1763-1801년)에 대한 생평에 대단히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출처: https://cbck.or.kr/koreanmartyrs/124-Martyrs/55 

(124위 복자 약전에서 발췌 시작)

현 플로로는,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면서 살다가, 1791년 신해박해로 체포된 다음에 석방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상, 발췌 끝)

 

3-2. (이 글의 결론 2) 위의 제1-8항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다음에 발췌된 개정판 "가톨릭대사전"에 제시된 현계흠(1763-1801년)에 대한 생평에 대단히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출처: 개정판 한국가톨릭대사전

(발췌 시작)

현계흠이_주문모_신부로부터_영세를_받았음(조선왕조실록_순조1년_11월5일)과_모순되는_기술임.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1) [본글의 제목에 제시된 질문에 대한 답글] 바로 위에 발췌된 개정판 "한국가톨릭대사전"의 본문에서, 현계흠의 세례명이 "바오로"라고 크게 잘못 기술되어 있는데, 바로 이 오류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2008년쯤에 와서,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여 우리나라 광화문에서 거행된 윤지충 외 123위의 시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플로로"로 바로 잡혔다고 알고 있다. 각주 32)를 보라: 

http://home.catholic.or.kr/pdsm/bbs_view.asp?num=29&id=163195&menu=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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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사족이지만, 2014년 8월 16일 무더웠던 여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여 우리나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윤지충 외 123위 시복 미사에, 무지카 사크라 합창단원인 필자는, 성가대원으로서 참석하였으며, 당시 성가대 지휘는 최호영 신부님께서 맡으셨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시복 미사와 관련하여 당시의 모습들을 잘 붙잡아두고자 필자가 작성한 졸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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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의 제1-6항에 발췌된 바는, 바로 위에 발췌된 개정판 "한국가톨릭대사전"오류를 베껴쓰다보니 발생한 오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며, 흐르는 세월 속에서, 개정판 "한국가톨릭대사전"의 바로 이 심각한 오류 한 개가 점차 퍼져 나가는 한 단면으로 생각됨.

 

(3) 그리고 본글은, 현계흠 본인이 알고 있었던 자신의 세례명이 "부오로"이었을 것임을, 실증적으로 입증/고증하는 졸고이다.

(이상, 게시자 주 3-2 끝)

 

3-3. (이 글의 결론 3) 만약에 개정판 "한국가톨릭대사전" 중의 "현계흠"에 대한 기술을 제공한 분이, (i) 1738년에 그 초간이 출판된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의 한문본 "성년광익", 동계, 11월 3일 및 11월 4일, 그리고 (ii) 조선왕조실록, 순조1년, 11월 5일자 기록, 이들 둘 다를 사전에 학습하였더라면(가정법 과거완료), 본글의 제1-6항 및 (이 글의 결론 2)에서 지적하고 있는 대단히 심각한 오류들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4. (이 글의 결론 4) 지금까지와는 달리,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우리나라 조선에 입국한 시점인 1834년 이전에 중국어로 음역된 세례명들을 자신들의 영세명들로서 사용하였던,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세례명들의 라틴어 발음들과 상당히 다를 수도 있는,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들의 세례명들을 또한 회복하여 이분들의 기존의 생평 기록들 중의 세례명들에 추가하는 작업을 하여야 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5. (이 글의 결론 5) 현석문의 친부 현계흠(1763-1801년)의 중국어 음역 세례명이, 위의 제2-6항에 의하여, "茀祿(11월 3일)임은,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들이 18세기 후반부에 1738년판 "성년광익"을 입수하여 학습하였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그리고 확정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현계흠(1763-1801년)의 세례명을 선정한 분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분과 현계흠 자신이 1738년판 "성년광익"을 학습할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하였더라면, 위의 제1-3항에서 이미 지적한 바에 의하여, 그의 세례명은 결코 "茀祿"(11월 3일)일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본글의 또 다른 결과 한 개

 

4-1. (이 글의 결과 6) 위의 제3-6항에서 말씀드린 바에 근거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에서 소장 중인 우리말본 "셩경광익직해"가, 조한건 신부의 박사 학위 논문 중에서 언급되고 있는 현존하는 여러 필사본들 보다 더 오래된, 가장 오래된 필사본의 사본임이 입증됨을, 더 구체적으로, 1894년 이전의 필사본의 사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바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하듯이, "바오로" 대신에, 중국어 음역 표현 '保祿"(보록)의 중국어 음값 "바ㅗ" + "루"(즉, 바오루)[주: 위의 제2-5항에 있는 (이 글의 결론 0) 참조]가 천진암 성지에서 소장 중인 우리말본 "셩경광익직해"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천진암 소장 제114권 1 셩경직해광익 제1권 상편

(발췌 시작)

바오루_in_천진암_소장_제114권_1_셩경직해광익_제1권_상편_제7a쪽_p15.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라틴어 이름 "Paulus"의 중국어 음역 발음의 우리말 표기인 "바ㅗ" + "루"(즉, 바오루)를 볼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더 구체적으로, (i)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과, (ii)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에서 위에서 열한 번째 행(row), 이들 둘 다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십시오:

 

출처: 조한건 신부의 박사학위 논문(2011년) 제36쪽

(발췌 시작)

셩경직해광익_필사본들의_고유명사_표기_대조표_in_2011_조한건_신부_박사학위논문_제36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위에서 열한 번째 행(row)를 보라. 위의 제3-6항에서 기 말씀드린, 1794년에 우리나라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의 가르침에 의한, 라틴어 이름 "Paulus"의 음역 발음의 우리말 표기인 "바ㅗ" + "로"(즉, 바오로)만을 오로지 볼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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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20시간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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