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상담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답변 글 역시 닉네임으로 표기되며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내가 냉담했던 이유

인쇄

비공개 []

1999-08-30 ㅣ No.279

고등학교 3학년때 신학대학 시험을 치렀습니다.

추천서를 써 주셨던 신부님께서는 제가 신학대학 원서를 낼 때 즈음해서 다른 본당으로 가시고 신학교에서 교수를 하셨던 분이 새 주임신부님으로 오셨습니다. 주임신부로서는 저의 본당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참 잘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본당에서 시험을 친 4명이 모조리 낙방을 하던 그날부터 신부님의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그날인가 그 다음 날이었던가, 매일미사를 꼬박꼬박 참석하였던 저는 항상 그랬듯이 미사 끝나고 성당마당에서 신부님께 인사를 하였는데 신부님께서는 제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수 있다 싶었는데 매일미사를 나가는 저에게 매일 신부님께선 그렇게 하셨고 결국 어느 날인가 신부님은 절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시면 뒤이어 "너는 사제성소가 없다. 그러니 다른 대학을 알아보도록 해라. 그리고 내년에는 신학교 시험을 칠 생각도 마라. 니가 다시 오더라도 난 추천서를 써 줄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서울교구 예비신학생 중1 첫모임에서부터 고3 마지막 모임까지 열심히 다녔던 나였지만 사실 학업에는 게을리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대학에 붙지 못하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것때문에 다른 어떤 조건이 흔들린다든지 하는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는데 신부님의 그 한마디로 저는 "쇼크"를 먹고 말았습니다. 낙방후 매일미사를 나갔던 것이 신부님께 잘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내 삶이 그저 그러하였기에 다녔던 미사였는데도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응답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를 포함한 4명은 그렇게 신부님께 "쇼크"를 먹고 그대로 성당에서 빠져 나가 버렸습니다. 낙방을 하면서도 그날까지 나는 열심히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라고 자부를 하였건만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렇게 성당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유아영세를 받고 복사단 활동도 하고 예비신학생 모임도 다녔던 그러한 것들은 신부님의 한마디에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한 신앙생활도 신학대학을 응시하기 위해선 소위 제대로 나온 성적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그렇게 낙방해온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강제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서 시작된 냉담생활. 당시에 벌써 어른이었다면 아마도 더 크게 타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저 시간때우기로 만화방이나 전전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후에 예신모임 담당 수녀님으로부터 그 신부님이 신학교 내에서도 과히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이미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나의 신앙을 다시 건져올리기라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하느님과 나 사이에 연결되어진 신앙이라는 끈은 누구도 자를 수 없고 누구도 이을 수 없다. 나의 신앙은 나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이다. 그 신부님이 뭐라 했던 간에 그것은 너의 신앙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너를 어떻게 하는 것은 너 자신이다. 그러므로 내일부터라도 다른 성당으로 가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주 부턴가 그렇게 성당을 다시 다녔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성당은 다른데 있으면서도 거길 갈 수 없다는 슬픔과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던 그 사제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안주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년동안 계속 그 신부님과의 일을 떠올리며 살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몇년이 흐른뒤에 지금은 가끔 그 신부님과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머리로는 용서가 되어도 마음으로는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이 일때문에 고해성사도 봤지만 구체적인 해답이란 나에게 있으면서도 그것을 행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고 그 신부님을 찾아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얼굴도 보기 싫은 그 신부님과 마주한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떠난뒤에야 가끔씩 저의 본당이었던 곳을 찾아가곤 합니다. 그러면 저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몇몇 신자분들이 아는체도 해주시고 인사도 해주십니다. 그러면 저는 참 기쁩니다. 그러나 내가 왜 발을 끊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슬퍼집니다.

단 한명의 사제로 인하여 15년간 뿌리를 내렸던 성당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사람의 마음을 여러분은 아실런지요. 그러고도 제 후배에게 성적운운하면서 추천서 써주길 거부했고 그 후배마저 냉담하는 모습을 봐야 했을때 저의 마음은 어땠는 줄 아십니까?

그리고 그 신부님이 주일학교 교사는 적어도 전문대 재학생 이상이어야 된다고 하여 성당후배가 다니던 직장을 만두고 전문대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 저의 마음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신부님이 너무나도 인간적이기에 인간적으로 슬퍼해야 했던 사람의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하실런지요.

 

성당은 잘 다니고 있지만 사제라는 존재에 대하여 저는 큰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제도 인간이기에 이해해야 한다는 슬픈 변명과 함께 하느님의 대리자로서의 그들이 타인에게 저지르고 있을 크나큰 죄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용서를 해야할 것인지요?



762 0댓글쓰기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