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글라라] "왜" 파업에 반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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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리 [claire77] 쪽지 캡슐

1999-04-25 ㅣ No.27

 

                       "왜" 파업에 반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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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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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올라온 몇몇 글들을 읽어봤습니다.

 

노동자분들을 보면서 가슴 답답하지 않은 이 없을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왜" 답답한지는 저마다 다르겠지요...

 

아래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 다시 이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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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천막이 세워지고 노동자들이 모이면서

 

여러가지 보기 안좋은 모습들이 생겨난 건 인정합니다.

 

성모상 주변의 방뇨, 미사 동안에도 계속되는 소란스러움..

 

네, 분명 그 면에서는 노동자분들도 잘못하였습니다..

 

고쳐야 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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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당내 노동자 쟁의행위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가

 

단순히 이것때문이라면 저는 오히려

 

그분들을 감싸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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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겐 지하철 노동자분들이 외치는 소리가

 

단순한 "싸움"과 "증오"의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분들의 외침이 그런 것들일까요?

 

저에게는 그분들의 소리가

 

하느님을 향한, "인간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권익이 아닌, "함께 잘 살아가자"는

 

애끓는 절규로 들리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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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습니다...

 

노동자분들에게 "화해"와 "평화"를 요구하면서

 

님들은 정작 그 "화해"와 "평화"의 완성을 위해

 

무엇을 "행"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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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업에 반대하십니까?

 

명동성당이 다시 공권력에 의해 침탈당할까봐

 

두려워서입니까?

 

하느님 찬양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존권까지

 

지키기 위해 새벽 찬기운 올라오는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새우잠 자는 사람들로부터 눈 돌린 채,

 

당신을 찬양하는, 당신께 예배드리는 소리를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받아들이실까요?

 

정말 그러한 하느님이라면, 차라리 저는

 

믿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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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성지가 공권력에 의해

 

침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약자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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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주님임을 믿는 것은

 

단순히 "말"로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고통 속에 십자가에 못박혀야 했던 것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 개인의 죄에 대한 대속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죄악 ─ 인간이 인간을 억누르고,

 

인간이 자연을 억누르는 ─ 하느님의 가치에 거스르는

 

죄악에 대한 대속을 위함이라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도, 이스라엘 민족의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로 확대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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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이러한 인류구원의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즉 이 땅을 "복음화"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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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수를 늘리는 것만이 복음화는 아닙니다.

 

진정한 복음화는, 하느님의 가치에 거슬리는

 

모든 억압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억눌린 이들의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주며, "옥에 갖힌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이사야 61.1)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느님 은총의 대희년을 선포하는" 일임을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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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는 "실천"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억눌린 이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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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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