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4월 24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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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04-25 ㅣ No.26

08:00 - 안내실 직원 최씨 아저씨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찾아왔다.

      '신부님! 문화관 앞 천막과 급수차를 철수해 달라고 했는데, 막 항의를 합니다.

      어제 신부님과 이야기 됐다면서요. 어떻게 하지요?'

      '그래요. 제가 가보지요. 아저씨는 쉬세요.'

      지하철 노조 사무국장을 만났다. 함께 문화관 앞으로 갔다. 천막 한 동이 문화관

      입구를 2/3가량을 막고 있었고, 급수차가 가로로 놓여 있었다.

      '저렇게 놓으면 출입하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그렇군요.'

      '지금은 세면을 하시고, 예식이 진행될 때는 좀 치워주시죠.'

      '좋습니다.'

      쉽게 해결될 문제인 것을....  노사 양측도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10:20 - 지하철 노조 법규부장이 찾아왔다.

      '신부님! 문화관 앞은 정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집행부가 혹시

      끼치게 될 불편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오늘 결혼할 분들에게 전해 주십시요.'

        흰 봉투 6개를 내어 놓는다. 축의금이다.

      '주차문제 해결을 위해 아래 회관 주차장에 안내요원 10명을 선발해 돕도록 했고,

      주차비는 저희가 준비해 미리 주었습니다.'

        참 고맙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참

      아름다울 것인데.... 정치하시는 분들도, 재계와 노동계도, 국민 모두가........

      누가 뭐래도 동방의 샛별, 동방의 희망, 아니 세계의 희망 대한민국이 될텐데.

10:50 - 어수선하긴 해도 제법 평온하고 질서도 있어보이며 정리가 된 모습이다.

      혼주들도 즐거워한다. 어떤 혼주는 걱정이 되어 2시간이나 먼저 도착해 현장을 확인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모두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기뻐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로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물론 그러기 위해 희생이 뒤 따르지만)

      서로가 기쁘고 다른 사람들도 기쁜 모습을 보이니 얼마나 좋은가! 이 사태도 그렇게

      해결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찾아보자. 함께 찾아보자. 부추기고 불평하기보다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찾아보자. 우리의 시위문화도 이랬으면 좋겠다. 지금 늦기는 했어도

      여기서 그런 모습이 시작되지 않는가?

13:30 - 16:00 - 어? 결혼식 후 사진촬영을 사제관 앞에서?

      혹 시간이 길어져 계속되는 혼인예식에 차질이 생길 것같으면 혼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제관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라고 했는데, 그럼 기어코 차질이? 차질이 생겼다.

      주례 신부님이 독일인이다 보니 예식이 55분까지 간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도 사태를

      이해하고 성당 밖 사제관 앞에서의 촬영에 흔쾌이 허락했다. 고마운 일이다.

      계속되는 야외촬영에 모두 협조해 주었다. 단 한차례 경미한 항의는 있었다.

      성모동산의 노조원들을 나가라 하고 촬영을 해 주어야 하지 안느냐는 것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요.'

      이해하여 주었다. 고맙다. 자칫 서로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뻔 했다. 그러나 이해와

      양보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새삼 느낄수 있었다. 무사히 6시간에 걸친 6차례의

      혼인예식이 끝나지 않았는가!

      '우리 국민의 저력이다. 그 저력이 모두의 노력을 빛나게 했다. 그런 노력들이 여기

      지금 이곳 성당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 구석구석에서 일어난다면, 아! 꿈일까?

      지하철 노조원들의 인내심과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또한 혼주들과 까치발을 들며

      힘들게 촬영에 협조해주신 모든 하객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희망과 용기를 준다. 해보자! 모두 해보자!'

14:00 - 서울 경찰청 간부 1명이 방문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에스콧을 요청해 왔다. 기꺼이 응했지만 씁쓸하다.

      이곳은 성당인데, 누구나가 자유롭게 드나들고 누구나가 방문할 수 있는 곳인데,

      어찌하여......   상황이 이렇게 하느님의 집을.........

        경)사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

        교)물론이다. 최선을 다 하겠다. 인내심을 갖고 서로 노력해 보자.

        경)우리도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어제 발표대로 서울대는 시위용품이 있다.

        교)불행한 일이다. 또 다시 최류탄이 터지고, 화염병이 날고, 각목과 쇠파이프가

      난무한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그런 불행한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당신들도 힘이 들겠지만 함께 노력해 달라.

        경)우리도 최선을 다 하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항의 전화를 한다. '성당 진입로를 차단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하라고, 왜 성당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느냐고' 때로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렇지만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시위와 농성의 형태를 평화의 형태로 바꾸고자

      하는데는 근본적으로 찬성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일은 폭력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간디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단식으로 투쟁하지는 않았다. 다만 갈라져 싸우는 형제들이 일치하고 평화롭게

      화합하며 일들을 해결해 나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것이 좋다고 한순간에 그렇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안는가!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서야 얻어지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하며 노력해야 한다.

17:50 - 스피커 소리에 회의를 할 수가 없다.

      오늘로 예정된 시위가 시작되었나 보다. '총력투쟁승리대회(민노총), 실업자

      대회(민노총), 농민대회(전국농민협회), 노동결의 대회(노동자, 농민협의회공동)'

      약 10,000여명의 시위대가 명동을 가득 메웠다. 한총련 소속 학생들도 다수 보인다.

      거리의 곳곳에서 자신들의 독특한 방법으로 시위를 한다. 70년대 80년의 시위양상과는

      많이 다르다. 긴장감도 없다. 철시한 상가도 없다. 명동 거리는 여전히 북적인다.

      대학로의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같다. 같지만 다른 것은 통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검문으로가 아니라, 최류탄의 고통으로가 아니라, 살벌한 대치가 아니라, 통행

      차단으로가 아니라, 인파 때문이다. 인파 사이를 헤치며 단체 외국인 관광단이 로얄

      호텔로 향하며 한 마디. "왜 농성 영역이 없나? 질서가 너무 없다" 얼굴을 찡그리며

      힘겨워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저 넓은 국회 의사당 앞 잔듸밭은 누굴 위한 것일까?

      국회 의사당은 누구의 것인가? 국회의원은 누구인가? 국회의원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안스러워 보인다. 저 돌 위에 천막을 치고, 저 돌들

      위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있지 않는가? 저들은 누구일까? 저 국회 의사당 잔듸는

      푹신해서 훨신 좋을텐데........

21:00 - 집회도 공연도 끝났다. 지하철 노조원들이 성당 천막으로 돌아온다. 늦은 저녁이다.

      이제서야 저녁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다니. 6일 전과는 많이 다르다. 막무가내이던

      사람들, 아무말이나 막 해대던 사람들, 아무렇게나 행동하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도

      차츰 변했다. 지금 보아서는 그렇다. 미안해 할 줄 알고, 되도록이면 피해를 주려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21:20 - 1지구 11개 본당 청년 레지오 단원들 100여명이 성모동산을 향해 행진한다.

      지하철 노조원들이 천막을 지탱하고 세워주는 줄을 푼다. 천막이 기우뚱하는 것을

      붙들고 있다. 행열이 원할하게 되기 위해 줄을 푼 것이다. 십자가를 앞 세우고,

      벡실리움을 가슴에 안고 단기를 들고 촛불을 켜들고 성모님 앞으로 나아간다. 뒤에서

      "저녁은 좀 있다 먹자, 너도 이 기회에 회개좀 해라. 함께가서 기도하자."

      "저건 뭐하는 거냐? 응, 저건 레지오라고........."

      노조원들 속에는 가톨릭 신자들도 많은가 보다. 뿌뜻해 하는 모습들이다.

      3일 전에는 야간 순찰을 돌던 중, 노조원 중 한 명이 고해성사를 하더니..........

      내일은 신자 노조원들이 미사참례를 하겠다고 한다.

        허! 이거 참! 아주 이상한 일들이군.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후덕지근한 날씨가 수그러들려나?

      지금 시간 00:25이다. 밖은 조용하다. 오랜만에 푹 자야겠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큰 기쁨일 줄이야...

      아지도 이르긴 하지만 그래도 전 실망하지 않으렵니다. 비록 또 믿음을 깨뜨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전 희망을 갖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인내로이 간직하렵니다. 온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한...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지혜와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도 드립니다.

      저에게는 달콤한 잠과 꿈을 한 아름...... 아닙니다.......히-(^.^)"  

        ***파란색 글씨는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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