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터

당신을 사랑한 죄입니다

인쇄

이성국 [skpaul] 쪽지 캡슐

2004-02-21 ㅣ No.480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사라진 것들의 뒷모습이 궁금한

 

낯선 간이역에서 완행 열차를 타고

 

행선지 없이 무작정 떠나고 싶은 적 있나요

 

 

베고니아 꽃잎 같은 숨결 접어 선반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고

 

한 줌 불빛으로 죽은 듯이 앉아

 

종점에서 종점까지 사나흘쯤 떠돌고 싶은 적 있나요

 

 

미세한 떨림도 느낄 수 없는 차창 한 켠에

 

왼쪽 아니면 오른쪽 머리를 파묻고

 

눈물나게 그리운 사람 불러내어

 

잘못 쓴 메모처럼 흔적없이 지우고 싶은 적 있나요

 

 

비좁은 통로를 느릿느릿 핥고 가는 홍익회 밀 차에서

 

오렌지 한 알 샀을 뿐인데

 

껍질도 벗기지 못한 채

 

빈 들판 풍경 되어 목멘 적 있나요

 

 

                당신을 사랑한 죄입니다 / 심미숙



19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