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두번째 백수의 사랑이야기...26-27/27

인쇄

임동현 [imjoseph] 쪽지 캡슐

2000-04-30 ㅣ No.1784

 

†. 찬미예수

 

안녕하세요?  제기동 식구들...

 

오늘로 사랑이야기를 접어야 겠네요.

 

오늘 일찍 일어났죠?

 

사실, 어디 멀리좀 다녀올데가 있어서.....

 

6시 미사때까지 못올꺼 같아서

 

글로 성가대 못간다고 알려드립니다.  죄송.....

 

어제 특전미사를 드렸거든요.

 

태균이형! 미안해요.

 

글구, 게시판으로 이야기를 보는게

 

약간 짜증날 듯 해서 한글파일로도 올려드립니다.

 

많이들 받아보세요.

 

작자에 대한 소개는 이따 밤에 올려드리도록 하죠.

 


 

26편

 

자취생: 후. 녀석이 지금 떨고 있다. 그럴만도 하지. 녀석은 지금 이 고비를 못넘긴다면 오늘 나의 상태로 봐서 이걸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이다.

"빨랑 쳐 섀꺄."

공은 적구를 살짝 벗어나 다이의 꼭지점에 가 안겼다. 난 노란공을 힘껏 쳤다. 공이 시원스레 다이를 한바퀴 돌고 오더니 적구를 스쳐 녀석이 박아 놓은 흰공을 사정없이 때렸다.

"푸하하. 드디어 이겼다."

최근 몇달동안 녀석을 이겨본적이 있던가? 가방에서 액자를 꺼냈다.

"야. 너도 와서 감상해."

"너 이거. 합성한거지?"

"너같이 의심많은 놈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되는거야 임마."

"그래도, 개과 촌놈주제에..."

 

백수아가씨: 후. 녀석이 지금 떨고 있다. 그럴만도 하지. 녀석은 지금 이 문제를 못푼다면 옆에서 문제를 다풀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현주한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현주는 국어는 잘 못하는데, 영어는 오히려 철민이보다 낫다. 둘이서 별말은 안하지만 눈치보고 눈싸움하고 어쩌다 오늘처럼 누구는 풀었는데 누구는 못푸는 일이 생기면 의기양양하거나 의기소침하는 일이 벌어진다.

두 녀석들 하는 짓이 귀엽다. 현주 얘기를 들어보면 일년이상 학교 등하교시 자기가 타고 가는 버스에 철민이 녀석이 보였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는 일부러 자기가 타는 시간에 맞추어 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현재 그녀석도 만화방에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보러 왔던거 같다.

 

만화방총각: 오랜만이다. 만화방에 먼지가 많이 내려 앉아 있군. 이 만화방도 이번달이 지나면 작별이구나. 역시... 가출이란 효과가 있단 말씀이야. 그럼 내가 누군데 삼대독잔데... 혜지씨한테는 참 미안하다. 만화방이 열린걸 보면 한번쯤 찾아 오겠지. 단골 그녀석도 보고 싶다.

오늘 그동안 못받은 신간도 받고 청소도 해야하고 할일이 많겠다.

 

자취생:액자의 사진을 광고하고 다니느라 좀 바빴다. 음 놀랐을거다. 이런걸 보고 금의환향이라고 하는거다. 하하. 집에 어머니 옆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우리집에는 8년정도 된 아주 고급오디오가 있다. 내키보다 훨씬 길다.

소리빵빵하지. 없는 기능 없지. 단점이라면 요즘 오디오처럼 조작이 간편하지 않다는 거다. 저걸 왜 샀을까? 저거 작동할 줄 아는 사람은 나뿐이걸랑. 내가 서울가고 나면 저건 그냥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어머니."

"왜그러느냐?"

"음악이 듣기 좋죠?"

"그렇구나. 비싼거라 틀리긴 틀리구나."

"나 장가가서 여기서 살까. 음악틀어주게."

"그래 너도 조금 있으면 장가를 가야지."

"보내주게?"

"갈려면 그래도 반듯한 직장이나, 뭐 해놓은게 있어야 되지 않겠니?"

"그거 있으면 보내주게요?"

"아직은 이르지 않나? 아홉수는 가는게 아니고 그렇다고 서른살은 조금 늦고..."

"스무여덟살은?"

"그러고보니 내년이네... 세월이 참 빠르다. 내 아들이 벌써 장가 갈 나이가 다됐으니..."

 

백수아가씨: 왜 한동안 잠잠하나 했어. 우리 엄마 새해 되니 나 시집보낼려고 안달이 나셨다.

"내 친구중에 말숙이 아줌마라고 알지?"

"응. 알아요."

"그집 사촌중에 이번에 고시패스한 사람이 있대. 선한번 봐라."

"싫어요."

"그럼. 김교장님 알지?"

"아빠 대학 선배님이시라는 분?"

"응. 그분 아들이 레지던트잖아. 선한번 봐라."

"싫은데..."

"야이 지지배야. 니가 뭐 잘났다고 튕기냐. 너도 이제 스물일곱이다. 내년부터는 쳐다도 안봐."

치... 엄마는 그사람 성격은 어떤지. 착하고 성실한지 아니면 대인관계가 어떠해서 부인될 사람한테 잘할 것 같다라던지 이런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그저 고시 패스했다느니. 의사다느니, 아니면 아버지가 누구라느니 이런말 뿐이시구나. 그래 나도 사람인데 결혼할 사람의 배경을 따지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은 싫다.

"어디 착한 사람은 없어?"

"착한사람?"

"그 있잖아, 엄마 물통들어주던 그사람. 착하다며?"

"그 학생을 내가 어떻게 아냐? 그리고 착한게 밥먹여 주냐?"

"참 엄마두. 양심이 있어라."

"근데 갑자기 그 학생 얘기는 왜 나오냐?"

"그냥."

 

만화방총각: 정경이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아버지가 정경이를 보시더니 참한 것 같다고 하셨다. 역시 아버지는 내편이시다. 어머니는 아직도 좀 못마땅하시지만 앞으로 좋아지시겠지. 너무 서둔게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 만화방문을 열었건만 아직 혜지씨도 그 단골 녀석도 나타나지 않았다. 청첩장도 주고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도 보여주고 싶은데...

 

자취생: 내일이면 올라가야 겠다. 오늘은 아버지가 차도 안가지고 나가셨다. 헨드폰도 그대로 있네. 잘됐다. 드라이버나 해야지. 용이와 그녀석 애인을 태우고 근처 호수의 한적한 커피숖으로 갔다. 저 두녀석이 참 부러웠었는데 이제는 뭐 나도 만나는 사람이 있다. 띠리리릭... 얼라리요? 헨드폰이 울리네. 혹시 차가지고 나갔다고 우리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신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오."

"혹시 현재 아닌가요?"

낯이 익은 서울말이다.

"맞는데요."

"저에요. 최"

"어? 어떻게... 이번호를 알고?"

"호호 집에다 전화를 했더니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시던걸요."

"아 예. 그랬군요."

"차가지고 나갔다면서요?"

"잠깐만요. 그럼 집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아... 참 그것도 안가르쳐 주었지. 내가 어떻게 알았더라? 그냥 아는 수가 있어요."

"그래요? 그럼 그런가보죠 뭐. 근데 왠일이에요?"

"그냥. 언제쯤 올라오나 해서요."

"예. 내일 올라갈 거에요."

"그래요? 그럼 올라와서 꼭 삐삐치세요."

"그래요. 올라가서 보도록 할께요."

용이 녀석이 날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사진속의 여자냐라고 물었다. 당근이지. 니 애인이라면서 존댓말이냐라며 지금까지 구라친거라며 침을 튀긴다.

"존댓말 하면 안되냐? 씨. 그리고 가끔 그녀가 나한테 반말도 해."

그런데 우리고향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자취방 전화번호를 대고 내이름 추적하면 여기 전화번호가 나오나?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 궁금증보다 여기까지 전화를 다해준 그녀가 참 사랑스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하. 우쒸. 또 긁어 먹었다. 백하다가 사이드미러에 보이지도 않게 누가 버려놓은 고장난 티비에 긁혔다. 아버지 이번에는 뒷범퍼 밑입니다.

 

백수아가씨: 선보라고 했을때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었다. 한때나마 내가 결혼상대로 녀석을 생각한게 후회스럽다. 어떻게 내려간지 나흘이 지났건만 삐삐한통 안치냐? 녀석 집에다 전화를 해보았다. 집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기에...

"안녕하세요. 저 현재 서울친군데요."

"어. 그래."

"현재는 어디 나갔나요?"

"그놈? 우리아들? 그놈이 지애비차를 끌고 나가버렸네."

"그래요."

"바쁜일이면 헨드폰번호 가르쳐주까? 이놈이 헨드폰도 같이 가지고 나갔네."

"예.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ㄴ다."

"그래 받아 적어. ***-***-****"

"예 ***-***-**** 맞나요?"

"맞어. 전화해가지고 차 빨리 가지고 들어오라고 전해줘. 또 긁어놓으면 지애비가 가만 안둔다고 했거든..."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쿠. 베스트 드라이버라면서?

 

만화방총각: 오늘로 만화방을 다시 연지 사흘째가 되었건만 혜지씨하고 그 단골녀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늘은 오후에 정경이 부모님 만나뵈러 가야되는데...

 

자취생: 드디어 내일이면 올라가는구나. 이번에도 어머니는 많은걸 싸놓으셨다. 하지만 겨울 옷가지가 없었기 때문에 저번보다는 짐이 많지 않을거 같다. 집에 내려와서 항상 다시 올라갈 전날은 마음이 울적했는데 오늘은 뭐 그렇지도 않다. 앨범도 꺼내 보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사진만 한번씩 쳐다보고 히죽 웃기만 했었다. 아. 맞다. 그녀가 나한테 조금 오래된 사진을 한장 부탁했었지.

멋있다. 초등학교 졸업식때 찍은 사진이다. 뒤로 학교 정경이 펼쳐져 있고 소년이 좀 어색하게 웃고는 있지만 멋있다. 근데 왜 그녀는 요즘 사진이 아니라 오래된 사진을 원했을까? 지금 내모습이 좀 보기 그런가? 우리 어머니께서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그러시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출근하시는 아버지차를 얻어타야하기 때문이다. 밝은 모습의 우리 아버지

"열심히 해라."

그말 뿐이시다. 아직 긁어 놓은게 발각되지 않았다.

상자하나만 어깨이 이고, 가방하나만 들었다. 가뿐하다. 만화방을 지나쳐 내 자취방이 얼마 안있어 나타날 것이다. 어라? 만화방이 문을 열었네?

 

백수아가씨: 아침에 자동차학원을 다녀오다가 수퍼에 갈 일이 있었다. 오늘 현재가 올라온다. 쬐금 보고싶다. 그래 많이 보고 싶다. 어라? 만화방이 영업을 한다. 당연히 들어가 보았다. 한달만에 보는거 같다. 이병씨의 모습을... 그가 참 반갑게 날 맞이했다. 그의 모습은 별로 변한게 없었다.

"오랜만이네요. 어디 가셨었어요?"

"예. 이곳저곳 여행을 좀 했었지요."

"외국이라도 나가셨어요."

"아니요. 그냥 우리나라 안가본 도시들 몇군데 둘러 봤어요. 나중에 사진보여드릴께요."

"그랬군요. 하여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워요."

"하하. 근데 조금 있으면 이 만화방 딴사람에게 넘길거에요.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뭔데요? 청첩장?"

"하하 나 조금있으면 결혼해요."

권정경이라... 공책에 쓰여있던 여자의 이름이다.

"아.. 그때 만화방 오셨던 그분이군요."

"예. 좀 힘들었죠. "

"축하해요."

"그 라면 끓이던 친구분은 어디 가셨나? 3일전에 만화방문을 열었는데 안보이네요."

"아. 고향내려갔어요."

"그래 말투에 약간 사투리가 섞이더니만 어디 사람이래요?"

"진주사람..."

"친구분이 맞나봐요. 아닌가 했는데... 진주라..."

"예 친구 맞아요. "

"가만 진주면... 이번에 여행할때 진주도 갔었어요. 살기좋은 곳이더군요."

"예..."

이병씨가 결혼한댄다. 조금 부럽다. 그리고 조금있어 만화방을 떠난다니 아쉽기도 하다.

 

만화방총각: 점심무렵에 혜지씨가 만화방을 찾아왔다. 반가웠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밝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물론 내가 결혼한다는 얘기도...

"참 내일 정경이 하고 결혼예복 보러갈건데 같이 안갈래요?"

"제가 왜요?"

"혜지씨도 나이가 곧 결혼할 나이잖아요. 예복같은거 미리 봐두면 좋을까 해서요. 그리고 저번에 정경이하고 서먹한거 같아서 소개도 시켜주고 싶어서요. 그때 아직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어서. 식사라도 같이하면 좋잖아요."

"흠... 그래도... 그리고 뭐가 죄송한지?"

"아... 아니에요. 같이 안 가실래요?"

그러던 차에 단골녀석이 어깨에 박스를 매고 들어왔다. 지금까지 만화방 온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은 짐을 지고 온 손님의 모습이었다.

 

자취생: 집에 짐을 갔다놓고 가볼까? 아니면 그냥 지금 한번 들어가 볼까? 다시

나오기 귀찮은데 지금 들어가보자. 어라? 혜지씨도 있네. 하하 바로 들어오길 잘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예. 참 혜지씨 혼자가기 그러시다면 친구분 하고 같이 가시면 되겠다. 저도

자랑도 좀 하고..."

뭔 얘기 하는거야?

"그럴까요? 현재씨 내일 안바쁘죠?" 씨 내가 왔는데 반갑다는 말도 없이 내일

안바쁘다니...

"뭐가요?"

"하하. 이름이 현재였군요. 현재군 이거 하나 받으세요."

청첩장? 그럼 장가갈려고 지금까지 문을 안열었단 말이야?

"그럼 내일 다시 올께요. 가요 현재씨."

"예. 정경이가 내일 여기로 올거에요. 점심때쯤에 오면 될거에요."

뭔말인지...? 어깨에 있던 박스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혜지씨 손에 이끌려 다시 나오고 말았다.

 

마지막(27)편.

 

백수아가씨: 자기 부인될 사람 결혼 예복보러 가는데 날 왜 데려 갈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하하. 그때 등장한 반가운 얼굴이 있었으니, 라면박스를 어깨에 이고 큰가방을 옆에 둘러맨 현재였다. 쿠쿠 저녀석 집에 한번 내려갈때마다 집안 살림 거들내고 오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 이녀석하고 같이라면 뭐 못따라 갈것도 없다. 식사하게되면 이병씨가 계산을 하겠지? 마침 토요일이고 좋다 녀석이 무겁게 보이는 짐 두개를 가뿐히 들고 내 옆에서 걷고 있다.

"가방 이리 주세요."

"이거 상당히 무거운데..."

녀석 말대로 상당히 무거웠다.

"집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왔어요?"

"하하. 뭐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곰탕만 먹고 온거 같아요."

"곰탕이면 몸보신 좀 했겠네요."

"예. 근데 만화방 아저씨랑 무슨 얘기 한거에요?"

"내일 나하고 같이 가서 그 사람한테 저녁 얻어먹어요."

"그 얘기였어요?"

"자기랑 결혼할 사람도 같이 나올거에요."

"그러죠 뭐."

라면은 잘 끓이는데 커피는 아직이다. 물붓고 나서 다시 맛을 맞추어야 하니...

 

만화방총각: 괜한 말 할뻔 했다. 내가 왜 그때 일을 또 끄집어 내려고 했을까? 단골녀석하고 혜지씨의 모습이 많이 가까워진 거 같았다. 오늘은 정경이 부모님도 만나보고 집에가서 차도 가지고 와야겠다. 내일이면 정경이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겠구나. 설렌다.

 

자취생: 이번에도 들고온 가방을 내방까지 들어다 줄려고 했다. 저번에는 거절을 했지만 지금은 뭐 굳이 거절 할 이유가 없다. 커피까지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저번에는 간을 잘 맞추었는데...

"참 사진 가지고 왔어요."

"초등학교 졸업식때 찍은 사진이네요. 귀엽네요."

"예. 그때가 내 전성기의 마지막이었지요."

"왜요? "

"하하 그 이후론 계속 남자들 틈에서 자랐거든요."

"쿠쿠. 저도 초등학교 이후에는 계속 여자들틈이었어요."

"그래도 혜지씨는 남자친구라도 있었겠지만 흑 저는 삭막했어요."

"난 남자친구 있었던 것처럼 보여요?"

"그럼 없었어요? 하하 이렇게 예쁜데.."

에구 좀 쑥스럽다. 하지만 맞는말이지. 혜지씨는 참 예뻐요.

"호호 그래요. 있었다쳐요."

진짜 있었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강한 부정이 아니니까 강한 긍정도 아니겠지?

"초등학교때까지는 그래도 여학생 생일에도 초대받고 그런데로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인기가 없어요?"

"그렇다기 보단. 워낙 주위에 여자들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진흙속에 파묻힌 진주같다고나 할까? 하하"

"푸후... 그렇게 생각하세요."

"에이. 비웃는거 같은데요. 제가 말이죠. 여자 많은과만 들어갔었어도 말이죠."

"말이죠?"

"하하. 벌써 장가갔을 수 도 있단 말이죠."

"호호. 누가 현재한테 시집갈려고 했을까요?"

"제가 말이죠. 이래뵈도 유치원때 벌써 저한테 시집온다고 하던 애가 있었어요."

"..."

"왜 말이 없으세요?"

"아 아니에요. 저 이만 가볼께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에... 저도 내일 따라 가도 되는거에요?"

"그럼요. 내일 멋있게 하고 점심때 만화방으로 오세요."

저녁 먹는다면서 점심때 봐?

"하하. 그럼 내일 봐요. 잘가세요."

갑자기 가는 바람에 떡도 못주었다. 다음에 주지 뭐. 올라오자 마자 그녀를 바로 보게되다니 기분좋다.

 

백수아가씨: 하하. 녀석이 유치원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이 씁쓸하다. 그때 자기한테 시집간다고 했던 그애가 바로 자기앞에 있는데 참 남의 일같이 말한다. 그때 그애가 바로 난데 못알아보겠니?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래 내일 보자.

사진을 보니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운동장옆 기억에 없는 건물이 하나 생겼지만 내가 잠시 머물다간 학교교실이 정겹게 그보다 더 정겨운 녀석 뒤로 분명히 보인다.

후후 녀석 이때도 뭐가 그렇게 쑥스러웠을까? 여전히 입만 웃고 있네.

 

만화방총각: 정경이의 부모님이 정경이는 외로움을 잘타는 애라고 하시며 다시는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럼요. 죽는날까지 외롭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해 드렸다. 옆에서 정경이는 그런 나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집으로 왔다. 어머니는 뭔가 못마땅하시만 그래도 내가 결혼한다는 사실이 굳어졌다는 대해 이견은 없으셨다. 비록 같이 간다고 얘기는 안하셨지만, 웨딩하우스에 얘기를 해놓았다며 내일 정경이에게 제일 예쁜 웨딩드레스를 골라주라고 하셨다.

 

자취생: 멋있게 입고 오라고 했지. 요즘들어 정장 입는 횟수가 잣다. 겨울양복에 롱코트를 걸치고 털목도리라...모델해도 되겠다. 어머니 왜 절 이렇게 멋있게 낳으셨나요. 흑흑. 혜지씨하고 친해졌다고 내가 너무 과대망상에 걸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만화방에 도착했다. 혜지씨도 정장차림이다. 만화방아저씨도 그리고 처음 본 낯선 아가씨도 정장차림이었다. 저사람이 만화방아저씨 마누라 될 사람이구나. 이쁘네... 혜지씨보다는 못하지만.

 

백수아가씨: 쿠. 또 양복에 털목도리야? 그래 멋지다. 우리현재 파이팅! 이병씨한테 전혀 안 꿀린다.

"현재씨 인사해요. 이병씨 신부될 분이에요."

"에. 안녕하세요."

"예. 반갑네요. 이병씨한테 종종 얘기 들었어요."

"아. 예."

현재 녀석,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여자한테는 조금씩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다 떠는구만.

"현재씨 이리 와봐요."

"예?"

"또 목도리가 이상하게 매졌잖아요."

이병씨 아버님 차 인가보다. 상당히 고급차다. 그래 이병씬 처음부터 귀티가 났었지. 현재와 나는 뒷자석에 탔다. 녀석하고 이렇게 고급차 뒤에 나란히 앉아 서울시내 구경하는 것도 꽤 좋은데. 내가 면허증따면 녀석 태우고 드라이버나 한번 해야겠다.

 

만화방총각: 역시 대학 다닐때부터 봐왔지만, 정경이는 예쁘단 말이야. 오늘따라 혜지씨가 정장에 화장까지 예쁘게 해왔지만 정경이에게는 못 미치지. 하하 단골녀석이 참 이름이 현재라고 했지. 그 현재가 꽤 멋있는 차림으로 만화방으로 왔다. 머리도 단정히 세웠다. 단지 흠이라면 양복에 털목도리가 조금 안 어울린다. 저 털목도리 예전에 혜지씨가 짜고 있던 그 목도린거 같다. 흠 둘이 사귀나봐.

 

자취생: 만화방아저씨가 날 어떻게 안다고 이 아가씨한테 내 얘길 했을까? 만화방아저씨 이름이 이병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는데, 난 여태 병신인줄 알았다. 그럼 동씨성이 아니잖아. 청첩장은 내가 저 아저씨 결혼식장에 갈것도 아니라서 어제 보지도 않고 바로 버렸다.  저 아가씨 이름도 모르는데... 내가 따라가서 실례가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하.  혜지씨가 또 목도리를 매만져 주었다. 그녀의 향기가 꽃이 되어 안긴다.

 

백수 아가씨: 이병씨 그가 운전해 도착한 곳은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였다. 무표정한 한여인이 아직 그때의 옷을 입고 지나가는 행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고고하게 서있었다. 훗 현재녀석도 약간 멈찟했다. 설마 결혼예복을 여기서 맞출 줄이야.

 

만화방총각: 쇼윈도 안의 마네킨이 자기는 평생 새신부인양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 저 옷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난 저런 설레임보다는 정경이의 외로움과 아픔을 감싸 줄 수 있는 드레스를 입혀 내 옆에 서게 하고 싶다.

 

자취생: 안녕. 아가씨는 참 오래도 그 옷을 입고 있구려. 신랑 될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나 봅니다. 이렇게 당신에겐 웨딩드레스까지 입혀 놓고 그 사람은 어딜가서  여태 안 나타나고 있는지. 당신은 내가 세번째로 보았을때도 그  모습 그대로군요. 밥 먹으러 간다면서 여긴 왜 온거야? 점심도 안먹었는데... 진짜 저녁먹을건가봐. 실내는 바깥보다 더 고급스럽고 설레이게 하는 조명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양복 입고 오길 잘했다.

 

백수아가씨: 정경씨라는분 이혼녀라고 알고 있다. 이병씨가 결혼예복 고르는데 꽤 신경을 쓴다. 벌써 정경씨는 네번이나 드레스를 갈아 입었다. 훗 현재 이녀석은 다 좋은가 보다. 정경씨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올때 마다 마시던 차를 멈추고 입을 헤 벌리곤 했다. 나도 저런 옷 입으면 예쁘다 뭐. 내가 웨딩드레스 입는 꿈은 설레인다. 내 옆에는 과연 누가 서 있을까? 치 현재군 찻잔에 침 떨어진다. 질투나네.

 

만화방총각: 그래 이번게 제일 나은거 같다. 여섯번째로 정경이가 입은 드레스가 가장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저런 포근한 느낌이라면 따스한 미소를 스미게 할 수 있을거 같다.

정경이는 이제 저 옷을 입고 이주후면 나만의 천사가 되어 내 마음이란 하늘을 날게 될 것이다. 당신의 지금 이 모습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나에게 선사한 것이오.

결정봤다. 현재와 혜지씨가 좀 따분했겠다. 그때 현재 그사람이 대뜸 옷봐주는 아가씨에게 말했다.

 

자취생: 야. 아까 만화방에서도 예뻤지만 역시 여자는 웨딩드레스 입었을때가 제일 아름답게 보이나 보다. 예쁘다 헤. 침이 다 떨어지네. 만화방아저씨 꽤 눈이 까다롭네. 다 좋아 보이는데 뭐가 마음에 안들까? 고개를 흔든다. 밖에 전시돼 있는 마네킨이 입은 드레스도 좋은데 그건 언급도 안했다.

혜지씨가 날 보더니 뭔가 못마땅한 눈빛을 보낸다. 괜히 침 흘렸다. 혜지씨도 웨딩드레스 입으면 참 예쁘겠지? 꿈속에서라도  내옆에 웨딩드레스 입은 그녀가 한번쯤 서 있어주길 바랬지만 한번도 꾸지 못했었다. 그녀가 내 신부가 된다는 생각은 아직 꿈꾸지 못했었기에... 그래 이제 그 꿈도 한번 꾸어보자.

"저... 아가씨. 그냥 웨딩드레스만 입어 보는것도 괜찮죠? "

"그럼요."

"그럼 혜지씨도 한번 입어봐요."

"예?"

 

백수아가씨: 현재 이녀석이 나보고 대뜸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라고 권했다. 하하.

난 그냥 꿈만 꾸고 있었는데... 나도 한번 입어볼까? 어떤 옷이 좋을까?

"아가씨!"

현재가 또 옷봐주는 아가씨에 부탁했다.

"저 바깥의 드레스도 입어 볼 수 있죠?"

"예. 여분이 있어요."

칫. 니가 내 신랑 될 사람이냐? 왜 골라주냐? 그렇지만 나도 쇼윈도의 마네킨이 입고 있던 고고하면서도 설레이는  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고 싶었다.

"잘 어울리시네요. 치수도 바깥의 마네킨에 입혀놓은 치수와 같은거에요."

탈의실에서  웨딩하우스아가씨가 나에게 한 말이다. 쿠쿠.

 

만화방총각: 우와. 혜지씨도 웨딩드레스 입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다.

"참 예쁘네 저 아가씨. 그렇지만 난 이병씨가 골라준 드레스가 더 맘에 들어."

정경이가 언제가부터 내이름 뒤에 꼭 씨자를 붙여 주고 있다. 기분좋다. 그래 저 설레이는 혜지씨의 드레스입은 모습보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정경이의 드레스 입은 모습이 훨씬 보기좋다.

 

자취생: 할말을 잊었음. 저 모습을 언어로 표현한다는건 언어도단이다. 나르키소스가 저 모습을 보았다면 결코 샘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지는 못했었으리라. 어머니! 어머니도 제 결혼식장에서 저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읍니다. 만화방아저씨의 모습이 왠지 초라해져 보인다.

 

백수아가씨: 내 모습이 현재녀석의 눈망울에서 빛났다. 거울속에 비친 하얀 내 모습이 뽀얀 설레임을 주고 있다. 후후. 여자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건 신부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까? 이 옷을 권해준 녀석이 고맙다. 비록 내가 지금 결혼을 하기 위해 이 드레스를 입은건 아니지만, 현재녀석은 나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힌 최초의 남자다. 그러나 녀석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뚝뚝하기만 하다.

 

만화방총각: 오늘 웨딩하우스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했지만 결코 그 시간이 무료하지 않았다. 단골녀석도 마찬가질걸. 분위기로 봐서 저 둘은 이미 사랑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예전에 늦은 만화방에서 비친 저 둘의 뒷모습이 그렇게 정겨워 보이더니... 오늘 정경이가 옆에 있어서 그럴까? 포근해진 내 마음 때문에 저 둘의 모습이 동화같은 사랑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자취생: 아가씨. 아가씨의 모습은 혜지씨의 영상이었군요. 그 옷의 임자는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그 옷의 신랑 될 사람은 내가 되어 그 옷의 진정한 주인될 사람 옆에 서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 옷을 벗어 던지고 다른 옷으로 갈아 입도록 하십시오.

오늘따라 혜지씨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백수아가씨: 훗. 현재 저녀석 아까 내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보고 난 뒤부터 저렇게 떠냐? 괜히 마네킨 앞에 서서 입을 삐쭉거린다.

"현재군 빨리 타."

녀석이 타고 아직도 고고한척 서 있는 마네킨을 보았다. 그래 어쩌면 저 고고한 모습은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제는 그 모습이 누구 때문에 흘러내리고 있다. 어릴때 동심으로 돌아가 그때처럼 이녀석한테 시집간다고 그래 버릴까?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만화방총각: 근처 호텔라운지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싶었지만 혜지씨가 TGI로 가자고 했다. 조금 시끄러운 분위기가 오히려 더 좋게 느껴진다. 정경이도 이렇게 북적되는 분위기는 오랜만일것이다. 현재군은 배가 고팠나보다. 혜지씨가 다 못먹겠다며 반이상 쓸어준 스테이크도 남김없이 다먹었다. 입에 뭘 넣고 한말이라 잘 뚜렷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우리더러 잘 어울리는 병과 병마개 같다고 했다. 이상한 표현이었지만 김새지 않게 꼭 붙어살라는 그의 말이 참 듣기 좋았다. 그 표현이 맘에 들었는지 정경이도 답을 했다.

"두사람 어색한 듯 하면서도 참 잘 어울려요. 서로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결혼하게 되면 청첩장 보내요."

정경이의 말이 많이 앞서 갔나보다. 말이 끝나자 둘다 당황했나보다. 서로 마주보며 ’에. 우리둘이 결혼을?’ 이런 표정이었지만 둘다 완강한 거부의 표정은 짓지 않았다. 현재군과 혜지씨를 만화방앞에 내려다주고 정경이와 기분좋은 작별키스를 하고 집에와 차와 몸을 맡겼다.

 

자취생: 일주일 동안 꿈꾸며 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자꾸만 끌려 가는거 같다. 혜지씨가 자꾸 보고 싶다. 만화방에 이병씨와 정경이란 이름의 그때 그 아가씨의 정다운 모습을 자주 보았다. 행복해라. 조금 힘들다 싶은 요즘.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희망을 주지 않겠냐. 나도 혜지씨하고 잘되어야 할텐데. 사랑의 힘은 대단한가 보다. 요즘 대학생들이 고민이 얼마나 많냐? 나또한 고민이 없을 수 없지. 지금까지 면접에 다 떨어졌지. 매스컴에서는 힘겨운 소리만 해대고... 그러나 요즘은 올해 대졸 실업자 더 증가할 것이라는 뉴스의 보도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마한 사랑얘기에 귀를 더 귀울이게 되고, 실직자들의 추운 겨울나기의 보도가 나올때면 안스럽다라고 느끼기 보다는 그곳에도 사랑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방송된 전쟁영화의 무수히 죽어간 병사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 죽음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아파하는 여인의 모습이 상상되어 눈시울 붉혔다.

여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학과 일이위가 기계공학과하고 토목공학과라며? 삭막하고 무식하다고 공대내에서도 욕먹는 그 기계공학과에도 사랑하고픈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나도 사랑하고 싶다.

 

백수아가씨: 일주일 동안 꿈꾸며 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자꾸만 끌려 가는거 같다. 녀석이 자꾸 머리속에 떠오른다. 자동차학원하고 과외 때문에 만화방은 가지 못했지만 왠지 녀석이 저곳에 있을거 같아 만화방을 스칠때마다 미소가 입가에 묻었다. 철민이와 현주둘이가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소박한 사랑을 하게됐으면 하는 마음도 녀석 때문에 느끼는거겠지. 뉴스에서 대졸자의 실업문제가 나오면 괜히 녀석생각이 나 걱정스럽다. 실직자들의 추운 겨울나기 얘기가 나올때면 녀석이 혹시 면접같은데서 떨어지고 혼자된 자취방에서 꺼이꺼이 울고나 있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어제 전쟁영화를 보면서 그냥 이름없이 죽어가는 어떤 한 병사가 녀석과 닮아 눈시울을 붉혔다. 울엄마가 엑스트라 죽는거 한두번 봤냐고 쫑을 주긴 했지만... 라디오에서 작은 사랑얘기가 들릴때면 고향이 생각났다.

 

만화방총각: 한주일이 가버렸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오늘은 양가 부모님들이 결혼식문제로 상견례한다고 저녁약속이 잡혀있다. 만화방은 일찍 닫아야겠지. 마침 혜지씨가 들어왔다. 좀 봐달라고 할까? 참 아직도 못보여주었네. 내가 명목상 가출한다고 해놓고 여행한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혜지씨가 만화방을 봐준다고 했다. 10시안에는 돌아올것이라고 전하고 난 만화방을 나왔다.

 

자취생: 전화가 왔다. 어둠이 거의 내려앉은 저녁무렵이다.

"여보시오."

"저에요. 최"

"하하. 안녕하세요."

"여기 만화방이거든요. 혼자 있어요."

"그리 갈까요?"

"그말 할려고 전화한거에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께요."

"예 바로 갈께요."

그녀가 만화방에 있구나. 당연히 가야쥐.

 

백수아가씨: 저녁때 혹시나 하고 만화방을 가보았는데 녀석은 없었다. 이병씨가 어디간다고 만화방을 봐달라고 했다. 잘됐다. 이병씨가고 나면 현재녀석 불러서 놀아야겠다. 이병씨가 준 사진들을 보았다. 많이도 돌아다녔네.

나중에 현재오면 같이 봐야지. 7시가 조금 넘어 현재녀석이 만화방에 전에 처럼 헐레벌떡 들이 닥쳤다.

"빨리 오셨네요."

"그럼요."

"여기 앉아요. 지금은 제가 주인이나 마찬가지니까."

녀석을 카운터 내가 앉은

안쪽 옆자리에 앉혔다.

"다시 만화방 아르바이트 시작했어요?"

"아니에요. 오늘만..."

"철민이랑 현주는 말 잘 듣던가요. 안들어면 내가 날라차기 시범이라도..하하."

"귀여워요. 철민이는 꼭 현재씨 같아요."

"아니 그녀석이 그렇게 멋있단 말입니까?"

"후후. 어색해하고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 닮았다는 거에요. 멋있는 부분은 하나도 안닮았지뭐."

"에이.. 참 그건 뭐에요?"

"이거 이병씨 가출했을때 찍은 사진들이래요."

"만화방 아저씨가 왜 가출을 해요?"

"쿠쿠 그럴일이 있었겠지요. 난 짐작이 가지만... 그냥 현재씨는 모른채 하세요."

"뭔지 모르지만 모른채 하겠습니다. 한번 봐요. 일월일일 해뜨는 동해에서.. 그 아가씨하고 같이 있네. 일월 육일 대구 달성공원. 또 같이 있네. 십이월 이십오일 어느 성당앞에서. 여기도 같이 있군. 십이월 이십칠일 해운대 겨울바다에서 지는 해를 등지고 바다를 보며. 분위기는 다 잡고 있구만..."

"낭만적이고 좋은데요 뭘."

"가만 그 사진 좀 줘봐요."

"어떤거요?"

"그 뒤에 이십오일 성당 앞에서라고 쓰인 사진이요."

"이거요? 왜 이사진이 뭐 이상한가요."

"예. 그래 어쩐지 뒷 건물이 낯익다 했더니. 우리유치원 성당이잖아."

"이게요? 아닌거 같은데..."

"맞아요. 우리동네서 뭐 멀다고... 내가 모르겠어요."

"나 다닐때는 들어가는 입구가 이러지 않았는데..."

"아. 앞쪽은 몇년전에 보수를 싹 했어요. "

"아. 차라리 옛날처럼 입구가 아취형인게 더 어울리는 거 같은데..."

"그렇죠? 내가봐도 보수를 잘 못했어요."

"그렇네요. 그래도 옆에 마리아상은 그대로 있네요. 한쪽 팔밖에는 보이지않지만..."

"잠깐. 자스트 모우먼트. 우리대화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금?"

"뭐가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혜지씨가 우리유치원 옛 모습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알죠?"

"그야 내가 그 유치원을 나왔으니까..."

 

자취생: 그녀가 나하고 같은 유치원을 나왔다는게 쉽게 믿어지질 않는다. 그녀가 집에가서 들고온 유치원 앨범은 분명 우리집의 그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 앨범속 동그라미 쳐진 내 사진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예전부터 내가 그녀의 유치원 동기라는걸 알고 있었던거 같다. 이제 왜 그녀가 자주 나 모르겠냐고 물어 본 것의 의문이 풀렸다. 또하나의 궁금증도 풀렸다. 유치원때 나한테 시집오겠다던 그애도 바로 혜지씨였다는 걸...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왜 이렇게 공허해 지는 것일까?

 

백수아가씨: 참 우연처럼 엉겹결에 녀석과 내가 유치원 동기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집에서 가져온 내 유치원 앨범속의 동그라미 쳐진 녀석의 사진을 보고 난 그가 기뻐할 줄 알았다. 아직 내가 그때를 못잊어 하고 있음에 감격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녀석의 표정은 무덤덤했고 조금 어두워 보였다. 그냥

"그랬군요."

라는 말만 내뱉고 앉아만 있다.

 

자취생: 그랬군. 그녀는 단지 내가 옛날 유치원 다닐때의 모습이 그리워 나한테 잘해 준거 였군. 그래서 사진도 오래된 걸 원했었고... 내가 그렇지 뭐. 유치원때 날 좋아해주던 그애를 만난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지 뭐. 너무 기대는 하지말자. 이제는 그녀를 단지 친구처럼만 생각하자. 지금의 내 모습은 그녀에게 단지 옛추억의 그림자밖에는 되지 않을테니까... 자리나 비켜주면 집이라도 갈텐데...

 

백수아가씨: 이녀석 분위기가 왜 갑자기 어두워졌지? 내가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채 했다고 삐졌나?

"현재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으로.

"그래요. 반가웠어요."

아직 존댓말이네.

"아직도 존댓말이야? 이제 알았잖아. 내가 너한테 시집간다고 했던 그 애란 말이야."

"그래요. 어릴때였 으니까..."

"왜그래.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

"집에 가게 자리좀 비켜줘요."

"내가 알고 있었는데 모른채 했다고 삐진거야?"

"뭐 그런일로 삐질것 까지야."

"그럼 왜그래?"

"그냥 뭐. 그렇네요."

"뭐가? "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해서요. 난 갈렵니다. 다음에 봐요."

"현재씨 뭐 기분 나쁜거 있어요?"

그의 서글픈 모습과 나를 스쳐 지나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왠지 이대로 보내면 안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손을 잡았다.

"나 갈렵니다. 손 놓으세요."

"뭐가 못마땅한건데... 갑자기 왜그래?"

약간 언성을 높혔다. 만화방안에 혼자 남아있던 손님이 뭔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돈을 내고 조용히 사라져 주었다.

"난 사랑한게 죄고, 당신은 옛 추억이 그리웠던게지요."

뭔 말 하는거야?

"무슨 말이에요?"

"난 현재의 당신을 사랑하게 된거고, 당신은 나의 옛 모습을 그리고 있던거라는 겁니다."

그거였어? 왜 녀석이 분위기를 떨구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왜 그 생각은 못했을까?

"난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요."

말 잘하네 이녀석.

그러나 넌 지금 내가 지금의 너에게 더 사랑하는 맘이 들고 있다는건 모르는가 보지.

"난 지금의 네 모습도 좋아. 아니 더 사랑해."

그 소리를 듣고 힘이 풀려버리는 녀석의 손을 다시 잡았다. 에라 모르겠다. 고개를 다시 돌린 그에게 난 입맛춤을 했다. 녀석이 또 머쩍은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 눈동자를 주시하고 있다. 눈을 감았다. 후후. 여자가 먼저 키스를 하게 만들다니... 너 머리썼다. 발자국 소릴 들었다. 누군가 들어올려나 보다. 녀석이 먼저 느꼈나보다. 나를 살포시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이병씨가 들어와 우리둘의 어색한 모습을 보았다.

"하하. 만화방에 둘만 있었군요."

 

만화방총각: 만화방에 10시가 조금 넘어 만화방 앞에 도착했다. 누군가 만화방에서 나오더니

"우쒸 또 할려나보다.씨."

그런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안에 녀석이 그때 그 녀석이 아니구먼."

그런 혼잣말을 하고 지나쳤다. 뭐여 저녀석? 담배나 한대피고 들어갈까? 들어왔더니 현재녀석하고 혜지씨만 만화방에 있었다. 왠지 분위기가 어색해 보였다. 그리고 현재군의 입술에 묻어 있는 립스틱 자욱을 보았다. 하하. 저 둘도 이제는 ...

"하하 만화방에 둘만 있었군요."

 

자취생: 이것이 꿈만 아니기를...

 

일주일후.

 

만화방총각: 에구 바쁘다 바빠. 혜지씨가 보인다. 둘이 같이 왔네.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현재군도 같이 왔군요."

"예. 전 신부쪽에 가서 낼테니 혜지씬 이병씨 한테다가 내."

"그래. 축하해요. 이병씨."

현재는 신부쪽에 부조금을 내러 갔다.

"하하. 이제는 더 가까워 진 것처럼 보이는군요."

"예. 제 첫사랑이거든요."

"예?"

"저 녀석이 유치원때 제 첫사랑이었어요."

"아 같은 유치원 나왔군요."

"예. 신부는 대기실에 있나요?"

"잘 몰라요. 첨 하는 거라서. 정신이 없네요."

"부케는 누가 받기로 했어요?"

"정경이 대학 후밴데. 저도 알아요. 저기 키 크고 머리묶은 여자보이죠?"

"아 예. 그럼 나중에 뵐께요."

"참 혜지씨?"

"예?"

"그때 만화방에서 뭔 일 일어났는지 전 몰라요."

"후후. 알아도 상관없어요." 그래 둘이 어울려 보인다.

 

드디어 신랑입장이다. 하하 떨리는 구만. 똑바로만 걷자. 따다다단.. 따다다단... 야 정경이가 저기서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며 장인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다.

"예.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자취생: 신부의 모습이 저번보다 더 아름다와 보인다. 내 옆에 혜지씨가 있어서 그런가? 신랑이 너무 떠는 구만.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정경씨 그녀는 힘쎈 아프로디테였단 말인가?

 

백수 아가씨: 현재 저녀석 괜히 나보고 신부뒤에가 서라고 그런다. 어디 남자들이 즐비한 곳에 와 사진찍을려 한다고 구박을 했다. 얼떨결에 잘 알지도 못하는

정경씨 뒤에 가 우인들 사진을 찍었다. 부케던질 타임이었다. 아까 이병씨가 가리킨 아가씨가 웨딩드레스 입은 정경씨 뒤로 섰다. 구경할려고 나도 멀찌감치 옆에 서 보았지.

에구 민망해라. 저게 왜 나한테 날라와. 그녀는 한때 박찬호처럼 컨트롤되지 않는 부케를 엄청 멀리도 던졌다. 신난나 보다.

"그걸 왜 네가 받냐?"

"난 받고 싶어서 받았나 뭐."

"그래 잘 받았다."

"뭘?"

"내년 이맘때쯤이면 나도 장가갈 수 있을까?"

"가라."

"그때 네가 입었던 웨딩드레스 있잖아. 그건 남이 못입겠더라."

"왜?"

"그냥 널 위해 만든 옷이었걸랑."

"고마워."

"그 옷 입은 여자가 내 옆에 설 수 있을까?"

"후후. 하는 거 봐서..."

 

자취생: 그래 하는거 봐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마. 많은 이들의 웃음을 받으며 이병씨와 정경씨가 퇴장을 했다. 행복하게 잘살아요. 혜지와 난 결혼식장을 나왔다. 손잡고 말이다. 더군다나 어색하지 않는 표정으로...

조금 있으면 설이고 또 봄은 오겠지. 난 못잊을 겨울을 보낸거 같다. 그리고 올해는 뭔가 좋은 일만 있을거 같다. 힘들었던 짐은 모두 벗어버리고 올해는 유난히 따뜻한 봄이 올것만 같다.

 

첨부파일: 백수의 사랑이야기2.hwp(205K), 백수의 사랑이야기.hwp(67K)

11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