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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성지순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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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kwangil119] 쪽지 캡슐

2011-04-08 ㅣ No.4685

4월3일(일)

2011년 사월의 첫 번째 맞는 일요일,

어느덧 새월은 삼배바지에 방귀새듯 빨리도 지나가는 구나.

 

어느 때 같으면 11시 교중미사 참례를 위한 준비에 느긋한 마음으로 모처럼 늦잠도 자고 집안 정리정돈도 하고 물론 매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오늘 아침은 일찍부터 허둥거린다.

아내와 함께 그렇다고 특별히 준비한 것도 없는데 ...

어제 카메라며 준비할 것은 미리 준비를 해 두었건만 그래도 아침에 서둘러 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에 말이다.

성찬봉사자 옷을 누가 챙기는지 금년에 처음 맡은 총무의 소임이기에 성당에 도착해 보니 유 마티아 형제님께서 차량 출발준비를 하고 있기에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제의실로 올라가 보니 문이 잠겨있다.

성당으로 내려와 제의실 문을 두드리니 역시나 잠겨있다.

에이 모르겠다. 누군가 챙겼겠지?

전례분과장님께 전화로 문의해 보았더니 다 챙겼단다. 고마워라....

용답역으로 뛰었다. 저만치 앞에서 청년들이 가고 있다. 그래 늦지는 않았군.

 

멀리서 녹색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출발예식을 마치고 드디어 새남터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십자가를 선두로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의 언덕을 오르실 때도 이렇게 많은 군중들이 함께 했을까?

그렇게 그렇게 한강 고수부지를 따라 걷고 또 걷고 우리는 가고 있다. 저 새남터를 향해서,

그곳은 어디인가?

 

새남터는 본래 노들 혹은 사남기라고 불리었으며, 조선 초기에는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한 곳으로 또는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을 처형한 장소이다. 일찍이 1456년(세조2년)에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의 충절의 피가 뿌려진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충절을 지킨 성삼문의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시 한 수와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신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교우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의 한 소절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는데, 멀리 바라보니 해는 저무는구나. 황천길에 주막이 없다 하는데, 오늘 밤 뉘 집에서 쉬어갈꼬?」

「여기 감옥에 있는 20인은 아직 주님의 은총[主恩]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편지글[紙筆]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장(戰場)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공을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

성삼문은 비록 충절은 지켰어도 내세가 없는 그러기에 해는 저물어가고 막나니의 칼은 목을 재촉하는데 저 세상에서는 쉬어갈 곳이 없음을 걱정하면서 허무를 시 한 수로 노래한 반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이 세상에서 착실히 공을 쌓아서 하느님 나라에서 만나자는 내세의 부활 신앙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가자!

다시 새남터를 향하여 발길을 돌리자.

파릇파릇 새싹이 봄을 노래하고, 어느 돌계단의 틈새에서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피어나고, 물위에서는 오리들이 먹이를 찾으면서 봄을 즐기고, 이 모두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노래가 아닌가?

온갖 피조물이 오늘 도보성지순례의 길을 걷는 우리와 함께 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운지도 모른다.

도중에 자연과 함께 먹은 점심은 넘 넘 맛있고 감사했다.

드디어 새남터 순교자 성지에 도착하니 웅장한 한옥의 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숲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신앙의 선조님들께서 고귀한 신앙의 피를 흘리셨는지 짐작으로나 느낄 수 있었다.

 

다리도 아프고, 어깨, 팔, 온 삭신이 쑤시고 저리고 그렇다고 골고타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만큼이나 하겠는가? 엄살도 심하구나...

오늘 도보성지순례를 기획하고 진행하신 사목위원님들, 그리고 안전사고에 유의하여 노약자분들을 중간 중간 자전거로 이송하신 요셉회 회원님들, 그리고 오늘 참여하신 모든 교우 분들 뿐 아니라 어떠한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교우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행복하세요! 그리고 오늘 갑작스럽게 걷느라 멍든 다리 빨리 풀리기를 기도합니다. 수고 하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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