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4주일(나해) 루카 1,26-38; ’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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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12-08 ㅣ No.5611

대림 제4주일(나해) 루카 1,26-38; ’23/12/24

 

 

 

 

 

피정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보면, 제단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신부님의 얼굴이 마구 불타오르는 듯한 환시를 볼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모세가 떨기나무 가지에서 타오르는 불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불꽃으로 다가가, 주 하느님을 뵈옵듯이(탈출 3,1-6 참조), 마리아도 아마 오늘 천사에게서 그런 불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놀랍고 신기하다는 감정에 치우치기도 전에, 주위의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천사의 얼굴만이 동그마니 눈앞에 펼쳐 보이고, 다른 어떤 곳으로 아예 눈이 돌아가지 않는, 마치 마취라도 된 듯 집중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여러분도 기도나 피정 중에 그런 환시를 경험해 보시지요?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마치 웅웅거리듯이 들려오는 천사의 말이 마리아를 휘감았는가 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도대체 그 순간에 소녀 마리아가 놀랍고 어이 벙벙하여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할 겨를이라도 있었을까 싶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이 말을 전해 듣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29) 라고 나옵니다. 여러분도 미사성제나 성사를 받으실 때 들려오는 성경 말씀이 그냥 그렇게 가슴에 꽂혀, 여러분을 휘어 감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시겠지요?

 

천사는 환시에 취해있는 마리아에게 재차 이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30-33) 천사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마리아는 앞으로 자신의 생애가 이 말씀과 연관하여 어떻게 펼쳐지고 전개될 것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그 말씀이 천사를 통해 들려오는 주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감읍할 뿐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실제로 주님의 말씀을 전례 중이나 기도 중에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길 때, 처음에는 그 말씀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리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냥 그 말씀이 좋고, 우리 가슴을 울리고, 우리를 그 말씀에 전율하게 해주는 것에 취할 뿐입니다.

 

우리도 복음 나눔을 할 때, 우리 마음에 와닿는 단어나 구절이 우리를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처음에는 잘 헤아리거나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34)게 될 뿐입니다. 그냥 그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시기에 내 마음에 모시게 되고, 또한 믿는 이들을 통해 몸소 활동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현실로 이룰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셨기에, 우리를 그 말씀이 가리키고 이르는 대로 나아가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35-36)

 

우리가 듣는 성경 말씀은, 그냥 그렇게 다른 책에 나오는 좋은 말처럼 듣고 깨닫지 못해도 그만, 실천 안 해도 그만인 말이 아닙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비록 그 말씀을 새기고 따르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언제, 어떻게 실현되는가와 관련될 수는 있지만, 그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것처럼,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미사 55,10-11) 마는 그런 말씀입니다.

 

마리아에게 천사의 말은 믿음을 굳게 하고, 또 주님을 따르고 실천할 힘을 주며, 가슴 깊이 거절할 수 없는 지상명령으로, 그리고 믿음의 계명으로 울려 퍼집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37)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한 번 듣고 감격하고 잊어버리는 듯해도, 거듭거듭 우리의 인생을 통해 되새기게 해주시며, 우리가 그 말씀을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지속해서 계속 떠 오르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루어야만 하는 신앙인인, 나에게 주시는 주 하느님의 소명으로 종종 간주됩니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 꿈 많은 소녀 마리아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꿈을 실현하려고 일어서기도 전에, 주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사로잡아, 주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듣도록 하고, 주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뜻을 실현하기에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마리아에게 불가능이 없는 하느님의 권능을 보여주시자, 마리아는 응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권능을 확인하러 떠나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은 그러기에 선교와 사랑의 활동이 됩니다. 마치 가시나무 떨기에서 타오르는 불을 발견하여 다가갔던 모세의 그 모습이, 주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때 빛나는 얼굴로 변화된 그 모습과도 같아집니다.

 

새로 오는 2024년 한해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흔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먼저 진실하고 겸손된 마음으로 미사성제에 정성껏 참여하고, 영성체하여 주님과 하나 되는 기쁨을 얻으며, 주님 복음 말씀을 우리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기도와 묵상 중에 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함으로써, 신앙생활의 기초를 확고히 다지는 하느님의 사람이 됩시다.

 

오늘 다소 신비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주 하느님을 섬기는 면모를 드러내었지만, 우리가 어떤 활동을 얼마나 어떻게 하기에 앞서, 먼저 주 하느님께 신자로서의 정성된 미사성제와 영성체, 그리고 기도와 묵상을 통한 주님 말씀 깨달음과 실천이라는 신앙생활의 기초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시기를 비는 마음에서 제시해 드렸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어떤 면에서는 다소 낯설고 허황된 시도일지 모르지만, 오늘 저녁 아기 예수 탄생 미사에,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에게서, 훨훨 타오르는 듯한 주 하느님의 신성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아기 예수의 형상을 지닌 인형이지만,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우리 눈에, 주 하느님의 신성으로 감화되는 영광을, 다시 한번 얻을 기회가 되기를 간직하여, 주 하느님을 모시는 참 기쁨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반드시 눈에 비춰지는 현상이나 환시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맞아들이는 가운데, 성탄의 기쁨을 얻어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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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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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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