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참회예절-자비로우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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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웅 [mathias] 쪽지 캡슐

2003-12-20 ㅣ No.2796

 

참회예절

루가 15,11-32

자비로우신 아버지

 

+ 찬미 예수님

 

우리는 지금 복음을 통해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복음 안에서 우리는 여러 여러 등장인물을 접하게 됩니다. 첫째로 돌아온 탕자, 둘째로 돌아온 동생을 시기하는 큰아들. 셋째로 주변의 방관자인 종들의 모습과 넷째로 돌아온 아들을 사랑의 모습으로 껴안고 있는 자비로운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들오늘 여러 이 등장 인물 중에 주인공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은 돌아온 작은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숫한 고생 끝에 다시 돌아온 아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그 아들이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은아들이 다시 되돌아올 수 있어던 그 결정적인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아들이 돌아갈 곳. 아버지께서 존재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작은아들에게 그런 용기가 생길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에 자신을 미워하는 형만이 있었다면 작은아들이 과연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지금 작은 아들의 결단은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려는 그 결단은 어찌보면 오히려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실패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란 듯이 아버지를 떠나 잘 살아보겠노라고 아버지의 재산을 타 가지고 나왔는데 지금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주위 시선. 형님의 비난. 어느 누구하나 자신을 동정해 줄 사람을 없을 것만 같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상황 처해 있다면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상황. 심지어 돼지보다도 못하다고 느끼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의 작은 아들은 그 힘든 결단의 상황에서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작은아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다시 아버지를 떠올렸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결정은 자신의 전 존재를 재조정해야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주인의 아들이 아닌 이제는 종으로서의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용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사랑 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의 마음 속 깊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 끝없는 아버지의 사랑. 한 번도 자신의 의향을 꺽지 않고 심지어 당신의 재산 전부를 달라고 해도 거부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아들에게서 아버지에게로 옮겨 봅시다. 그 아버지의 사랑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떠난 그 순간부터 매일같이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가 복음 15,19.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 멀리서 그가 당신의 아들임을 알 수 있었을까요? 이미 거지가 되어 기존의 아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들인데도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던 그를 아버지는 어떻게 그 멀리서 아들임을 알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그 아들을 알아보았던 눈은 바로 이 세상의 육안이 아니라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의 눈이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아들을 느낄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의 눈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자신을 떠나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사랑의 눈이었습니다.

 

렘브란트라는 화가가 그린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을 보면 아들을 얼싸안은 아버지의 눈은 한없는 기다림으로 인하여 이미 눈이 진물리어 시력을 잃은 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측량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었기에 아들은 다시 돌아올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다 싸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아버지 곁을 떠나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세상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들이 누렸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고통뿐이었습니다.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내 자신이 아버지를 떠나있었던 죄인임을 고백하고 품꾼으로라도 쓰셔도 좋으니 우리를 받아달라고 청하며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그런 우리를 아버지께서는 절대 종으로 삼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의 자리에 우리를 다시 올려주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때, 절대 우리 혼자만 돌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에겐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우리의 잘못으로 모든 이들이 함께 죄의 구렁덩이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선행으로 모든 이들이 함께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낀다면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과 그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예비자들과 쉬는 교우들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더 이상 힘들게 해 드리지 맙시다. 이제 그만 그분의 속을 태우고 아버지를 떠나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아버지께서는 벌써 저 멀리에서 되돌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의 속을 그렇게 태웠던 우리들의 잘못을 모두 잊으시고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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