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음악편지: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노력의 집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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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1 ㅣ No.2302

[아가다의 음악편지]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노력의 집합체

 

 

요즘은 음악 산업에서의 이익 창출과 관련해 저작물 권리에 관한 문제가 자주 논란거리로 떠오릅니다. 그래서 음악가들 스스로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관리하는 데 예민한데요. 하지만, 옛날 작곡가들은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음악의 목록을 만들고 정리하는데 그리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출처가 불분명한 음악들도 나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세상에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는데요. 그러다 나중에 원 작곡자가 누구인지가 후대인들에 의해 밝혀지는 곡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성모님과 관련하여 자주 연주되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아베 마리아’라는 매우 단순한 가사만이 반복되지만,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이 노래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라고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달리, 17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약했던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1551~1618)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곡으로 밝혀졌습니다. 진짜 작곡자는 20세기의 러시아 음악가 블라드미르 바빌로프(Vladimir Vavilov, 1925~1973)인 것으로 드러났죠.

 

바빌로프는 1960~1970년대 소련의 국영 악보 출판사에서 일하던 음악가로, 옛날 음악들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는 것이 그가 맡은 임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70년, 바빌로프는 작곡가 미상의 옛날 음악들을 수록한 앨범 한 장을 국영 멜로디아 레이블을 통해 발표하게 되는데요. 문제의 곡 ‘아베 마리아’ 역시 작곡자 미상의 곡으로 이 앨범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빌로프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함께 음반 작업을 했던 동료 음악가의 주장에 의해 ‘카치니’의 곡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죠.

 

하지만 이 곡의 스타일이 카치니가 살았던 르네상스 말 바로크 초의 음악 스타일과는 참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그러다 바빌로프가 평소에도 다른 작곡가의 이름을 빌려 곡을 발표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바빌로프의 딸은 그 이유에 대해 당시 소련의 정치적 상황을 들어 설명했습니다. 당이 문화 및 예술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국영 레이블을 통해서만 음반을 발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바빌로프가 자신의 곡을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것이었다고 말이죠.

 

수 백 년 전 르네상스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폴리포니 다성 음악의 대가인 조스캥 데 프레(1450경~1521)가 그 예입니다. 조스캥 데 프레는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음악의 아버지’, ‘우리 시대 최고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한 몸에 받았던 작곡가인데요. 조스캥의 인기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조스캥은 화가 미켈란젤로에 필적하는 예술가로 평가됐고, 그의 음악은 계속해서 필사되고, 출판되고 또 연주되었죠. 이 과정에서 조스캥의 작품을 흉내 내거나 그것을 소재로 해 재작업하는 하는 음악가들도 있었고요. 돈벌이에 골몰한 출판업자와 필사가들은 종종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조스캥의 곡으로 속여서 세상에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런 당시의 세태를 빗대어 게오르크 포르스터(Georg Forster, 1510경~1568) 라는 이름의 독일 사람은 “조스캥은 살았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후에 더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조스캥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320여 곡 가운데, 진품으로 밝혀진 것은 180여 곡 정도입니다. 나머지 음악들의 경우는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다윗 왕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애도하는, 구약 성경 사무엘서의 내용에 기초해 만들어진 유명한 모테트 <압살롬, 나의 아들>도 조스캥의 곡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조스캥이 썼던 것보다 낮은 음역대의 곡이고, 작곡 스타일도 다르고, 조스캥 사후 20년이나 지나서 나타난 작품이라는 점도 <압살롬, 나의 아들>이 위작 의혹을 받는 이유들인데요.

 

그러나 작곡가가 누구이냐에 따라 그 음악에 대한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한때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알려졌던 곡은 이제는 바빌로프가 쓴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방송과 연주회장에서 소개되고 있고요. <압살롬, 나의 아들>도 슬픔에 빠진 아버지의 통곡을 생생하게 그려낸 탁월한 곡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죠.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이름을 빌린 수천 곡의 ‘그레고리오 성가’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노력의 집합체로서, 천 년이 지금까지도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채워주는 이런 놀라운 음악들과 더욱 가까이 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신도, 2015년 가을호(VOL.49), 양인용 아가다(KBS 1FM <새아침의 클래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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