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0년 1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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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0-03-03 ㅣ No.111

Allocutio - January, 2010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기본으로 돌아갑시다(3).

 

주회합

 

작년 11월에 열린 꼰칠리움 간부 회의에서 올해 계획을 협의하며, 전 세계 레지오의 본질적인 쇄신을 이루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레지오의 정신과 레지오 관리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 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레지오의 선서문을 첫 번째 주제로 삼아 훈화(2009년 11월)를 하였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그들 각자의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오고 레지오가 언제 어디서나 완전히 그리스도 중심적인 마음가짐을 확실히 하겠다는 목적으로, 성령과 성모님께 선서한 내용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성모님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레지오 단원들도 그 친밀한 상호 협력 관계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상훈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쁘레시디움의 단장은 매월 첫 번째 회합에서 기도하듯이 엄숙하게 상훈을 낭독해야만 합니다. 상훈의 첫 번째 의무는 어찌 보면 너무나 현실적이고 놀라우리만큼 단순하여 감화조차 줄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의무는 개인의 성화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과 사도직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원이 지켜야 할 레지오의 의무는 : 첫째,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하여, 자신이 한 활동에 대하여 알맞고 또렷한 보고를 한다,’

 

이 의무를 생각해보면 ‘왜 교본이나 프랭크 더프는 그의 일생을 통해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을 그렇게 강조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본은 이에 대해 주회합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주회합은 레지오의 심장이며, 이 곳으로부터 생명의 피가 모든 동맥과 정맥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간다. 주회합은 레지오를 밝히는 전력과 동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이며,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는 보화의 곳간이다. 주회합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단원들과 더불어 앉아 계시는 위대한 공동체의 수련 도장이며, 주회합을 통해 그 분은 우리의 활동에 필요한 독특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또한 각 단원은 쁘레시디움 주회합을 통하여 절제된 신앙 정신이 몸에 배게 되어, 우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개인 성화에 힘쓴다. .....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주회합에 참석하는 일이 레지오의 으뜸가는 의무이며 가장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주회합 참석의 의무는 무엇으로도 대신 채울 수가 없다. 주회합 참석에 소홀한 단원들의 활동은 마치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이 으뜸가는 의무를 게을리 하게 되면 어떠한 활동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고 곧 레지오 대열에서 탈락하고 만다는 사실은 이치로 보아도 그렇고 이미 경험상으로도 잘 드러나 있다.’ 정말이지 너무나 뛰어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왜 모든 레지오 단원의 으뜸가는 의무가 주회합에 참석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남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쁘레시디움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작은 방입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 곳에 그 분의 이름으로 두세 명만 모여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의 한 부분을 맡기 위해 주님께 기도하고 그 분과 함께 계획을 세웁니다. 레지오의 회합은 세속적인 목표나 정신을 지향하는 기업의 이사회나 다른 종류의 순전히 세속적인 위원회의 회의와는 같지 않습니다. 레지오의 회합은 기본적으로 항상 그리스도 신비체의 작은 방에서의 회합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회합의 본질적인 정신입니다. 즉, 그 회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언제나 영혼의 구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레지오는 항상 영원을 생각하며 영혼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전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조직이나 단체는 칭찬 받을 만하고 중요하기는 하지만 육체만을 구원하려는 목표나 정치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반면에, 레지오는 건전한 영혼의 영원한 삶에 확고히 초점을 맞춥니다.

 

쁘레시디움은 예수님 신비체의 한 방이므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특별히 그 곳에 현존하십니다. 또 쁘레시디움 회합에는 성모님이 특별히 함께 계시고 성모님은 신비체의 어머니이시므로 우리가 그 신비체의 방을 갖고 있다면 성모님은 그 방이 어디에 있던 그곳에 특별히 나타나셔서 레지오 단원들을 어머니로서 보살펴 주시고 또 활동도 같이 하십니다. 이렇게 쁘레시디움 회합에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 하신다는 두 가지 진실과 그에 대한 확신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줍니다. ‘교회의 공동체적 사도직은 성모님이 그것을 당신의 모성과 결합하여 어머니로서 보살펴 주심에 의해 유지된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며 생명 자체이신 성자를 세상에 낳아 주셨고, 이 위대한 임무에 합당한 권능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교의 헌장 56) 성모님은 당신께 기꺼이 협력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계속 수행하신다.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의 임무를 돕고자 열망하는 한 무리의 사랑스런 영혼들을 성모님이 쓰시도록 맡겨 드리고 있다. 그리고 성모님이 쁘레시디움 단원들의 협력을 받아들이고 계심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이 쁘레시디움을 통하여 당신의 특별한 은총을 보여 주시고 당신의 모성을 새롭게 드러내고 계시므로, 쁘레시디움이 있는 곳에 성모님도 함께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이념에 충실한 쁘레시디움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쇄신, 치유와 문제의 해결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레지오는 문제가 있는 곳에 반드시 이 영신적 원리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교본 제19장 23항) 따라서 저는 주회합에 충실한 것이 루도비코-마리아 성인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핵심적인 원리를 실천하는 매우 실제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쁘레시디움 회합은 성령이 강림하신 예루살렘의 다락방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주위에 둘러앉은 제자들의 무리가 성모님과 함께 성령을 받아 모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모님의 선교 사명을 위해 가장 절박하고 진정으로 영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던지 파견됩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회합에는 은총과 환희, 그리고 사도직 열정을 가지고 참석해야 하며 반드시 성령 강림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노력 중에 교리적인 측면에서 주회합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 훈화는 실제적으로 쁘레시디움 회합의 세세한 사항들이 어떻게 레지오와 단원들 각자에게 커다란 은총과 영적 성장의 원천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하는지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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