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성당 게시판

평화를 이루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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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2-01-01 ㅣ No.1420

 

2002, 1, 1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오늘 새해 첫날 눈이 시리게 환한 아침을 맞으면서, 밝게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처럼 그렇게 평화가 넘치는 올 한 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새해 첫날을 평화의 날로 지내는 신앙인으로서, 세상 곳곳에서 무참히 유린당하는 평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평화를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거창한 구호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삶의 작은 부분에서 피어나는 평화, 넘치고 넘쳐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의 평화와 맞닺게되는 그런 평화를 생각해 봅니다. 나의 작은 몸짓으로 실현시켜나갈 수 있는 평화를 말이지요.

 

평화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외적으로 싸움이나 갈등이 없는 하나의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면, 그것이 참 평화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평화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가지 인간 관계 안에서 살아가면서 평화와 다툼, 화해와 갈등은 있기 마련입니다. 평화와 다툼, 화해와 갈등은 모두 인간관계 안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살아가면서 부대끼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내 것 네 것 나누지 않고 하나가 되어 살 때가 있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 때도 있습니다. 과거에 어떠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툼에서 평화로, 갈등에서 화해로 넘어갈 마음이 있느냐, 이렇게 넘어갈 삶의 지혜가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 삶의 지혜를 두 가지 측면에서 보고 싶습니다.

 

먼저 "다양한 인간 관계 안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 안에는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을 일차적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일상 생활 안에서 이루어지는 싸움과 화해의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입니다. 재미있게 놀다가 말다툼을 벌이고 말다툼 끝에 주먹질이 오갑니다. 그러나 금새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함께 웃고 장난치며 방금 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에게 싸움과 화해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이 자연스러운 흐름은 서서히 막히기 시작합니다. 다툼에서 화해로 넘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평화에서 갈등이나 싸움으로 넘어가기는 점점 더 쉬어집니다.

 

왜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요?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사이좋게 어울릴 때의 기쁨, 좋은 모습들을 기억해냅니다. 그러기에 엄마한테 심하게 꾸중을 듣고 심지어 매를 맞고 나서도 엄마의 품에 안깁니다.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은 좋지 않은 기억들보다 엄마 품에서 느꼈던 따뜻함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와 반대의 현상이 생깁니다.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한번 어긋나면 쉽게 화해하지 못합니다. 세상풍파에 찢겨지다 보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위협들에 대해 쉽게 경계하고 과장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함께 어울리는 기쁨과 행복을 찾지만, 어른들은 다툼과 갈등 속에서 덜 상처받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아이들은 더 좋은 것을 택하지만, 어른들은 덜 나쁜 것을 택합니다. 아이들은 더 가지려고 하지만, 어른들은 덜 뺏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싸우다가도 쉽게 화해할 수 있지만, 어른들은 한번 틀어진 관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정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내면의 갈등, 누군가에 대한 미움,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씻어내고 싶다면, 우선 구체적으로 그 누군가 상대방을 떠올려야 합니다.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하나씩 곰곰이 떠올려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바뀌면 그 만큼 쉽게 평화를 위해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냐 아니면 ’일’이냐? ’사람’이 만나서 ’일’이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일’ 때문에 사람이 만나는가? "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납니다. 이렇게 만나서 여러 가지 일이 이루어집니다. 간혹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일이 먼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이죠. 일 때문에 갈라져 있는 사람들을, 일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일이 아니라 사람을 보십시오. 왜 ’일’이 소중한 사람 사이를 갈라놓아야 합니까? 왜 어리석게 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갈라지게 했던 쓰라린 추억이 아니라 함께 했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이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평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너무나 소박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큰 것만을 생각하고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보다, 작은 몸짓 하나로 지금 보다 조금 나은 그런 세상을 일구어가는 지혜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올 한해가 진정 종로 본당의 벗님들 모두에게 평화로운 한 해로 기억될 수 있기를, 평화를 일구었던 한 해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오늘부터 가능하면 매일 복음 묵상을 올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으로부터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에서 자그마한 보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이 글은 어제 송년미사 강론의 일부를 조금 고친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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