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성당 게시판

8월27일 성녀 모니카축일

인쇄

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2-08-27 ㅣ No.606

 

성녀 모니카 Monica 387년경 수절 카르타고

축일: 8월 27일

 

성녀 모니카(331-387년)는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크리스찬 부모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으나 외교인 남편 파트리치우스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는데,아우구스티노와 니비지우스 그리고 페르페투아가

곧 그들이다.

모니카는 370년경에 남편과 사별하고, 맏아들의 개종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그 당시 아우구스티노는 카르타고에서 공부하던 중에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며,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로마까지 쫓아갔고, 386년에는 밀라노까지

갔는데, 거기서 아우구스티노가 크리스찬 진리를 수용함으로써 그녀의

한을 풀었던 것이다.

 

아우구스띠노의 회개를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했다. 기도 생활로 자신의 신앙을 돈독히 하고 덕행으로 그것을

빛나게 함으로써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이 되었다.

 

성녀 모니카는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크리스찬 어머니상의 모델이요 기혼 부인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387년 오스티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모니카의 평소 환경은

잔소리가 심한 아내,모진 며느리,절망적인 부모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 같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들은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녀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 있는

그녀 집에서 함께 살던 이교도인 파트리치우스와 결혼을 시켰다.

 

파트리치우스는 격렬한 성격에 방탕하기까지 했으나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었다. 그는 아내의 자비심과 동정심을 비난했으나

항상 그녀를 존경했다.

모니카는 심술 궂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모니카의 기도와

모범은 마침내 그녀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그리스도교에 귀의시켰다.

 

그녀의 남편은 영세한 지 1년 후인 37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모니카에게는 유년기를 넘긴 세 자녀가 있었다.

그 중 맏이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유명하다.

파트리치오가 운명한 당시 아우구스티노는 17세였으며,

카르타고의 수사학 학생이었다.

 

모니카는 자기 아들이 마니교도가 되어 비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슬퍼했다.

얼마 동안 아들이 집에서 먹고 잠자는 것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아들이 신앙을 되찾는 확실한 환상을 보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아들 가까이에 머물렀다.

사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가 원하는 것보다 휠씬 가까이에 머물렀다.

아우구스티노는 29세에 로마로 수사학을 공부하려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도 함께 가기로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어머니에게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러 선창에

간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로마로 가는 배를 탔다.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노의 계교를 알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로마에 도칙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밀라노를 향해

떠났음을 알았다.

비록 여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니카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로 갔다.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모니카의 영적 지도자였던

성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모든 일에 있어 그의 충고를 따랐고 그녀의 제2 본성이 되어

있던 몇 가지 행동을 포기하는 겸손을 가졌다.

모니카는 타가스테에 있었을 때와 같이 밀라노에서 신심 깊은 부인들의

지도자가 되엇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가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기도했다.

 

387년 부활절에 성암브로시오는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친구 몇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얼마 후 아우구스티노와 모니카는 아프리카로 떠났다.

비록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모니카는 자신의 삶이 곧 끝날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노에게 "얘야, 이 세상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지금 내게 남겨진 일이 무엇이며,

왜 내가 아직도 이 지상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 세상에서 나의

모든 희망이 다 이루어졌다." 고 말하였다. 그녀는 곧 병이 들었고,

죽기 전 9일 동안은 심하게 고통을 받았다.

 

우리가 모니카에 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아우구스티노가 쓴

고백록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즉석 요리와 즉석 치료와 즉석 신용 등의

시대에 살면서 시간을 요구하는 일에는 인내심이 거의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대답을 원한다.

모니카는 인내의 상징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그녀의 기도는 강인하고 잘닦인 그녀의 성격과

어울려 그녀의 격정적인 남편과 심술 궂은 시어머니, 뛰어났지만

제멋대로인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개종시켰다.

 

†평화와 선

오늘은 성녀 모니카 축일!

영명축일을 맞이하시는 자매님들께 축하드리며

건강하세요.

†하느님께 영광

 

축하꽃바구니와 축하성가

Away in a manger(The St. Philips Boy’s  Choir)

♬Canto Gregoriano-Hosanna Filio David(베네딕도수도원)

 



43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