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4년만의 외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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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nemokan] 쪽지 캡슐

2001-04-30 ㅣ No.1654

             월출산 산행기2

 

 바위와 돌맹이 그리고 흙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월출의 능선은

언제 걸어봐도 편안하다.

 철쭉이 한아름씩 안고있는 꽃망울을 지금이라도 터뜨릴 기세다.

벌써 철쭉 철 이란 말인가? 보통 5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5월말 6월초에 절정을 이루지 않았는가? 계절이 빨라

지는 것인가?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오전 8시30분 구정봉.

월출 정상이 손에 잡힐듯 다가선다.함께 바람도 더욱 더 세차게

불어 닥친다. 이곳 구정봉에서 정상을 오르는 길목에 "바람재"가

있다. 얼마나 바람이 세면 바람재라고 이름을 붙였겠는가.

오르락 내리락 바람을 맞으며 능선을 탄다.

 구름 사이로 가끔씩 햇빛도 비친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숨은 다시 턱 밑까지 차오른다.

 누가 쫓아 오는것도 아니고 저 앞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이거 뭐 기록 경기도 아니잖는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바람 피할 수

있는 바위 뒤에 주저앉았다. 이렇게 좋은 걸.....

따끈한 커피로 한기를 느끼는 체온을 추스리고가자.

 

 그래...그래도 가야지...

바위를 기어 오른다. 윗쪽에서 바람소리에 섞여 간간히 사람

말소리가 들린다. 오긴 다 왔나보다.

 

 오전10시20분. 정상인 천황봉(해발809터).

탁 트인 조망. 멀리 구름 사이로 무등의 자태가 희미하다.

심호흡을하니 가슴이 시원하다. 십년 묵은 체증이 이제야 내려

가나보다.

 등산화,양말 다 벗어 던지고 맨발로 정상 바위 이곳저곳을 다닌다.

시원한 바위의 감촉이 좋다.

 자연 조각공원 같은 월출.

 어느 누가 이렇게 바윗 덩이들을 곳곳에 적당히 뿌려 놓았다는

말인가?

 책을 쌓아놓은듯, 시루떡을 잘라 놓은듯, 온갖 모양의 동물들을

다 데려다 놓은듯...어느것 하나 예술 작품 아닌것이 없다.

 

 도갑사를 출발하여 이곳 정상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사람 구경을

했다.정상하고 가장 가까운 천황사 쪽에서 출발한 사람 들이다.

 

 아무래도 날씨가 별로다. 하산해야지...

내리막 길. 계단은 아무래도 지루하고 싫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가야지. 다시 오르막 길...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럴땐 또 커피

핑계로 좀 쉬자. 한컵 그득 딸아마셨다.

 90도 직각의 철사다리를 한참 타고 내려간다.

 발 밑에 구름다리가보인다. 월출산 산행때보면 "증명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구름다리는 항상 만원이다. 잘들 해봐라.

빗방울 느낀다.뒤도 돌아보지말고 휑하니 가야지. 빨리 내려가서 "더위

사냥" 사먹어야지...산행이 끝나고 먹는 "더위사냥"이나 "폴라포"의 그

맛은 아주 사람을 쥑여 놓는다.

 

12시10분 . 주차장.

빗방룰이 제법 굵어졌다.

역시 더위사냥은 날 배반 하지 않는구나. 언제나 그 맛 그대로다.

에라 하나 더 먹자. 두개나 먹어 치웠다. 그것도 빗속에서....

 

 몇해전 민박을했던 사자마을 대나무집을 찼았다.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아준다.

민박 했을 때 애길하고 서로 웃었다. 참 기억에 남는 일이었지...

"소주에는 이 돼지비개를 먹어애 해."하는 바람에 큼직큼직하게 비개를

썰어 넣은 김치 찌개 덕분에 소주 한병을 다 비우고 말았다. 산행도 다

끝났겠다...이제 차 타고 갈 일만 남았지않는가....

점심이나 하고 가라는 주인내외의 말울 뿌리치고 나왔다.

 

 오후2시30분. 영산포역.

오후 6시로 예매해가지고 온 서울행 차표를 오후3시25분으로

바꿨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밥다운 밥 한번 먹어보자.

"실가리 해장국"이라고 써붙인 집엘 들어갔다.

2살배기 아들을 업은 젊은 여주인이 반갑게 마아준다.

구수한 된장에 데친듯한(푹 삶은것과는 다르다) 실가리.

기똥찬 맛이다.

이 여주인 딸..딸..낳고 막내로 아들을 낳았단다. 예전에 잘 나가던

남편이 직장 그만두고 지금은 둘이서 식당을 꾸려간단다.

누구와 조금 비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에 영산포역이 시청쪽으로 이전하면 큰일이라고 걱정이

태산같다. 세상 어딜가야 걱정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을꼬..?

영산포에 오게되면 다시 들르겠다고 하고 나섰다.

수퍼에서 "두꺼비"한마리 사 들고...

 

 오후3시25분. 영산포역 출발.

"아저씨 다 왔어요"하고 어느 학생이 깨워서 눈을 떴다.

그렇다. 서울역이다. 오후8시20분.

 

 산행이 아니라 술먹으러 그 먼곳까지 깄었나보다.

그러나 역시 실컷 땀 흘린 뒤의 술맛이란 기가 막히개

좋은 법이다. 산이 있기에 땀이 있고 땀이있기에 술 또한

있는것 아닌가.

 

집에 미안하지만 않다면 가끔씩은 해보고싶은 산행이다.

 

총원1명,현재원1명,사고 무, 전원 무사히 귀환.

4년만의 외출이 끝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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