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안녕하세요? 권 도미니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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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3-01-03 ㅣ No.2574

본당 사무장님께서 ID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달라는 말씀과 함께.

저는 한때 TV드라마도 쓰고 소설도 썼지만 작가라는 말보다는 글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요즘 작가라는 분들,쉽게 써도 될 글을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찾아서 어렵게 쓰는 사람들, 그래야 자신이 좀더 유식해 보이는 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작가들은 밥맛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작가는 ’먹물’이라고 평가 절하 합니다.

"나 보기가 역거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소월님의 시에 어려운 말이 없어도 깊은 뜻, 깊은 아픔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글은 쉽게 누구나 쉽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이 아닙니까?

비록 믿음이 깊은 글이 아닐지라도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저와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창밖에 흰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저가 있는 문화회관 앞 배봉산은 한폭의 동양화 같습니다.

시골에서 보낸 국민학교 6학년 때 였습니다. 운동장에 한가득 눈이 쌓엿었지요. 선생님께서 남자 아이들을 편을 갈라 눈싸움을 시키셨습니다. 여학생은 두 줄로 세워서 편을 갈라 양쪽으로 나눠주시면서

"여학생은 적십자다. 눈싸움을 해서도 안되고 남학생이 여학생을 눈으로 때려서도 안된다. 다만 남학생에게 눈을 뭉쳐주기만 해라" 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명순이가 내편으로 오는 줄에 서 주기를 바랬고 심지어 손짓 발짓으로 신호까지 보냈는데 명순이는 혀를 쏙 내밀면서 딴 편으로 가는 줄에 서드라구요. 얼마나 부아가 나던지 "오냐. 시작만 해봐라"하고 기다렸다가 눈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정통으로 명순이 면상에 눈덩이를 명중 시켰습니다. 명순이가 아파서 울고, 선생님이 달려가셔서 누가 때렸냐고 물으니까 얄밉게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그 바람에 나는 ’제네바 협정을 어겼다’는 죄명으로 눈싸움이 끝날 때 까지 눈위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하늘로 높이 드는 벌을 서야 했습니다.

한 동네에 살면서 아침에 함께 학교로 갈 때까지 서로 좋아 해놓고서 왜 눈싸움 때는 딴편으로 가서 나를 그렇게 골탕 먹이는 지. "좋다. 너 집에 갈 때 보자. 이제 너는 나한테 죽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명순이를 기다렸습니다. 나풀나풀 뛰어오더군요.

다짜고짜 달려가 질퍽질퍽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지요. 또 울더라구요. 하지만 나는 속이 후련하더라구요.

그후 우리는 졸업을 했고 명순이는 대구로 나는 서울로 떠나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방학 때 시골에 돌아오면 만났지만 서로 말을 안했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타성 처녀총각이 말을 했다가는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들었으니까 더욱 말을 안하고 눈빛만 주고 받았지요.

고2 때 겨울방학 때 였습니다. 명순이 동생 재호가 누나가 밤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진땀도 나구요. 시간 참 안가더라구요. 밤까지 기다리는데 정말 환장하겠더라구요.

밤에 천방 둑길에서 5년만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명순이가 흰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더군요.오직 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분 댓길이었죠. ’이 속에는 분명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쓰였을거야. 보고 싶었다는 말도 있겠지. 그래.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집으로 달려와 뜯어본 봉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다만 이중봉투 파아란 속지에 검은 물자국이 번진 걱이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나는 명순이가 편지를 써 놓고 깜박 잊어버리고 봉투에 편지를 안넣었다고 여겼지요.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그 편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이었습니다.

명순이는 봉투 속에 눈을 넣었던 것입니다. "미움도 사랑도 이렇게 녹는거야. 우리 이제 옛날 감정을 눈처럼 녹이면 안될까?"

아마도 명순이는 나에게 그런 사연을 썼을 테지요.

언젠가 녹아버릴 눈이 지금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맘껏 사랑하고 행복하세요. 그러나 잠시라도 누구를 미워하지 마세요. 다치는 이는 미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 쪽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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