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필독] 아주 감동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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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박교 [briel98] 쪽지 캡슐

1999-06-12 ㅣ No.526

♥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

♥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모두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루가 11,4

 

고해를 할까? 어슴푸레히 평화로운 성당 불빛 속에 앉아 엘레나는 망설이고 있었

다. 웬일인지 그녀가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는데는 이 낯선 독일 성당이 안성맞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10여 일 전 조국 폴란드를 떠나 그처럼 기이한 여

행단에 끼게 된 것도, 알 듯 모를 듯 모호하면서도 반은 의식적인 그 동기에 자

극받은 탓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모두 옛 나치 강제 수용소의 억류자들로, 그 악

몽의 장소를 다시 방문함으로써 '용서의 순례'를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지난 20년동안 죄를 고해해야한다는 강박 관념에 눌려 지냈다. 물론 자신

의 죄를 낱낱이 고해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그리 철저한 양심가는 못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둥병처럼 따라붙어 다니는 두 가지 죄는 꼭 고해해야 했다.

 

하나는 감방 동료의 낙태를 도운 일이고(이 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고해했

음에도 여전히 죄의식을 느꼈음) 또,하나는 아직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아 여태까지 고백할 수 없었던 수용소의 한 간수에 대한 증오였다.

천 번쯤 될까? 그녀는 지금 채찍을 휘둘러 대던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인간, 루드

비히 카머슈타인의 가증스런 얼굴을 또 떠올리고 있었다. 죄짓기를 그만둘 수 없

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고해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 '용서의 순례'는 바로

용서를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다시 한 번 망설였다. 마음 한편에서는 쓰라린 분노에 휩싸여 여전히 거

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일이면 폴란드로 돌아가야 한다.

이 성당이 그들의 여정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들르는 성당이었다. 이런 기회는 아

마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기도했다.

조금 지나자 기분이 좀 나아진 듯했다. 그녀는 내부로부터 새로운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친절한 어떤 목소리, 부드럽고도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

려 왔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마음을 향해 말했다.

"자, 엘레나, 용기를 내라, 하느님과 함께라면 못할 일이 없단다."

그녀는 자신의 온 존재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시 또 하느님께 다가서

지 못하는 그녀!

 

엘레나는 일어섰다. 그녀는 결연히 마음을 다잡았다.

"이젠, 됐어. 마음 속에 계속 이 미움을 키우고 산다면 결코 맘 편할 날이 없을

거야. 도와 주세요, 주님. 제발!"

그러고는 그녀는 고해소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조금전부터 한 신부가 앉아

있었다. 고해소 양쪽 칸 모두 고해자가 아무도 없었고, 아침 미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도 자리를 떠 성당은 텅비어 있다시피 했다. 엘레나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얻기 어려운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후면 신부마저 떠날 것이기 때

문이다. 그녀는 고해소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신부가 그녀 쪽으로 난 작은 격자창을 열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그녀는

커튼 저편의 신부의 머리 모양만 어렴풋이 알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은발에 깊

은 목소리. 그 은발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안심시켜 주었다. 중년의 신부라면

복잡 미묘한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

는 이상스럽게도 귀에 익은 것 같아 이것이 또 잠시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런 상황에 썩 어울리지 않는 사태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

듬어 할 말을 정리했다.

우선 낙태 문제, 어찌 보면 이 문제는 쉬운 일이었다. 이미 수차례나 고백을 했

었기에 거의 고해 성사 의식의 일부가 되어 버리다시피 한 문제였다. 그렇지만

양심의 가책은 아직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십 년 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더랬어요."

여느 때처럼 그녀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임신한 여자 하나가 같이 감방에 있었는데, 그여자는 불결하고 잔인한 그 악취

밴 수용소에서 아기가 태어나 봤자 악몽 같은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두려워

하여 엘레나에게 중절 수술을 해달라고 애원했다. 엘레나는 생명을 구하는 데 헌

신하는 간호사였으므로, 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극도

의 혐오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 임산부에 대한동정심 때문에

(그녀는 자살이라도 할 기세였다.)굴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무슨 얄궂은 운명

이란 말인가! 1년 후에는 그 여자마저 아사하고 말았으니,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수술은 임산부의 생명조차 구하지 못한 셈이 되었다. 만일 그 아이가 태어났더

라면 아마 그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그런 아이들이 몇 있기도 했다.) 지금쯤은

유망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생각이 무엇보다도 가장 그

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엘레나는 이따금씩 한 젊은이를 떠올리곤 했는데, 그

는 분노로 몸을 떨며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당신은 왜 내 온전한 삶의 기회를 박탈해 버렸죠?"

 

신부에게 이 모든 걸 설명하는 동안, 엘레나는 여러 번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신부는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이윽고 신부가 부드러우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그 아이가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내가 믿듯이 당신도 믿으시겠죠?"

그녀는 망설였다. 그 아이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

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지상 생활을 하시는 동안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다정하게

대하셨던가를 기억해 내고는 그 점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믿습니다. 신부님."

"천국에서는 아무도, 상대가 살아 있든 죽었든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까?"

엘레나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천국에서는 당연히 누구라도 모든 피조물에 대

한 사랑이 충만할진대, 그 아이라고 예외이겠는가? 정말로 천국에서는 하느님만

이 다시없이 소중하신 분이고, 그분은 순수한 사랑이시다. 그렇다면 그녀의 '희

생자'(그녀는 내심으로 살해된 태아에게 이렇게 이름붙여 놓았다.)가 자기에 대

해 아직까지 나쁜 감정을 품고 있을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네, 그렇게 믿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동의했다.

신부가 말을 이었다.

"자, 그렇다면, 당신이 믿음으로 알고 있듯이 하느님은 당신을 용서하셨고 그 아

이도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당신을 용서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바로당신 자신

입니다."

신부는 여전히 지극히 온화한 목소리로, 하느님과 그녀의 '희생자'가 베푼 바로

그 자비를 그녀 자신에게도 베풀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하느님의 뜻은 영혼

의 평화였지 무익한 양심의 가책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런 생각들을 마음에 되새

길 여유를 두었다가 잠시 후 신부는 물었다.

 

"괴로운 문제가 또 있으신지요?"

엘레나는 이미 새로운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이 신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정말, 마치 무슨 소중한 것이라

도 되듯이 죄의 짐을 벗어 놓길 거절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

닌 그녀 자신이었다. 사실 그건 짐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완전 무결해야 한다는

병든 의식에서 고집스레 그 짐을 부둥켜안고 다님으로써 그녀가 해온 일이란 고

작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간단(間斷)없는 슬픔 속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 것뿐

이었다. 벗어나려 애를 써 보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여지없는 황무지 같은 삶이었

다. 이 모든 생각이 그 순간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과거

처럼 혼란과 절망을 가져오는 대신, 결코 가능할 것 같지 않던 해방과 평화의 감

정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자신을 고문한 루드비히 카머슈타인을 용서하는 데는 여전히

무력할 따름이었다. 그 짐마저 벗어 놓을 수 있을지…. 그녀는 망설였다. 그래도

신부의 친절한 태도에 힘을 얻어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네, 있습니다."

그녀는 속삭이듯 대답했다.

신부는 끈기있게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그녀는 더듬 더듬 말을 이으며 오랫동안 지녀 왔던 비밀을 고백했다.

"제가 아우슈비츠에 있었을 때, 그 수용소의 한 간수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괴로운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이날 이때까지도 그 가증스런 이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루드비히 카머슈타인

이란 자입니다."

순간 커튼 뒤에서 들려온 어떤 기척이 그녀의 말을 끊어 놓았다.

"헉!" 하고 숨막히는 소리. 신부가 급작스레 병이라도 난 걸까?

숨을 몰아쉬려 애를 쓰고 있기라도 한듯 그의 머리가 숙여졌다.

"괜찬으세요, 신부님?'

그녀가 물었다.

그는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 계속하세요."

그녀는 조금 주저했다. 신부를 도와 주러 가야 할지 어떨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

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부는 정상으로 회복한 것 같았다. 그는 얼굴을 그녀 쪽으

로 돌리고는 휠씬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듣고 있습니다. 계속하세요."

그녀는 그 고통스런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차마 말로 다 옮기지 못할 저 포획

자의 잔혹함을 잊을 수 없었던 20년의 세월이 어떠했는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을 너무도 잘 아는 그녀였기에 그를 용서해 주

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이지 그렇게 할 힘이 전혀 생겨나

질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뼈에 사무친 원한이 그녀의 삶마저 중독시키고

말았다.

이야기의 결론 부분에서 그녀는 절망적으로 물었다.

"어찌해야 이 증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신부님? 저는 정말 그걸 떨쳐 버릴

힘이 없는 걸요."

커튼 저편에서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에 뒤 이어 신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럴 힘이 없으시다 ...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힘을 가

지고 계십니다. 그분께 그 힘을 달라고 청하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그분은 그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녀가 한숨을 토했다. 자신은 하느님의 힘을 빌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회의가 들었다.

"저는... 전 모르겠어요, 신부님, 제게 그럴 용기가 있는지. 그 작자만 생각하

면, 그 긴 삼 년 동안 저를 학대하던 그 짐승을 생각하면..."

말꼬리가 끊겼다.

저편의 목소리가 애써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아주 낮았고 어딘가 먼곳

에서 들려 오는 듯했다.

"어쩌면... 어쩌면, 어떤 사실을 당신이 알게 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소리는 이어질 말을 겁내기라도 하듯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는 루드비히 카머슈타인이 전후(戰後)주님께 귀의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신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수 년간을 떠올릴

적마다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엘레나는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계시죠, 신부님?"

그가 나직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아우슈비츠에서 당신을 괴롭혔던 루드비히 카머슈타인이

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혹시 자기 머리가 어찌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20년 동안이나 기억 속에 눌러앉아 괴롭히던 그 작자를 지금 바로 면전에 마주하

고 있다니... 바로 그 작자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빌고 있다는 말인가? 혐오감과

사무치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어찔어찔 현기증이 일었다. 원한에 사무치던 20년

동안 하느님은 그녀를 놀리고 계셨다는 말인가? 그녀는 일어나 이 악몽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부의 무엇인가가 그녀를 저지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도 마음 속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거기 그냥 머물러 그의 이야기를 들어라."

그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당신의 용서를 요구할 권리가 제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은 그러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용서하길 거절하신 적이 한 번도 없

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 그녀는 저 낙태 문제에 생각이 미쳤다. 하느님도 그녀의 '희생자'도 그

녀를 용서했다. 그녀는 이제 그걸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거기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베푸는

사제가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난 이상 어찌 그를 계속 살인자라 부를 수 있단 말인

가? 아, 이 모든 것이 몸서리쳐지게 혼란스럽다.

어찌해야 하는가? 그녀는 무언의 외침을 토해 냈다.

'하느님, 도와 주세요!"

신부는 그녀의 치열한 몸부림을 이해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녀가 짐을

떨쳐내고 자유로워지도록 도와 줄 수만 있다면!

그는 그녀가 내적 갈등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녀를 위해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떤 영감이 떠올랐다.

"아마 당신은 이 시점에서 이런 사실을 알아 두셔야 할 것 같군요."

그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저의 삶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정말이지,그는 그 세월 동안 자신의 진저리나는 짐을 짊어지고 다녔다.

"아직도 절 용서하지 않은 당신과 같은 분들이 지금도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처럼 하느님의 권능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에

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의 증오를 밤낮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짐이어서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한시라도 지탱하기

힘듭니다. 바로 우리 교구 내에 아우슈비츠에서 제게 피해를입었던 두 여자분이

살고 계십니다. 미사가 있는 날은 거의 어김없이 그분들의 힐난하는 눈빛을 느낍

니다.아직도 저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제가 느끼는 부끄러움과는 별도

로 한 사람의 신부로서, 그분들이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안게되는 영적 상처를 몹

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수용소에서 놓여나긴 했지만 그분들은 아직껏 스스

로의 증오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엘레나는 골똘히 듣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녀는 20년 간을 스스로가 만든 감

옥 속에 갇혀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그녀에게 주

어지고 있다. 루드비히 카머슈타인이 쥐어 주는 것인데도 기꺼이 그것을 사용해

야 하는가?

다정한 내부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바로잡았다.

"아니란다, 엘레나, 그 열쇠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란다. 카머슈타인은 단지

하느님의 도구일 뿐, 하느님이 네게 자유의 문을 열 열쇠를 주신 거야. 그분이

너의 죄들을 용서해 주신 바로 그때 말이야."

엘레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녀는 하느님을 향해 전에는 결코 해본

적이 없었던 간절한 목소리로 절규했다. 그러자 갑자기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

었던 힘이 주어진 것을 느꼈다.

어쩐지 그때까지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이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느님이

당신의 힘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모든 일이 어찌나 단순하게 보였는지!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커튼에

비친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루드비히 카머슈타인, 하느님의 은총으로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림자는 한방 얻어맞은 듯 비틀했다. 그러고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

고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금방 묻어 날 듯한 애정을 가득 실은 목소리

였다.

"이젠 제 차례군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

의 모든 죄를 용서합니다. 보속으로서 방금 제가 말씀드린 두 분을 위해 시편

오십일편으로 정성껏 기도하십시오. 이젠 평안히 가십시오. 하느님께서 항상 당

신과 함께하실 겁니다."

끝났다.

엘레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홀가분했다. 고해소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이 다시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이제 그녀는 진정 자유로웠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아직도 카머슈타인을 증오하고 있는 두 여인을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했다. 그 두 여인이,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이들이 그

녀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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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수 주일 사이에, 신부는 두통의 짧은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각각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필자들의 용서가 씌

어 있었다. 그가 그토록 잔혹하게 괴롭혔던 두 부인에게서 온 편지였다

두 번째 편지를 받은 날 밤, 카머슈타인 신부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롭게 잠

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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