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토론문화에 대한 집념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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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건기 [jamesbae] 쪽지 캡슐

2001-03-27 ㅣ No.799

우리는 이런 저런 모임이나 회의에 자주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모임이나 회의가 사사로운 것이든 공식적인 것이든 예외 없이

참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발언 중에 자신의 의견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즉시 상대를 거의 무시하듯이 상대방의 이야기에 끼어 들고

무시하고, 짓누르고, 짤라먹고, 딴지를 건다. 이러다가 좀더 심해지면

대화의 내용은 고함 일색이다.

 

이런 원인은 아마 이 나라의 교육 제도에서부터 기인한다고 보지만

그보다 먼저 참석하는 사람들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도 있고, 나을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데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그런 자질 말이다.

자신의 의견보다 나으면 쉽게 동의해주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보다

못하면 거의 안하 무인이다.

 

입에 올리는 말의 정도가 격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드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토론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면 절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 것이라야 올바른 토론 문화일 것이다.

아무리 격한 말이나 길게 말하는 사람이나 아주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할지라도 토론을 걸지 말아야 하고 시비를 걸지 말아야 하고 핀잔을

주지 말아야 비로소 인격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전에 남의 말을 짤라 먹기도 했고, 끼어 들기도 했고,

가로 채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다행 스럽게도 필자에게는 아주 귀중한 경험을 하게해 준 하느님의

은총을 떠올린다. 공교육, 사회 단체 교육, 교회 교육의 경험들을 통해서,

또 완전한 자유의사로 체험한 "교수법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서 이런

것들이 이제는 거의 없어져가지만 아직도 노력하는 중이다.

 

이때부터 토론식 교육이라야 해결 될 수 있다는 강한 사상이 필자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 방법으로라야 이미 공적 교육 기회가 다 지나가버린 기성인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스스로 인식하게 해주고, 공동체가 복음화될 수 있을

것이란 다소 환상적인 생각으로 주장을 강하게 해왔던 것이 어쩌면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깊이 반성해 본다.

 

이를 강하게 그리고 욕심을 앞세워서 주창하다보니 많은 저항에

부닥치게 되었다. 저항도 서로 대화로 해결되면 좋은데 이렇게

주장하는 필자에게 "당신의 방식이 맞기는 하지만"이란 단서로 칭찬해

주는 척하면서 속을 뒤집는 말들이 많이 들려 왔다.

 

최근 이런 저런 자리에서 뒤로 들려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게 되었고

흔히 하는 말로서 "봉사하는 사람은 이런 저런 소리 들어가면서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식의 위로는 받지만 이제 인내로서 자제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한계에 와있을 정도로 그동안 겪지 못한 것을 극히 짧은

시간에 체험하는 것 같다.

약 두어 달 동안 흔히 아무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하는 이런 말들로 인해

잠을 못이루는 일이 잦아졌고, 건강이 매우 약해졌고, 사람 만나기가

무서워졌다. 자연히 말이 적어지게 되었고,  또 조심스러워졌다.

 

물론 이 고통을 하느님께 이미 맡겨 놓은 상태이지만.....

초창기 교회를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던 모습이 결과적으로는

서로 마음만 상하게 한 결과를 빚었다. 비록 필자가 나서지 않더라도

하늘 나라는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자명한 것이었음에도

좋은 것이 좋다는 방식으로 했으면 마음이나 상하지 않았을 것을

괜히 잘난체 하여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 무척 가슴이 아프다.

 

어느 교우의 말씀처럼 나도 목에 뻣뻣한 힘이 들어 있는 봉사자는 아니었나

싶어 지난 주부터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미사를 봉헌했더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는데 그 동안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톨릭 교회는 신앙이 개인적이라기보다 공동체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에 누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 되는

사람이어야 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겁이 난다.

그동안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주님의 은총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생활해 왔고, 또 봉사해 왔는데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조심할 부분이

매우 많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희생과 극기와 절제로서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과 묻히심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부활과 함께 자신도 부활할 것이란 믿음으로 살았어야 할 귀중한

시간 동안 이상한 덫에 걸려 이다지도 고통과 싸우고 있어야 하나 싶어 과거를

되짚어 보면서 깊이 반성해 본다.

 

- - - -

 

그 동안 저로 인해 직접 간접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합니다.

 

배건기(야고보) 엎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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