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꼭필독] 가해 연중 제11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11주일> 912_faith

인쇄

. [121.190.18.*]

2023-06-16 ㅣ No.3202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202.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11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68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가해 연중 제11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80/가해연중제11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오류 바로잡음: (i) 15:30-15:3216:59-17:01에서 "주모경""천주경(天主經)"으로 바로잡습니다; (ii) 33:27-33:37 에서, "킹 제임스 버젼도 그렇게 되어 있는데... RSV 내면서 바뀐 것 같아요""1611년에 초간된 영어본 킹제임스 버젼 내면서부터 바뀐 것 같아요"로 바로잡습니다.(이상, 오류 바로잡음 끝).

참고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CP(프랑스어본), CEI(이탈리아어본), TOB(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 이들 모두에서도, "새 번역 성경", 로마서 5,7에서 "의로운 이"로 번역된 부분에서, "just"(정의로운)에 등가인 단어로 번역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atho.org/9.php?d=cyd#fd]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202.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가해연중11주일> 가해 연중 제11주일  

 

탈출기 19,2-6ㄱ; 마태오 복음서 9,36-10,8; 로마 5,6-1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11.htm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A new phase in the long process of relations between human beings and God begins on Sinai: the choice and constitution of a people by God. This is what Exodus says: "You of all the nations shall be my very own." With Jesus Christ a new people of God was established in history, founded on the Twelve: "Jesus summoned his twelve disciples…. These are the names of the twelve apostles: first, Simon…." The new people of God was constituted through the total offering of Jesus Christ on the Cross through which the Father reconciled us to him: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already gained our reconciliation."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인간들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들의 긴 과정에 있어 다음과 같은 한 개의 새로운 국면/단계가 시나이 산 위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한 개의 백성의 선택 및 구성. 다음은 탈출기가 말하는 바입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을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장차 될 것이다." (탈출 19,5ㄱ 후반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역사 안에서, 다음과 같이 열두 제자들 위에 기초를 둔, 하느님의 한 개의 새 백성이 제정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열두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 열두 사도들의 이름들은 이러하다: 첫 번째로, 시몬 ...." (마태오 복음서 10,1ㄱ; 10,2ㄱ). 하느님의 이 새 백성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희생 봉헌을 통하여 구성되었는데, 바로 이 봉헌을 통하여 성부께서 다음과 같이 우리들을 당신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우리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을 통하여 우리의 화해를 우리는 이미 획득하였습니다." (로마 5,11ㄴ).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A. 오늘의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11.htm  

 

B.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67-78쪽 

 

 

오늘의 제1독서:

 

 

오늘의 복음 말씀:

 

게시자 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시기에는 주일 미사 중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발췌되어 봉독됩니다. 

 

오늘의 제2독서:

 

주제: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은 무엇? 의롭게 됨(justification)의 의미는 무엇?

 

게시자 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9주일부터 제24주일까지 주일 미사 중의 제2독서는 로마서에서 발췌되어 봉독됩니다.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C. 매년 연중 제11주일은 반드시 6월 12일부터 6월 18일 사이의 일요일로 고정되고 그리고 이전의 연중 주일들 및 주간들은 매년 음력을 따르는 부활절 일요일에 따라 가변적이며 앞에서부터 생략될 수 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D.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나이 산 기슭에 위치한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대한 성지 순례 안내를 접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Sinai_St_Catherine_Monastery.htm <----- 필독 권고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산상설교라는 잘못 번역된 용어의 출처, 유래 및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과정’ 제목의 졸글의 안내를 시정/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산상설교는_잘못된_번역표현이다_2955.htm <----- 필독 권고

 

F.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종도(宗徒)라는 번역 용어가 얀센주의자인 장 바쎄 신부에 의하여 사도(使徒)로 최초로 바뀐 시점은 1700년경이었다’ 제목의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종도_단어가_사도로_처음으로_바뀐_것은_만물시원(1700년)에서였다_2917.htm <----- 필독 권고

 

(ii) 신약 성경에 있어 가장 자주 ‘사도’/‘종도’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바오로의 서간들에서 ‘사도’라는 용어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고 또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임무가 주어진 자를 주로 의미한다.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의 약간의 와전(variants)들과 함께, 이 집단에 속하는 자들의 이름들은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 주어진 네 개의 명단들과 동일하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b/matthew10.htm 

 

G.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다음의 제목의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하늘_나라(천국)은_과연_지상의_어디에_있는가_2859.htm <----- 꼭 필독 권고

 

H.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가족 계약(God’s family covenant)의 의미에 대한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venant_vs_contract_2684.htm <----- 필독 권고

 

I(아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회의/불신(unbelief)거부(disbelief)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unbelief_vs_disbelief_3156.htm <----- 필독 권고

 

 

J. 정의(正義, justice)의 정의(定義, definition)를 제대로 알기 위하여 다음의 주소에 있는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와 그 적용 예들"을 필히 학습하라. 그리고 사추덕들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설명은 본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5-17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들에 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의(正義, justice)의 정의(definition)와 그 적용 예들’ 제목의 졸글[게시일자: 2008-06-08]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99.htm <----- 꼭 필독 권고 


K.
(a)

Peliminary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에 대하여' 제목의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Peliminary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윤리(morality), 윤리적 선 이라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 등에 대하여' 제목의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orality_1284.htm  <----- 꼭 필독 권고 

 

Peliminary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piety(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제목의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410.htm <----- 꼭 필독 권고 

 

Peliminary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십계명 등과 piety(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제목의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1.htm <----- 꼭 필독 권고 

 

Peliminary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性教(성교, 자연법)와 聖敎(성교,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커다란 차이점' 제목의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性敎(성교_자연법)_vs_聖敎(성교_그리스도의_가르침)_3020.htm <----- 꼭 필독 권고 

 

(b) [Summary]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is124.htm


현명(prudence, 지덕), 정의(justice, 의덕), 용기(fortitude, 용덕), 그리고 절제(temperance, 절덕)로 구성된 사추덕(four cardinal virtues)들은, (i) 자연적인 인간의 이성(natural human reason)에 의하여 알게 되고, (ii) 이들의 근원(origin)이 인성(human nature)에 있으며, (iii) 이들의 목표(goal)가 인간의 품성(character)과 삶(life)의 완미(perfection)이므로, 자연덕(natural virtues)들이라고 또한 불린다.

 

이들은 또한, (1) 하느님의 계시에 의하여 더 완미하게 알게 되고, (2)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도움을 받고 또 증가하게 되며, (3) 그리고 하느님과의 결합(union)이라는 더 높은 목표에 협조하게 된다(incorporated into).

 

다른 한편으로, 믿음(faith, 신앙, 신덕), 희망(hope, 망덕), 그리고 사랑(charity, 애덕)으로 구성된 향주삼덕(three theological virtues)들은, (i) 하느님에 의하여 계시되어 믿음(faith, 신앙)에 의하여 알게 되고, (ii) 세례시에 성화 은총(sanctifying grace)과 함께 세례자의 영혼에 하느님에 의하여 주입되며(infused), (iii) 그리고 이들의 목적이 우리들이 신성(divine nature)에 참여하게 함에 있으므로, 초자연덕(supernatural virtues)들이라고 또한 불린다.

 

이들이 "하느님을 향한(theological)"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하느님을 대상(object)으로 하기 때문이다. "믿음, 희망, 그리고 사랑"은 하느님 쪽으로 믿음, 하느님 쪽으로 희망, 그리고 하느님 쪽으로 사랑 및 하느님을 위한 이웃 쪽으로 사랑을 의미한다.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믿음(faith)이라는 성경 및 교리 용어의 교의적 자구적 어의윤리적 어의[즉, 성경적 자구적 어의]의 차이점에 대하여' 제목의 졸고[내용 추가 일자: 2023년 4월 20일]의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literal_sense_of_faith_vs_moral_sense_of_faith_1555.htm <----- 꼭 필독 권고

(발췌 시작)

3-2-1. [믿음(faith)이라는 성경 및 교리 용어의 교의적 자구적 어의(dogmatic literal sense)]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항에 제시된 믿음(faith)이라는 성경 및 교리 용어의 교의적 자구적 어의(dogmatic literal sense)/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_PU.HTM 

(발췌 시작)

MAN'S RESPONSE TO GOD

 

142 By his Revelation, "the invisible God, from the fullness of his love, addresses men as his friends, and moves among them, in order to invite and receive them into his own company."1 The adequate response to this invitation is faith.

 

142 당신의 거룩한 계시(Revelation)에 의하여, "비가시적인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의 충만함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당신의 벗들로서 말을 거시고(addresses),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움직이시는데(moves), 이것은 당신의 고유한 동료(company) 안쪽으로 그들을 초대하고(invite) 그리고 받아들이기(receive) 위하여서 입니다"1) 바로 이러한 초대 쪽으로 [사람들의, 하느님의 의지에 부합하는(conform), 의지(will)의] 적절한 화답(adequate response)(*)이 믿음(faith)입니다. 

 

-----

1) DV 2(하느님의 말씀 제2항); cf. Col 1:15(콜로새 1,15); 1 Tim 1:17(1티모테오 1,17); Ex 33:11(탈출 33,11); Jn 15:14-15(요한 복음서 15,14-15); Bar 3:38 (Vulg.)(바룩 3,38(대중 라틴말 성경)).

[게시자 주: 여기서 'DV'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신성적 계시(Divine Revelation)에 대한 교의 헌장인 'Dei Verum'(하느님의 말씀)의 약자이다.]

 

(*) 번역자 주: 

(1) (이 글의 결론 1) (Sun T. Soh) 

(가) (Credere Deum) 천지만물의 운행들 및 질서들을 또한 주관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느님과의 어떤 관계의 상태(a relationship)의 형성 초기에 있게 되는 바로 이 화답, 즉, '믿음'(faith)은, 피조물인 당사자의 지성(intellect)동의(assent) 이전에, 피조물인 당사자의 의지(will)동의(assent)가 먼저 개입하게 됨에 받드시 주목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6월 20일] 그러니까, 바로 이 '믿음(faith)이라고 불리는, 당사자의 의지(will)동의(assent)의 한 결과로서 당사자의 영혼에 수용(受容)된[즉, 받아들여진], 초자연적 은총'의 행위(the act of the accepted supernatural grace, called faith)에 의하여(참조: 마태오 복음서 16,15-17; 필리피 1,6; 1,29; 에페소 2,8),(*) '당사자의 의지의 동의의 대상(object)인 하느님'께서 존재하심이라는 진리에 대한 당사자의 지성(intellect)동의(assent)가 후건적으로(後件的, consequently) 곧바로 뒤따르게 된다.

 

-----

(*) 번역자 주: (i) 이 부분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의지(will)란?; 게시일자: 2012-10-26] 중의, 제2차 오란제 공의회(Concile d'Orange II, 529년)에서 공포된, "믿고자 하는 의지"(will to believe)라고 불리는 교리(doctrine)에 근거하고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octrine-will_to_believe_1283.htm <----- 꼭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마르틴 루터를 단죄할 때에 자유롭게 사용된, 제2차 오란제 공의회(Concile d'Orange II, 529년)의 25개의 결과들의 요약을 학습할 수 있다:

https://www.newadvent.org/cathen/11266b.htm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제2차 오란제 공의회(Concile d'Orange II, 529년)의 25개의 결과들이 의미하는 바들 몇 개를 읽을 수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ouncil_of_Orange_(529) 

(발췌 시작)

Effects

 

The canons of the Second Council [of Orange] seem to have been lost in the tenth century, then recovered and consequently published in 1543.(*) Nonetheless, the teachings of the Council, which followed closely those of Augustine, continued to be adhered to by later medieval scholars, not least of which Thomas Aquinas. The 'Capitula' of Felix IV, on which the Council's 'Capitula' were based, were freely used by the Council of Trent in its condemnation of Luther. Certain Classical Protestants affirm the theology of the Second Council of Orange. However, the concessions it makes of a weakened free will which cooperates with God's Grace is inconsistent with Luther (see Assertio, Article 36) or Calvin determinism and Calvin double-predestination. Arminian theologians[8][9] also consider the Council of Orange historically significant in that it strongly affirmed the necessity of prevenient grace and yet did not present divine grace as irresistible, deny the free will of the unregenerate to repent in faith, or endorse a strictly Augustinian view of predestination.

 

-----

(*) 게시자 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단죄하기 위하여 개최된 공의회인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가 개최된 해가, 2년 뒤인, 1545년임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마르틴 루터, 캘빈 등의 인물들이 바로 이 오량주 공의회(529년)의 결과들을 알았더라면(가정법 과거완료), 바로 이 오랑주 공의회의 결과, 신학 대전, 그리고 성경 본문에 근거하여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단죄된, 그들 고유의 이단 주장들 자체을, 아예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상, 발췌 끝) 

-----

[이상, 2023년 6월 20일자 내용 추가 끝]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범한 원죄의 한 결과로서, 인간들은 무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오로지 피조물인 인간의 창조된 지성(intellect)만의 노력으로는 특히, 소위 말하는, 계시된 진리(the revealed truths)들을 제대로 알 수 없고, 따라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한 이후로, 하느님과 피조물인 당사자 사람 사이의 통공/하나 됨(communion)의 최초 회복 및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바가 바로, 바로 이러한 초대 쪽으로 [사람들의, 하느님의 의지에 부합하는(conform), 의지(will)의] 적절한 화답(adequate response), 즉,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믿음(faith)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특히, 바로 이러한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를 지닌 '믿음'(faith)은 피조물인 당사자가 반드시(should) 하느님 쪽으로 기울어지는 성향(disposition to God)을 항상 유지하여야 함, 즉, 습관적이어야(habitual) 함을 그 속성으로서 가짐을 또한 주목하라. 왜냐하면 하느님과 당사자 사이의 통공/하나 됨(communion)은 계속적으로 및 지속적으로(continuously and constantly) 유지되어야 하는 한 개의 관계의 상태(a relationship)이기 때문이다.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6월 20일]

그리고 여기까지 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느님에 의하여 당사자의 영혼(soul)에 주입되는, '믿음(faith)이라고 불리는, 당사자의 의지(will)동의(assent)의 한 결과로서 당사자의 영혼에 수용(受容)된[즉, 받아들여진], 초자연적 은총'의 행위(the act of the accepted supernatural grace, called faith)에 의하여서(참조: 마태오 복음서 16,15-17; 필리피 1,6; 1,29; 에페소 2,8)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게시자 주: 그러나, 예를 들어 마르틴 루터처럼, 심지어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악설을 신봉하거나 혹은 불신/회의(unbelief)[게시자 주: 위의 제I(아이)항 참조]에 사로잡힌 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탓에 의하여당사자의 의지(will)가 하느님의 의지에 부합하는(conform) 적절한 화답(adequate response)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임, 즉, 바로 이 초자연적 '믿음'(faith)이 자신의 영혼 안에 수용(受容)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임에 또한 주목하라 [요한 복음서 20,29ㄷ: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NAB: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have believed)].

 

(나) (Credere Deo) 그러면, 이번에는(in turn), 바로 이 '믿음(faith)이라고 불리는, 당사자의 의지(will)동의(assent)의 한 결과로서 당사자의 영혼에 수용(受容)된[즉, 받아들여진], 초자연적 은총'의 행위(the act of the accepted supernatural grace, called faith)에 의하여(참조: 마태오 복음서 16,15-17; 필리피 1,6; 1,29; 에페소 2,8), 당사자의 지성(intellect)하느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바를 진리로서 인정하면서 자신의 기억(memory) 안쪽으로 받아들이는 동의(assent)를 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 결과, 자신의[즉, 이성(reason)의] 추론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바를 판단의 근거/기준/잣대로서, 즉, 하느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바를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지성의 수용된 올바름(the rectitude of the intellect)으로서, 향후 사용하게 되는데, 의지의 영향 아래에 있는 지성의 바로 이러한 동의는, 즉,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당사자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바를 진리로서 기꺼이 믿도록(believe) 하는, '믿음(faith)이라고 불리는, 당사자의 의지(will)동의(assent)의 한 결과로서 당사자의 영혼에 수용(受容)된[즉, 받아들여진], 초자연적 은총'의 행위(the act of the accepted supernatural grace, called faith)(참조: 마태오 복음서 16,15-17; 필리피 1,6; 1,29; 에페소 2,8)는, 당사자의 영혼에 주입되는 조력(助力) 은총(actual grace) 혹은 성화(聖化) 은총(sanctifying grace), 이들 둘 중의 하나 혹은 이들 둘 다인, 신성적 은총(divine grace)필요로 한다(requires). 

 

(다) (Credere in Deum) 그러면, 이번에는(in turn), 당사자의 의지(will)는 당사자의 기억 안쪽으로 수용된 하느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바동의(assent)를 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 결과, 당사자의 의지(will)는 하느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바를 생각, 말, 행위로 불리는 움직임(movements)들에 있어서의 판단의 근거/기준/잣대로서, 즉,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의지의 수용된 올바름(the rectitude of the will)으로서향후 사용하게 되는데, 의지의 바로 이러한 동의는, 즉,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당사자로 하여금 하느님 쪽으로 기꺼이 믿도록(believe in) 하는, '믿음(faith)이라고 불리는, 당사자의 의지(will)동의(assent)의 한 결과로서 당사자의 영혼에 수용(受容)된[즉, 받아들여진]초자연적 은총'의 행위(the act of the accepted supernatural grace, called faith)(참조: 마태오 복음서 16,15-17; 필리피 1,6; 1,29; 에페소 2,8), 당사자의 영혼에 주입되는 조력(助力) 은총(actual grace) 혹은 성화(聖化) 은총(sanctifying grace), 이들 둘 중의 하나 혹은 이들 둘 다인, 신성적 은총(divine grace)필요로 한다(requires). 

(이상, 이 글의 결론 1 끝)

 

게시자 주: 특히, 위의 (가), (나), 그리고 (다)에서 말씀드린 바가, 유아 세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 2023년 6월 20일자 내용 추가 끝]

 

     그리고 바로 이러한 '믿음'(faith)은 또한 피조물인 인간들의 의지(will, rational appetite)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 정의(定義, 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는, 향주삼덕들에 포함되는 망덕(hope)과 애덕(charity)의 행위(acts)들인, "정의"(情意, affections)들을, 즉, 인간의 정조(情操, human sentiments)들에 있어서의 폭 넓은 다양함을,(#) 필요조건으로서, 요구함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성경_및_교리_용어_affection은_애정으로_번역되지_말아야_한다_3156.htm <----- 꼭 필청/필독 권고

 

-----

(#)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필자의 졸글/졸고들 중에서 이들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들 혹은 용례(usage examples)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affections(情意들)_and_sentiments(情操들).htm <----- 필독 권고

 

(2) 그리고 다음의 파란 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윤리 신학 분야 안에서 더 많은 용례(usage exampled)들을 접할 수 있다:

 

"affections" "sentiments" site:maritain.nd.edu/jmc

-----

 

(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 형용사 "adequate"(적절한)가 사용된 항들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항, 제2184항, 그리고 제2221항, 이렇게 단 세 번뿐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http://www.intratext.com/IXT/ENG0015/3/PY.HTM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혹은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3/Q0.HTM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들 세 개의 각 항들에 있어의 그 전후 문맥 안에서, 특히 바로 위의 제(1)항에서 함께 고찰하였듯이, 단순한 강조의 수식어가 결코 아닌 하느님과 피조물인 당사자 사이의 통공/하나 됨(communion, communio)을 위한 필수적인 바를 기술하는 한 개의 유관 개념 서술형 형용사로서, 따라서 교의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한 개의 유관 개념 서술형 형용사로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항에서 "adequate"(적절한)이라는 형용사가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2-1: (1) '믿음'/'신앙'/'신덕'(faith)이라는 성경 및 교리 용어의 교의적 자구적 어의(dogmatic literal sense)/정의(definition)가 바로 여기서 제시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그리고 통상적으로, 예를 들어, 위의 제3-1항 그리고 아래의 제3-2-2항에서처럼, 우리가 '믿음'/'신앙'/'신덕'(faith)이라는 번역 용어들 중의 어느 하나를 사용하더라도, 해당 번역 용어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항정의된(defined), 바로 이 교의적 자구적 어의(dogmatic literal sense)를 또한 항상, 근본적으로 및 우선적으로, 의미함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14항의 첫 문장에서처럼: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_P66.HTM 

(발췌 시작)

1814 Faith is the theological virtue by which we believe in God and believe all that he has said and revealed to us, and that Holy Church proposes for our belief, because he is truth itself. By faith "man freely commits his entire self to God."78 For this reason the believer seeks to know and do God's will. "The righteous shall live by faith." Living faith "work(s) through charity."79

 

1814 믿음/신덕(faith)은 향주덕[즉, 하느님 쪽으로 향하게 하는 덕]인데 바로 이 덕에 의하여 우리는 하느님 쪽으로 믿으며(believe in)[번역자 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항에 주어진 "믿음"의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를 필히 참조하라] 그리하여 그분께서 우리들 쪽으로 이미 말씀하신 및 계시하신 바 모두 믿으며(believe), 그리고 우리들의 신념(belief)을 위하여 거룩한 교회가 제안한 바[번역자 주: 예를 들어, "사도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등의 신앙 고백(the confession of faith)들]을 믿는데,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의하여 "사람은 하느님 쪽으로 자신의 전체 자아를 위탁합니다."78)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믿는 자는 하느님의 의지(God's will)를 알고자 하고 그리고 행하고자 노력합니다. "의로운 자(the righteous)는 믿음으로써 살아갈 것이다." 살아 있는 믿음은 "애덕을 통하여 실천한다"79)

 

-----

78) DV 5(하느님의 말씀 제2항). [게시자 주: 여기서 'DV'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신성적 계시(Divine Revelation)에 대한 교의 헌장인 'Dei Verum'(하느님의 말씀)의 약자이다.]

79) Rom 1:17(로마 1,17); Gal 5:6(갈라티아 5,6).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이상, 발췌 끝)

 

(d) (Sun T. Soh) 정의(正義, justice)는 윤리덕, 대인덕, 혹은 자연덕(natural virtue)이라고 불리는 인간에 대한 덕(human virtues)들/윤리덕(moral virtues)들 중의 주된 덕들인 사추덕(四樞德, 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한 개인데, 로마서 5,7에서 의로운 이(번역 오류: a just person, 즉, 정의로운 이)는, "우리가 아직 나약한 시절"이라는 로마서 5,6의 첫 부분 언급에 비추어 볼 때에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 의롭게 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로움, 즉, 신성(神性)적 사랑의 행위(divine love)에 있어서의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the rectitude of divine love) [즉, 영원한 법(the eternal law)에 순응/부합하는, 마지막 끝 쪽으로 최적의 방향성 및 기울어짐과 함께 움직이도록 (어떤 방식, 시간, 혹은 정도에 있어) 합당하게 명령을 받고 있음(being duly ordered to the last end)의 수용(受容)이라는 올바름](the rectitude of divine love)],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바리사이들처럼 율법에 충실한 자 혹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 대하여 정의로운 사람(a just person)을, 즉, 상호 정의(commutative justice)를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의로운 사람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은, 친자식이라면 모를까, 거의 있지 않을 것이나, 이에 비하여 착한 사람(good person, 善者)은, 즉, 하느님이 사랑받는 사랑(love)인 "애덕(charity, caritas)을 실천하는 자", 즉 "선행(good work)을 하는 자"는, 비록 "아직 나약한 시절"에 살고 있어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 의롭게 된 사람이 아니기는 하나, 신성(神性)적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의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the rectitude of divine love)을, 예를 들어 예수님처럼, 몸소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사람이므로, 혹시 이 착한 사람(善者)을 대신하여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래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마서 5,9에서의 "우리"는 "세례를 받아 의로워진 우리"를 의미하므로, 로마서 5,7은 (심지어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인류 모두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하느님 사랑의 완미한(perfect) 실천을 언급하고 있는) 그 다음 절인 로마서 5,8과 (그리고 5,8의 반복인 5,10과) 크게 대비를 이루고 있는 절이다.

 

 

L.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의로운 자’[즉,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확신하는 자, 예를 들어, 바리사이]와 ‘의롭게 된 자’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졸글의 간략한 안내를 시청/청취한 후에 본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의로운_자_vs_의롭게_된_자_3051.htm <----- 필독 권고

 

M.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1항에 있는 기존의 "하느님의 사랑의 공정성"이라는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신성(神性)적 사랑의 행위(divine love)에 있어서의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으로 교체되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1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바로 이 "the rectitude of divine love" 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있으니,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꼭 필독 권고

 

 

O.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 즉,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분에 대한 존칭인 ‘신부’(神父)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 및 기원에 대한 졸고[제목: 神父(신부)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와 논리적으로 등가인 용어로서 1601년 경에 도입한 분은 마태오 리치 신부님이셨다; 게시일자: 2023-06-14]를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200.htm <----- 꼭 필독 권고

 

 

� 오늘의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422. 의롭게 됨(의화)이 무엇인지요?
CCC 1987-1995, 2017-2020


의롭게 됨(justification, 의화, 義化)은 하느님 사랑의 가장 탁월한 업적(work)입니다. 이것은  자비로운 및 거저 주어지는 하느님의 작용(act)인데, 이 작용은 우리의 전체 있음(whole being) 안에서 우리의 죄들을 없애주고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just)* 및 거룩하게(holy) 만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의하여 우리가 마땅히 받을 만하게 되었고(merited) 그리고 세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총에 의하여 실현됩니다(se réalise). 의롭게 됨은 사람의 자유로운 응답의 시작, 즉, 그리스도 쪽으로 믿음(faith in Christ)의 시작이며 그리고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총과의 협조(cooperation)의 시작입니다(엮은이 번역).

 

*: 여기서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의로움(righteousness)을 그리스도 쪽으로 믿음 안에서 우리가 받아들이게 됨(acceptance)을 의미한다(CCC 1987).

 

주: 라틴어 어원이 ‘justus’이며 형용사가 ‘정의로운’(just)인 명사 ‘정의’(justice)의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정의(definition)는

(i) 마태오 복음서 20,13-14,

(ii) 본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7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 있는

CCCC 381 - 정의(justice)는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몫(due)을 주기 위한 확고하고 지속적인 의지(will)를 의미한다(엮은이 번역),

또한

(iii)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ustice_concept_error.htm 에 있는 졸고들을 학습하라 [주: 필독 권고].

(iv) http://ch.catholic.or.kr/pundang/4/ce_justice.htm 도 또한 참조하라.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1_c1987.htm

 

CCCC 423. 우리를 의롭게 하는 은총(의화은총)은 무엇입니까?
CCC 1996-1998, 2005, 2021


바로 이 의화은총(justifying grace)은 하느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삼위의 생명(trinitarian life)에 참여하게 하려고 또 당신의 사랑으로써 행동할 수 있게 하려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상의(gratuitous) 선물입니다. 이 은총은 상존은총(常存恩寵, gratia habitualis, habitual grace), 성화은총(聖化恩寵, gratia santificans, sanctifying grace), 혹은 신화은총(神化恩寵, gratia deificans, defying grace)으로 불리는데, 왜냐하면 이 은총이 우리를 성화시키며(sanctifies) 신성하게 하기(divinizes) 때문입니다. 이 은총은 초자연적(supernatural)인데, 왜냐하면 이 은총이 하느님의 무상의 주도권(initiative)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지성(intellect)과 육체적 능력(powers) 같은 역량(abilities)들을 능가하기(surpass)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총은 우리의 경험(이라는 속박)을 벗어납니다(escapes)(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1_c1996.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본 게시글로의 실제 조회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visitor counter

122 2

추천

Sun_T_SOH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