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당 게시판

[퍼온글]10년전 아버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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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0-05-16 ㅣ No.382

 

+ L’amore e la pace di Gesu Cristo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행신1동 유종만 바오로 신부님의 성소주일 강론 말씀을 퍼왔습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그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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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성소주일입니다.  

작년 성소주일에 신자들에게 들려준 사제서품 받기 바로 전에 받았던 아버님의 편지를 올립니다.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던 소중한 편지입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한번 아버님의 편지를 받아 보고서도 많이 울었지만 생애 두 번째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이 편지는 눈물이 흘러 아직도 끝까지 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미사해설자보고 읽으라고 했었습니다.  

사랑하는 밀알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제서품을 앞둔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글]

 

사랑하는 유 부제(副祭)!  

오늘 아침 미사 드리고 나오다보니 성당 게시판에 붙어 있던 사제서품(司祭序品) 공시표가 떼어졌더구나.  

며칠 지나면 내 곁을 떠나 신부님이 되시겠지.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다리던 일이냐.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아들...’  아마도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기뻐해야만 할 이 애비의 마음 한 구석엔 허전한 생각이 더 크다는 것이 솔직한 애비의 심정이다.  

평생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험한 언덕길을 걸어가야 할 자식의 앞날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영광의 길을 걷는 빛나는 모습’이기에 앞서 측은하고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자식 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일 게다.  

 

세월은 정말 빠르구나.  

신학교 ’보내자’, ’못 보낸다’, ’간다’, ’못 간다’하며 엄마와 애비가 그리고 너와 내가 왈가왈부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이젠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때 이 애비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  

5대 독자인 애비의 입장에서 네 형마저 독자로 만들고 싶지 않은 평범한 애비의 단순한 감정에서였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그러나 결국 애비는 승복하고 말았지.  하지만 애비는 굴복한 게 아니었어.  

거기엔 그만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너의 굳은 의지나 네 엄마의 신심이나 고집에 굴복한 게 아니라 결심하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  

 

그때가 바로 네 형이 ’전두환 군사독재 물러가라’고 외치다가 계엄법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계류 중일 때였지.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신기하고도 묘한 것이 아니겠니?  

30년간의 군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때,  아직 세속에 물들기 전에 네 형을 통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를 깨닫게 해주셨으니 말이다.  

다 지나간 일들이지...간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지만...

소위 당시 군사재판을 맡고 있던 옛 부하들의 부탁과 권고를 네 형과 그의 동료들을 특별면회간 일이 있었지.  

그런데 그들을 설득하러 갔던 내가 오히려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서 정의와 진리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올바른 인생관, 그리고 참다운 가치관을 찾게 되었고 독선적이던 내 사고방식이 변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유 부제!  

부제도 잘 알다시피 너의 신학교 진학을 승낙한 것은 그 후에도 많은 시간이 흘러간 뒤였지.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네 형을 면회 갔다 온 바로 그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날 이 애비는 한없이 울었지...  네 엄마도 울고.  슬퍼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부끄러워 울었지.  

면회간 애비에게

"시간도 많고 조용해서 집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공부하기 좋으니 걱정 말라."  

"나 때문에 어머니 건강 해칠지 모르니 어머니 위로 잘해 달라."고 하면서

"아버님, 종만(바오로)이 자기 희망대로 신학교 보내 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네 형은 자기자신보다 오히려 밖의 가족들을 걱정했다.  

그러한 네 형의 효심과 형제애를 보면서 참다운 가정과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다.  

또 당시 함께 있던 수감자들에게 매일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니 성서공부도 되고 좋다면서, 고문당해 터진 발의 동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말을 풀어 실을 꼬아 만든 십자가와 구슬로 엮은 묵주를 목에 걸고는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며 활짝 웃던 네 형의 늠름한 모습에서 참다운 그리스도인 생활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단다.  

어디 그뿐이냐?  

감방동료들이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동상에 좋다며 한 공기도 안 되는 밥에서 반이 넘는 콩을 골라 수건으로 감싸준, 구정물 흐르던 네 형의 동상 걸린 발을 보고 그들의 뜨거운 인간애에서 참다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꼈단다.  

그때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단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차마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집에 와서 울었던 게다.  그때 비로소 내 마음이 열린 거야.  

 

사랑하는 유 부제!  

그로부터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이젠 "네 형마저 독자로 만들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 잊어버린 지 오래다.  

실제로 네 형이 출감해서 사제가 되겠다고 해서 너와 교구 성소국장 신부님과 주교님을 만나 뵌 일까지 있지 않니?(성사는 안됐지만)  

이 애비는 오직 감사할 따름이야.  

모든 어려움을 잘 참아내고 며칠 후면 사제가 되실 테니까 말이다.

그 이상 고마울 데가 없구나.  

어디 그뿐이냐?  

네 형도 네 형수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며 시작활동(詩作活動)을 하고 있지.  

또한 하나밖에 없는 귀염둥이 네 동생 안나도 곧 양가집에 시집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우냐?  

주님께 그리고 모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애비는 늘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구나.  

그것은 네 엄마와 너희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못다 한, 한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자책감이지.  

특수한 직업(군인)이라고는 하지만 가정을 너희들 어머니에게만 맡기고 생의 반 이상을 떠돌이생활 했으니 너희들 어머니 고생이 어떠했겠니?

너희들 용돈 한번 제대로 못 준 애비였기도 하지.  

어디 그뿐이니?  생활비 보탠다고 하숙생 셋을 두고 어린 네 동생 들쳐업고 고생하던 네 엄마의 모습, 너는 어려서 기억이 잘 날지 모르겠구나.  

그런 네 엄마에게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한 가장...  정말로 간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란다.  

참으로 못난 애비였지.  참으로 무능한 남편이었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아들딸아, 남이야 뭐라던 너희들만은 못난 애비라고 탓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리라 믿는다.  

이 애비는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출세 못해서 불운하다고 한탄한 적도, 원망한 적도, 더더욱 명예를 못 얻었다고 슬퍼한 적 한번도 없단다.  

재물, 권력, 명예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돈 - 먹고 살 수 있으면 됐지.  권력 - 과거 쥐꼬리만치 행사해 봤지.  그러나 별 것 아니야.  솔로몬 왕도 마지막에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헛되도다."(전도 12,8)라고 하지 않았느냐?  명예 - 사제집안 이상 더 큰 명예가 어디 있느냐?  

비록 애비는 못났지만 자식들 밝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서 올바르게 자기 몫 다하며 성가정 이루고 잘 사는데 이 이상 바랄 것이 뭐 있겠느냐?  

그래서 이 애비 요새 살맛난다.  신난다.  어깨 펴고 다닌다.  

 

교만해질까봐, 목에 힘이 들어갈까 봐 겁이 나지만,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너의 서품을 축하해주고 있느냐?  

동창회, 동기회, 향우회, 특히 면민회에서는 유사이래 첫 사제가 탄생했으니, 고향의 명예이며 자랑이라고 야단들이란다.  

본당 교우들의 기뻐하는 모습 너도 느끼고 있겠지.  

그러니 이 애비 5대, 6대 독자 따위 생각이나 하게 됐니?

그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축하 받기 앞서 너나 내가 명심할 일이 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지.

모든 사람의 눈과 귀는 두 개씩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흠은 두배, 스무 배로 커 보이며 궂은 일도 두배, 스무배 아니 그 이상 불어나 멀리까지 들리게 마련이란다.  

 

며칠 후면 함부로 불러볼 수 없는 ’내 아들!’  

모든 이의 정성과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너와 내가 힘쓰자꾸나.  

훌륭한 사제가 되어다오.  

이것만이 이 애비와 어미의 간절한 소망이다.  

부디 건강한 사제, 명랑한 사제가 되어다오.  

부디 공부하는 사제, 기도하는 사제가 되어다오.  

부디 회초리보다 사랑의 채찍을 든 목동이 되어다오.  

부디 약하고 소외 받는 자와 함께 하는, 행동하는 사제가 되어다오.  

부디 정의와 진리의 횃불을 앞장서 높이 드는 사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성된 인간이 되어다오.  

사랑하는 유 부제!  

이제 이 애비, 어미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기도드릴 일만 남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자식으로서 마지막 응석과 투정 마음껏 부리다가 떠나십시오.  

쓰던 방은 그대로 보전하겠습니다.  

남은 여생 부제(신부님)의 체취나마 맡으며 살렵니다.  

그것만은 영원한 ’내 아들’의 냄새로 우리 집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만날 그때는 어엿한 신부님의 모습이겠군요.  내내 건강하길.  

 

- 서품 전 마지막 피정을 떠나는 날 아침에 - 아버지로부터.

 

다시 옮겨 쓰면서도 눈물이 흐릅니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존경하는 아버님을 늘 생각하면서 - 로빈 신부

 

 

※  84년 교황님께서 오셨을 때 젊은이와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당시 주최측에서 교황님께 선물로 드린 것이 양말의 실을 풀어서 만든 십자가라고 합니다.

당시 사회자는 민주화를 외치며 감옥에 가 있는 어느 형제가 만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고 하는데 바로 그 십자가가 유신부님의 형님께서 만드신 십자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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