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성당 게시판

뚱의 훈련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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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미 [silbuea] 쪽지 캡슐

1999-08-25 ㅣ No.246

아침에 눈을 떴다...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말없이 신문을 보고계시는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아마 신문을 읽고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출근하셨을 시간이었다!)

분주히 밥상이 휘어지는 상을 차리고계신 어머니..

이게 멀마만이란 말인가.. 아침밥이라니..

술에 쩔어 시체가 되어있을 뚱도 일찍 일어나...

아침 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허탈한 웃음...

잘 다녀오겠노라며... 휴가나와서 보자는 어색한 말...

(평소라면, 나를 슬쩍보고 다시 잠들어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돈을

꿔달라고 했겠지..)

 

이쯤에서 우리 뚱을 소개할까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바로 내 동생이다.

장문철 (요셉) 성당에선 일명 ’형님’으로도 통한다.

어릴때 포동포동했던 살들이 계기가되어..

난 장난 삼아.. 동생을 ’뚱’이라고 부르게되었고...

지금까지.. 이름보다 뚱이란 애칭을 애용한다.

지금의 ’뚱’의 의미는 아마도.. 나에게 뚱~ 하기 때문일꺼다...

내가 아무리 찝쩍거려도.. 그는 날 무시한다. 아주 처참히...

너무도 훌쩍 커져버린 키처럼 난 깔아보는 뚱의 모습...

나의 발악은 그 앞에서선.. 이웃집개의 X랄이 된다.

그래도 듬직한 면이 있는 녀석이다.. 힘도 쌔고..(그래도 누나라구.. 호홋)   

참고로.. 내 별명은 미친이었다..마지막에 X가 생략된..

그리고.. 교육수준이 높아짐에따라...

"크레이지 워먼" 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지만...

호칭으로선 너무 긴 감이 있어서...

지금은 "엽엽걸"로 불리우고 있는 중이다...

이젠 당분단 불러주는 이 없는 호칭이지만...

뚱이 멀리서... "누나!" 하고 부른다면 난 대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엽엽거~얼"하구 불러야.. "왜!" 하구 신경질 내면서 대답하겠지..

 

며칠전부터.. 그 자식은 다시 사랑한단말을 남용하고 있었다...

뚱이 군입대를 무기로 돈을 요구할때...

아주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가 돈을 던져 줄 때..

(내가 왜 돈을 던졌을까?? 얼마주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후회된당!)

더욱 남발하던 특유한 억양의 사랑한단 말....

 

그리고.. 매일 친구와 술을 먹느라.. 뚱은 늘 새벽에야 들어왔다..

그래서.. 아침에 내가 인기척을 내면.. 슬적 내밀던 얼굴...

그것이 최근에 본 얼굴의 대부분이었다..

술의 힘은 정말 위대해서.. 뚱은 많이 늙어져 버렸다..

내 느낌이겠지만.. 뚱은 삵아져버렸다.. 흐흑!!!!

난 아침에 어떻게 헤어져야할지..

그 어색함을 어떻게 모면해야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그냥 나가기엔 정말 무엇한 그런 날이니까..

실컷 욕이나 해줄까? 잘다녀오라구?

아님.. ’뚱~~~~~~~!!!" 하구 애교나 떨어볼까? 날 내던진데도...

 

나의 시나리오를 채 완성하기도 전에...

뚱이 밥을 먹다가 나에게 말했다...

"흰머리나 좀 뽑아줘~!"

아앗!!! 흰머리??? 이런 돌발적 행동은 예상한적이 없다...

그러나.. 난 찝게를 들고.. 뽑기 시작했지만...

그때부터.. 내 기분이 센치해 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군입대하는날 동생의 흰머리를 뽑는 누나의 심정을..

만약 뚱이 돈을 요구 했더라면.. 난 기분땜에 달라는 데로 다 주었을 것이다.

아버진.. 밥먹는데.. 불편하라구 그만 두라했지만...

뚱은 그냥 하라고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흰머리가 많은 거야???

난 내가 뽑은 흰머리만큼... 기분이 우울해졌다...

글구... 내방으로 와서 울기 시작했다...

참아왔던거라.. 막 터져나왔다....

근데.. 뚱이 지나 가다 얼핏 보고는 오버해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이씨... 왜 울어~ 아이씨... 우네...? 빨리 써져...!"

(*여기서 잠깐... ’써져’는 뚱이쓰는 ’꺼져’의 완곡한 표현이다)

"빨리 써져.. 써져! 아이씨.. 써져!"

난 얼릉 휴지로 눈물을 닦고 떠밀리 듯 현관으로 나왔다...

난 목이메여.. 아무말도 못하고.. 손만 내리 흔들었다..

그때였다.. 뚱이 날 떠밀고.. 문을 닫는 순간..

뚱이 보여주었던.. 쓸쓸한 표정...

우리 두남매는 끝까지 아무말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표정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옛날 아주 먼 옛날 내가 뚱을 울릴 힘이 있던 시절...

나를 피해 도망가던 뚱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내가 때릴 려고 뻗쳐올린 손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짓던 그 표정을..

난 거의 10년도 훨씬 넘은 지금 이 순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걸까? 그것도 내 앞에서...

마지막으로 동생같은 표정으로...

"누나.. 잘 갔다올께..." 하는 그 표정...

출근 하면서 내내울었다..

책상에 앉아서도.. 연신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평소에 잘할 껄..

누나 노릇도 제대로 못한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집에오니까.. 뚱이 두고간 동전이 책상위에 놓여있다..

’앗싸~ 낼 출근할때 우유사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괜리시 창밖에서 불어온...

서늘한 바람에.. 뚱 생각이났다...

그리고.. 내 이불을 뚱이 자던 자리에 깔았다...

’그 자식.. 낮설은 곳에서.. 잠이나 제대로 자고 있을까?’

근데.. 순간 쓸때없는 걱정을 하고 있단 느낌이 든다.

녀석.. 내가 걱정하는 것을 보란듯이 코까지 골면서 자고있겠지..

그런 녀석이다.. 뚱은...

내가 지나치게 센치해졌군...

나도 잠을 청한다..

어제까지.. 뚱이 술에 쩔어 잠들던 그곳에서...

 

"뚜~웅! 건강하게 잘 있다가..

휴가때 나오면... 돈 많이 줄께..(BUT..)

나도 사랑해!""

쪽~

뚱.. 한 뚱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오늘 밤엔 생전 첨으로 뚱의 꿈을 꿀 것 같다..

(그러나 꾸지 않았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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