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관련 자료실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30 ㅣ No.87

[창간 86주년 특집 설문조사]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공의회 정신 구현, 절대적 과제”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을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의 절대적인 사목적 과제로 지적했다.

이들은 공의회가 열린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서 공의회 정신이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공의회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새 교황이 ‘세속주의 및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와 함께 공의회 가르침 구현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톨릭신문이 창간 86주년을 맞아 실시한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났다. 조사는 한국교회 내 신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15개 보기 문항 중 2개를 선택하고 이유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실시됐다.

이러한 결과는, 새 교황의 과제는 곧 보편교회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은 오늘날 교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응답에서 “세속주의와 상대주의는 현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과 과제”라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재위 기간 동안 교회가 ‘오늘의 시대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올바로 계승할 수 있도록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사에서는 또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 ‘교황청 쇄신’이 각각 3, 4위로 나타났고, ‘생명·가정 윤리 문제’,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 ‘직무 사제직 문제’ 등이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31일, 박영호 기자]


[창간86주년 특집 설문조사]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조사의 배경 · 취지 및 주요 문항 구성

교회 쇄신의 근본인 ‘공의회 정신 구현’ 꾸준히 요청


가톨릭신문사는 지난 십수년 동안 교회가 발견한, 교회가 직면한 위기와 도전들을 염두에 두면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을 성찰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새 교황의 과제는 곧 보편교회의 과제이며, 따라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인류가 풀어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편교회의 일원인 한국교회의 과제 역시 이러한 보편교회의 과제 및 그 해법에 대한 심사숙고를 통해 해소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신문은 새 교황 프란치스코의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한국교회의 신학자 100인에게 물었다.


▨ 새 교황 향한 기대, 오랜 쇄신에의 요청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출, 그 후 8년만에 이어진 역사상 초유의 교황 사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40주년과 개막 50주년을 포함하는 이 시기의 세계와 교회는 산업혁명과 냉전의 종식을 능가하는 격변의 시기였다. 그 안에서 교회는 수다한 안팎의 도전과 과제에 직면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세계의 창을 열고 현대 세계와 문화에 대한 적응을 모토로 자기 성찰과 쇄신에 나섰다면, 공의회 정신의 실현을 전제로 새로운 천년기를 열고 새로운 복음화를 지향하는 교회는 이제 쇄신의 긴급성의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어 있는 듯하다.

교황 사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유럽이 아닌 라틴 아메리카 출신 새 교황이 탄생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표방하며, 승용차가 아니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빈민들과 친구처럼 사귄 새 교황을 보면서 세계와 교회는 성직자 성 추행, 교황청의 부패 혐의 등으로 훼손된 가톨릭교회의 이미지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대는 그만큼 새로운 면모의 교회에 대한 요청이 누적돼 왔음을 반증하며, 교황의 사임이 시사하듯 그 요청은 매우 긴급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지난 2월 사임을 발표하면서 “이 시대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몸과 마음의 힘’, 즉 리더십의 역동성이 젊음이나 육체적 활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대응할 수 있는, 구태나 경직된 사고에 매이지 않고 교회에 새로운 면모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참신함에 대한 요청을 오히려 더욱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05년 ‘베네딕토 16세의 과제’ 조사

가톨릭신문은 2005년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선출되기 직전, 새 교황의 과제에 대해 역시 한국교회의 신학자 10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2개씩의 복수 응답을 요청한 이 조사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과제는 2가지이다.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 문제의 해결과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각각 40명이 지적했다(<표> 참조).

전자의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지닌 서구사회와 문화 안에서 더 이상 그리스도교 신앙과 낙태, 안락사, 동성애 등의 윤리적 가르침이 수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인한다. 이는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있었던 가정과 생명 문제에 대한 사목적 대안의 필요성, 즉 ‘생명윤리 문제’(37명)에 대한 대응과 긴밀한 관련성을 지닌다.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는 특별히 그리스도교가 소수인 지역에서 시급하게 지적되는 문제이다. 더욱이 ‘말씀’보다는 ‘증거’에 더 효과적으로 응답하는 현대인들의 심성과 함께 개방적인 ‘대화’와 삶을 통한 ‘증거’는 점점 더 강조되어왔다.

전체 응답자 중에서 20명이 지적한 ‘주교단의 단체성과 교회 통치’의 문제는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특별히 제삼세계 즉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의 지역교회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지역교회의 보다 폭넓은 자율성의 요구와 관련된다.

22명이 지적한 ‘직무 사제직의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사제와 사제 성소의 부족에서 비롯된, 직무 사제직에 대한 규정 완화 요구와 관련된다. 즉, 부족한 사제 문제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서구교회 일각에서는 사제 독신제 규정의 완화와 여성 사제의 가능성을 꾸준하게 주장해왔다. 이는 지역을 막론하고 서구교회들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 성직자들의 아동 성 추행 문제와 여권 운동가들의 주장과 맞물려 첨예한 논쟁을 야기해왔다.

과도한 성직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평신도 운동과 교회 생활’에 대해서도 24명이 주요 과제로 지적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친교의 교회론에 따라, 평신도의 교회 내 위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으며, 현실적으로도 평신도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양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도 크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서 많은 주교와 사제들은 이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설문 문항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8명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철저한 구현’을 지적, 문항에 포함됐을 경우 훨씬 더 많은 응답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응답한 신학자들은 공의회가 폐막된지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의회 정신이 실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공의회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과제

이번 조사의 취지와 문항은 베네딕토 교황의 과제를 물었던 8년 전의 설문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새롭게 추가되거나 세분화돼 총 15개로 구성됐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교황청의 쇄신’ 문제이다. 이미 세속 언론 보도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듯이, 교황청의 금융 재정 운용에 있어서의 부패 혐의, 교황청 내부 자료의 불법적인 유출과 이를 둘러싼 논란 등은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다. 이는 곧 교황청 고위 관리들의 인적 청산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이전 조사에서 문항에 포함되지 않았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은 이번 조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을 이끌어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 보편교회는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았다. 새로운 복음화나 ‘신앙의 해’의 큰 축을 이루는 것도 역시 공의회 정신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문항에 포함된 대부분의 과제들은 결국 ‘공의회 정신의 철저한 구현’이라는 한 가지 명제로 귀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평생의 사목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가장 중요한 ‘새로운 복음화’의 6개 영역 중 하나이다. 공의회 정신의 구현이 교회 쇄신의 근본 정신이듯, ‘새로운 복음화’는 신앙 회복, 교회 내적·외적 복음화의 모든 요소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및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성직자와 남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그 몫이 평가절하되어온 교회 계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청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교회 내 인식 관련 의혹은, 서구사회에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여성 사제직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와 연루돼 초미의 관심사이다.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은 특별히 새 교황 프란치스코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교황명을 통해 중세 교회의 부패상을 넘어설 교회 개혁의 의지와 함께 그 방법으로서 생태학적 접근법을 시사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생태신학의 발전을 통해, 지구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접근의 새로운 차원이 이미 열려 있다.

이전 조사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지적된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지역교회의 자율성 확보’ 문제는 해묵은 요청이지만, 이제 보다 명백하게, ‘단체성’에 대한 이해가 교회의 종교적 권위의 분권화를 지시하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새 교황이 제삼세계에서 탄생함으로써 지역교회의 중요성과 자율성에 대한 전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생명·가정 윤리 문제’ 역시 이전 조사에서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이전 조사에서는 이른바 ‘죽음의 문화’에 대한 ‘생명의 문화’ 건설을 위한 방법론의 모색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오늘날 이 문제는 크게 두 가지 문제 의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왜 가톨릭신자들조차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는가? 둘째, 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변화의 가능성은 없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 참여의 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교리와 윤리의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면에서 이전 교황들의 입장에서 나타난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노선을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보편교회 전반에서 신자들이 교회 가르침과 상이한 신앙과 삶의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분명히 간과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경제 이념의 확산과 세계화는 국가내, 국가간 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켜왔다.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는 베네딕토 교황 당시보다도 더 그 구조적 악이 심화됐고, 따라서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교회의 사회교리적인 입장에서 그 해결을 사목적 과제로 삼고 있다.


■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당시 설문조사 문항 · 결과 (2005년 4월)

1. 주교단의 단체성과 교회 통치(20명)
2.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40명)
3.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40명)
4. 직무 사제직의 문제(22명)
5. 생명윤리 문제(37명)
6. 평신도 운동과 교회 생활(24명)
7. 기타 : 교회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구현(8명)



▲ 19일 즉위식에서 한 장애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교황 프란치스코. 새 교황을 맞은 교회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등 여러 사목과제를 안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31일, 박영호 기자]
 

[창간86주년 특집 설문조사]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조사 결과 종합

“세속주의, 교회 정체성 위협 … 기본 진리 수호 우선”


가톨릭신문은 창간 86주년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최근 제266대 교황의 새로운 행보에 발맞춰, ‘새로운 복음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과정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조사 대상자는 전국 각 가톨릭대학 교수진을 비롯해 신학과 철학, 종교학, 교회법 등 교회 유관 학문을 전공한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학자 및 연구자들(이하 신학자로 통칭)이다. 대상은 총 100명이며,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 등 총 15개 문항으로 나눠 제시됐다.

특히 이번 조사는 교회학문 연구는 물론 다양한 사목 현장에서 활동 중인 신학자들의 의견을 총체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각자 항목 중 2가지씩을 선택하고 그 배경과 대안 등에 대한 의견을 간략하게 기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교회 신학자들은 현대교회는 교회 본질인 ‘증거하는 삶’을 구현하기 위해 기본 진리를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에 보다 큰 힘을 실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또 신학자들은 비유럽권 교황이 선출됐다는 것도 교회 내 여러 가지 변화와 쇄신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의 하나라고 밝히고, 현 교황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세상 밖으로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부터 쇄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10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에서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18.5%)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13.5%)이 새 교황이 앞장서 실현해야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12%), ‘교황청 쇄신’(10%)도 각각 실현에 박차를 가해야할 필수 과제로 꼽혔다. 뒤이어 낙태와 피임, 동성애 등을 포함하는 ‘생명·가정 윤리 문제’(8%),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7%),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6%), 사제독신제 등을 포함한 ‘직무 사제직 문제’(6%) 등이 주요 과제로 순위를 올렸다.

반면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에 이어 ‘종교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 신학자 수는 5%를 밑돌았다.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교회 안에서의 여성 역할’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이는 각각 2명(1%)에 머물렀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는 응답자가 없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각각의 사목적 과제들을 ‘새로운 복음화’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 등이 관심을 모은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내적 쇄신, 특히 사제들의 내적 쇄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지적됐다.

지난 해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이병호 주교(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전주교구장)는 “‘새로운 복음화’는 온 세계교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의 다른 주제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한 문제”라며 “그런데 정작 무엇이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에 관한 반성은 없이 말머리만 ‘새로운 복음화’를 옮겨 쓰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처

이번 조사에서 신학자들은 교회 뿐 아니라 세계 전반이 처한 위기 상황은 현세지향적인 삶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의 혼돈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세속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 등은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말이다.

구요비 신부(서울 포이동본당 주임)는 “새 교황님은 예수회의 영성과 신학사상을 간직하시기에 이 시대의 사조들에 대한 대처에서 새롭게 응답하실 수 있다고 보여진다”며 “선출 이후 특별히 복음적 청빈의 정신과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확인시켜 주신다”고 전했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에 관해 신학자들은, 공의회가 폐막한 지도 40년이 지났지만 ‘세상을 향한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의 모습’은 여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이 공의회 정신을 올바로 이어갈 때, 교회는 가장 본질적이고 원천적인 자세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총장)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은 ‘새로운 복음화’가 지향하는 핵심을 담고 있다”며 “공의회 정신을 살아가는 대안과 방향이 새로운 열의와 방법, 표현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복음화’”라고 덧붙였다. 전원 신부(서울 제기동본당 주임)도 “문헌만 난무하는 현대교회는 생명이 없다”며 “공의회 문헌에 나타난 실천적 과제들을 하나씩 지역교회가 실현하도록 역량을 모아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 빈곤과 세계화의 문제

빈곤과 세계화의 악순환은 현대사회가 풀어야할 대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 항목을 시급한 사목적 과제로 선택한 신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교황을 맞이한 것은 제3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새로운 기회라고 전하고, 불의한 국제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는 “특히 이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며 “새 교황께서는 각 지역교회들이 사랑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방안과 함께 교회가 세상과 연대를 해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 교황청 쇄신

이번 설문에서는 교황청이 교회 쇄신의 표상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새 교황 선출과 즉위에 앞서 전 세계의 시선은 교황청 비리 문제 등에 더욱 집중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근덕 신부(수원 화서동본당 주임)는 “교황청 비리 문제가 일반 언론에 공공연하게 보도되면서 성직자들의 도덕성 실추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선용 신부(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는 “교황청의 쇄신은 교회 밖의 시각에서 보면 가톨릭교회 전체 쇄신의 상징으로 이해된다”며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박물관’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체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쇄신의 상징은 보다 젊고 넓고, 생명력 넘치는 교회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생명·가정 윤리 문제

설문에 응답한 신학자들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대표적인 폐해로 생명·가정 윤리의 파괴를 꼽는데 뜻을 같이 했다. 특히 이용훈 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수원교구장)는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은 교회와 세상을 지키는 본질적인 요소이자, 사제·수도자 성소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며 “보다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찾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정우 신부(가톨릭대 교수)도 “다만 현대인들이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와 표현, 신앙적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고, 자연법과 양심에 따르는 삶이 충만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올바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타 응답들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의 중요성과 평신도들의 자율적인 역량을 지원하는 일도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또한 김항섭 교수(한신대 종교학과)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교회 활력과 건전성은 평신도들이 얼마나 뚜렷한 자기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며 “교회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일반신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나 장치를 마련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은 인류 미래와 직결하는 중요한 과제로 손꼽혔다. 동방교회와 같이 독신과 기혼사제 제도를 병행하는 방식, 수녀회 관구장 및 총장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사제직 도입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 필요성도 조심스럽게 제안됐다. 아울러,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종신부제직 등에 대한 철저한 신학적 연구와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안됐다.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와 관련해 유흥식 주교(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대전교구장)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삶과 활동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며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선교 방법으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명확하게 제시하셨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31일, 주정아 기자]


1,50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