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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밀알 (요한 1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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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3-18 ㅣ No.91

 

[사순 제5주일]밀알 (요한 12,20-33)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고 한다. (예레 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고 한다. (히브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며,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말씀하신다. (요한 12,20-33)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3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32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사순 제5주일 제1독서(예레31,31~34)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31)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과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33)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34)  

 

힐키야의 아들 '예레이야'의 이름 뜻은 '주님께서 들어 높이실 것이다' 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절박한 시대의 산 증인으로 살다 간 인물이다. 그는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여 도성을 함락시키고, 주님의 집인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유다의 수많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것도 목격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민족의 멸망과 더불어 제기된 신학적 문제들을 부둥켜 안고 고뇌한다.

 

다른 예언서들의 경우에는 보통 예언자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말씀만 전할 뿐, 그 말씀 안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 고뇌를 피력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레미야서는 예언자가 전하는 말씀 안에 자신의 고뇌와 걱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예레미야는 ① 백성에게 버림받은 하느님의 고통을 전해야 했고,  ② 그분의 말씀을 전하다가 자신이 박해를 당해야 했으며, ③ 하느님께 벌을 받고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이 다름 아닌 자신의 동족이었기 때문에 괴로워했다.

 

다른 한편, 예레미야는 고통의 예언자로만 한정할 수 없다.  그는 오래지 않아 유배가 끝나 예루살렘이 복구되고 성전이 재건되며, 다윗 왕조가 다시 일어서리라는 희망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초를 놓은 인물이다.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서 30장 이전의 신탁이 '뽑고 무너뜨리고 멸하고 헐어버리는' '파괴를 통한 징벌'에 집중되지만, 예레미아서 31~33장에서는 파괴 다음에 따라오는 하느님 백성과 땅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예레미야서 30~31장의 신탁들은 하느님 백성의 회복을 예고한다. 그날이 오면, 주님께서 흩어져 박해를 받고 있는 당신 백성들을 다시 시온으로 불러들이시어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으실 것이다. 

새 계약은 시나이 계약과 달리 돌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지고, 백성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게 될 것이다(예레31,33~34). 

새 계약은 예수님이 세우신 성찬(루카22,19~20; 1코린11,25~26)과 연결되면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성취될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31)

새 계약의 대상인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은 계약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통칭하는 표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세우신 새 계약의 대상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약의 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새 계약''새'에 해당하는 '하다샤'(hadashah)는 이전에 있던 어떤 것을 수선하는 측면의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는 새 계약이란 구약 시대의 선민이 결코 접해보지 못했던 계약이다. 그리고 본절에서 계약을 '맺다'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는 원래 '잘라 내다', 자르다'(cut off)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카라트'(karath)이다.

 

이것은 고대 근동 및 이스라엘 사회에서 행해졌던 계약 체결식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는 단어이다. 

당시 계약을 맺을 때, 계약 당사자들은 칼로 동물을 둘로 쪼개어 피를 흘린 다음, 그 쪼갠 사체 두 쪽을 양쪽으로 놓고, 그 사이를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의식을 행하였다. 

이같은 의식을 이행한 것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배반하는 자는 그 쪼개진 동물처럼 쪼개질 것이라는 것을 맹세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예레34,18참조).  이것 때문에 구약의 계약을 '피로 세워 생명을 걸고 지키는 약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계약을 맺는다(세우다)' 라는 표현은 '계약을 가르다' 직역되는 '카라트 베리트'(karath berith)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새 계약(신약)도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자신의 몸을 계약의 증표로 쪼갰다고 볼 수 있다.  

그 몸을 통해 흘러 나온 붉은 피는 계약을 효력있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 효력이란 죄사함의 은총을 말한다(마태26,28; 히브9,22.28). 이것이 바로 본절에 제시된 바,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 위에 세워질 새 계약의 성격과 긴밀하게 연관을 갖는다.

이처럼 본절은 장차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이루어질 신약 시대의 새 계약의 지평을 여는 예언으로서 구원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과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33)

본절은 옛 계약의 불완전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손을 잡고' 해당하는 '헤헤지키 베야담'(heheziqi beyadam)과거 선민을 출애굽시키는 과정 가운데, 하느님께서 순전히 당신의 주권으로 그 일을 이루셨음을 강조한다. 하느님의 베푸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내가 그들의 손을 강하게 붙잡고'라는 의미가 된다(창세19,16; 탈출4,13~16; 5,21~23; 6,1; 14,10~25 참조). 

옛 계약은 탈출기 19~24장으로 대표되는데, 그들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흘렸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주 하느님을 배반하는 거역을 보이고 말았다(탈출32,1~35).

 

본문에서 '내가'에 해당하는 '아노키'(anoki)가 사용되어 주어를 강조하고 있다. 즉 선민이 손을 강하게 붙들어 당신의 절대 주권에 입각해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약속을 주시며 그들과 계약을 체결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인데도'에 해당하는 '빠알르티'(baalthi)의 원형 '빠알'(baal)엄격히 말하면 '주인이 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주인이 된다는 것은 결혼 관계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빠알'(baal)에는 결혼 관계를 통해 주인의 신분을 갖게 된 '남편'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탈출21,22).

따라서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결혼 관계 속에서 남편의 아내가 되든, 주인의 하인이 되든, 선민과 그 계약의 대상 하느님과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맹 관계, 다시 말해서 선민은 결코 하느님을 배반해서는 안되는 신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33)

옛 계약과 크게 대조되는 새 계약의 특징은 한마디로 내면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그 계약의 당사자를 하느님 대전에 온전하게 세우는 것이다.

옛 계약은 외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먼저 계약의 내용을 석판에 기록하였다(탈출31,18; 34,28). 

둘째로 외적인 행위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옛 계약은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20,17)는 명령과 네 이웃을 마음 속으로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위19,17.18)등의 내면적 명령도 포함된다.

 

옛 계약의 산물인 율법이 내적인 거룩함과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계약 시대에는 하느님의 법이 선민의 마음 속에 새겨져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작용하여 사람의 근본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오순절 사건(사도행전 2장) 이전 까지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새 계약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이것이다.  하느님의 법을 사람의 마음 속에 기록하면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지키게 하신다는 것성령의 전면적인 활동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심으로써 새 계약을 세우셨고, 이것을 믿는 자를 성령의 도유로 인호를 박아 주시며, 계약을 그와 더불어 이루어 가시는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사도1,4.5; 2,1~4) 새 계약이 계약 당사자들 안에서 역동적으로 성취되기에 이른 것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새 계약의 당사자들은 결코 율법을 무용한 것이나 폐기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이를 적극적으로 행하며 굳게 지키는 것이다(로마3,31). 


 

이것은 인간적 의지와 결단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옛 본성을 부인하는 가운데 내적으로 주어진 성령의 능력을 따라 행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로마8,4; 갈라5,16.22.23).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새 계약을 그들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였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2코린3,3)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33)

본문은 일차적으로 바빌론 포로 귀환이후 선민들이 하느님과 긴밀하게 교제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이러한 예언은 사실 옛 계약 때에도 하느님께서 선민에게 주신 것이었다(탈출6,7).

그러나 동일한 약속을 새 계약의 당사자들에게 다시 새롭게 주시는 것은 옛 계약 시대의 백성이 그 약속의 축복을 완전하게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느님께서는 옛 계약의 당사자들이 계약 준수에 실패한 것을 다시금 새 계약의 당사자에게 주심으로써, 애초에 계약 백성을 통해 이 세상 가운데서 드러내고자 하셨던 원래 목적을 반드시 완수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계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의 법을 통해 하느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그 계약 백성의 진정한 하느님이 되실 것이고, 또한 그들은 마음으로 하느님께 순종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통해 자신들이 하느님의 통치 아래 있는 하느님의 백성임을 나타낼 것이다(1베드1,14.15).

본문에서 '나의 백성'에 해당하는 '리 레암'(lileam)은 문자적으로 '내게 속한 백성으로'라는 의미이다. 이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 자기의 것인 양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오직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돌 것이기 때문이다.'(34)

본절은 일차적으로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 선민들이 하느님께 대한 영적 지식이 진보할 것임을 예언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새 계약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바탕으로 강림하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로마8,14)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목자과 교사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깊은 진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구원의 진정한 목적을 알게 하며,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선포하고 교육함으로써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에페4,11.12).

 

여기서 '알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예데우'(yedeu)의 원형 '야다으'(yada)사실 관계에 대한 지적인 앎, 눈에 보이는 현상과 관련한 피상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앎이나 생생하고 확실한 앎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창세4,1; 판관3,1 참조).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아는 것 역시 단순한 지적인 앎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여 하느님을 더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34)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에 선민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하느님과 화해하게 될 것을 예언한 내용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새 계약의 기초를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희생을 전제로 한 예언이다. 

하느님께서 새 계약의 당사자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다시 이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구원 사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인류에 대한 죄악을 담당하게 하고 그 죄악을 지고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죽게 하심으로, 속죄의 역사(役事)를 이루셨다. 

그리고 그의 대속적 죽음을 믿는 자들의 죄를 영원히 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희생의 속죄에 입각해 그들을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로마3,23~24; 5,12~19).


본절에서 하느님께서 사하신다는 그들의 '죄'를 나타내는 단어 '라아오남'(laaonam)의 원형 '아온'(aon)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은총의 결핍 상태인 원죄를 지칭하는 단어로서, 본문이 원죄를 제거한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사순 제5주일 복음(요한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4ㄴ)

 

요한 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즉 당신 자신의 대속(代贖)적 죽음이 갖는 의미를 밝히기 위해 이러한 관용구를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이 가져오게 될 놀라운 결과에 대해 씨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알게 하신다.

 

여기서 '맺는다'에 해당하는 '페레이'(pherei; it produces; it brings forth)'페로'(phero)3인칭 단수 현재 시제로서 땅에 떨어져 죽은 씨앗에서 열매 맺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 세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 되는데, 그것은 '많은 열매'로 언급된 영혼 구원의 역사이다.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유와 평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 이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또한 '열매'로 번역된 '카르폰'(karpon; fruit)'카르포스'(karpos)의 단수 목적격인데, 나무의 열매나 자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결실', '산물'이라는 뜻으로도 좋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 '페리'(pheri)의 번역어로 나타난다. '페리''자손'을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는 '행위의 열매'를 나타낸다 (예레6,19; 호세10,13).

그래서 여기서 '많은 열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으로써 온 세상에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게 될 것이라는 뜻이 전달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요한11,52).

 

 

그리고 또한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삶을 본받아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갈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全)인격을 본받게 되기에, 그들을 통해서 일어날 새로운 변화들이 기대된다(마태5,13~16).

 

 

3월 25일 복음말씀[사순 제5주일]

 

오늘 복음에 예수님을 찾아온 그리스 사람들은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며 예루살렘 순례의 여정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좀 더 알고 싶어서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 사도에게 부탁합니다. 그들을 만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 높이 들려 돌아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모든 이의 구원을 이루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수난의 때는 영광의 때가 됩니다. 하늘의 천사도 이를 보증하며 알려 줍니다. 이 세상의 죄악이 심판을 받으며 악의 우두머리가 쫓겨날 때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가슴에 생명과 사랑의 법, 용서의 법을 새겨 주시는 때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누어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생명을 전해 주려고 헌신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삶은 자신의 전 인생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봉헌하는 길에 머뭅니다. 우리는 날마다 희생의 씨앗을 주님의 포도밭에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섬기며 그분을 닮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한 걸음 내딛을 용기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서가 전하는 이 내용을 흔히 ‘새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었던 계명이 돌판에 적힌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 돌판이 아닌 마음에 법을 새겨 주기 때문입니다.

이 새 계약이 주는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옛 계약이 계명을 지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새 계약에서는 죄의 용서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구원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죄의 용서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다가온 수난의 내용과 함께 예수님의 죽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밀알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고, 세상에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 것이다”는 말씀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희생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아버지 이때를 벗아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이 부분은 공관복음에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기도하셨던 부분입니다(마르 14,35).

결국 모든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고뇌를 겪으셨음을 전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기도에서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하늘에서 응답의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합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 복음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을 통해 저자는 두 가지의 사실을 나타냅니다. 시간적으로 하느님의 이름은 이미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처럼 설명됩니다. 하지만 다시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것은 미래의 사건을 지시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다시 일어날, 다시 말하면 미래에 완성되리라는 것은 하느님 구원 역사의 긴장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완성에 이를 구원의 시간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내용적으로 하느님을 이미 영광스럽게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입니다. 지상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파견된 사명은 완성될 것입니다.

사순시기는 역설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과 영광, 고난과 영원한 생명, 심판과 용서.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표현들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사순시기 안에서 듣고 묵상합니다. 합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될 법하지 않은 일들입니다. 하지만 체험 안에서는 가능한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예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때로 행동하기를, 실천하기를 주저합니다. ‘정말?’이라고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전히 제 자리에 선채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한 걸음 내딛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용기는 하느님께서 참되시다는, 약속을 지키신다는 신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전례에서 죄를 용서하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예수님의 값진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 허규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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