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구슬처럼 고운 두아이를 잃은 아기엄마의 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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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croudy] 쪽지 캡슐

1999-09-20 ㅣ No.1026

씨랜드 사건으로 두 아이를 잃은 엄마의 시랍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 무거운 글을 싣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마도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들은 더 슬퍼지고 우울해지겠지요. 우리는 그 분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나마 그 슬픔을 반으로 나누었으면 합니다. 해가 바뀌지도 않은 지금, 벌써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하기만 한 것도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군요. 아직 제대로 된 이유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이 시를 읽고 아이들을 기억하며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마 그분들에게는 큰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 놀수 있는 세상은 너무도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일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럼......... 여섯 살이잖니. 두 손으로 셈하기에도 네 개나 남은 나이인데 엄마와 3 더하기 3은 6 아직 일곱 여덟 셈하는 놀이도 끝나지 않았는데 하룻밤만 잔다더니 여직 그 곳에서 놀고 있니. 호숫물이 맑아 바닥에 뒹구는 조약돌이 말갛게 보이듯 네 눈동자도 그리 맑았지. 너의 향긋한 냄새는 너의 침대 베갯닛에도 너의 꼬꼬마 인형의 때묻은 뺨에도 그리고 지난번 소풍 때 찍었던 사진 속의 네 미소에도 남아 있는데 너의 보송보송한 얼굴과 너의 고운 음성은 어디에 두었니. 왜 그리 꼭꼭 숨었니. 아이야! 네가 좋아하던 하늘나라에 누가 있더냐. 너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주는 이 엄마 말고 누가 있더냐. 너를 반겨 안아 주는 이 할머니더냐, 할아버지더냐. 그래, 아이야 엄마없다 울지 말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그분 손 놓지 말고 꼭 잡고 있으렴. 장난기 많아 잠시도 가만 못 있는 아이야. 두고 온 세상 궁금하여 무릎 꿇고 내려다보겠지. 너희들 맑은 눈으로 이 세상 구석구석 보다가 무심한 어른들 욕심 많은 어른들 심술궂은 어른들이 만들어 둔 웅덩이가 있거든 아이야, 너희들이 천사되어 꿈 속에서 일깨워 주려 마. 다시는 다시는 이런 슬픔이 없도록 말이다. 아이야, 천사의 날갯짓을 하고 오늘 밤 또 내일 밤 잠 못 들어 뒤척이는 엄마 곁에 향긋한 너의 향기 뿌리며 오지 않겠니. 내 그 때라도 너의 보들보들한 뺨에 내 얼굴을 비비고 너의 은행잎 같은 손을 내 눈에 대어 흐르는 눈물을 막아 보련만. 그렇게나마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내 질긴 목숨 그래도 어이어이 이어 보련만. 아이야, 오늘도 이 엄마는 너를 안았던 가슴이 너무 허전해 너를 부르며 피를 토한다. 보고 싶은 아이야. 귀여운 우리 아가야. 1999년 7월 4일밤 두 딸의 엄마 박 경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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