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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詩] 여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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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07-12 ㅣ No.2952

지난 주 10시 미사 후 레지오 훈화 시간 때 함께 나누었던 시입니다.

무더운 여름, 조금은 무기력해지고 짜증나기 쉬운 계절이지만, 오히려 여러 형제 자매님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 띄웁니다.

그리고 이한숙 데레사 자매님, 시를 늦게 올려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여름 편지

 

1

움직이지 않아도

태양이 못 견디게 만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서로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기쁨으로 타오르는

작은 햇덩이가 되자고 했지?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의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했지?

 

바닷가에 나가지 않아도

파도소리가 마음을 흔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탁 트인 희망과 용서로

매일을 출렁이는

작은 바다가 되자고 했지?

 

여름을 좋아해서

여름을 닮아가는 초록빛 친구야

멀리 떠나지 않고서도

삶을 즐기는 법을 너는 알고 있구나

너의 싱싱한 기쁨으로

나를 더욱 살고 싶게 만드는

그윽한 눈빛의 고마운 친구야

 

2

잔디밭에 떨어진

백합 한 송이

가슴이 작은 새가

살짝 흘리고 간

하얀 깃털 한 개

이들을 내려다보는

느티나무의 미소

그리고

내 마음의 하늘에 떠다니는

그리움의 흰구름 한 조각에

삶이 뜨겁네

 

3

바람 한 점 머물지 않고

몸도 마음도

땡볕에 타는 여름

땀에 절어

소금기는 다 빠져버린

나의 무기력한 일상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매미, 쓰르라미는

참 오래도 우는구나

너무 힘들어 쉬고 있는 나의 의무적인 기도를

즐겁게 즐겁게

대신 노래해주는구나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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