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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배우고 첫 성탄 카드 만든 시메온학교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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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성당 [ahyon] 쪽지 캡슐

2013-12-17 ㅣ No.5

 
 
▲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카드들.
 

 "여보, 세해 복만 받드시오. 오해도 건강하새요."

 "신부님, 성탄 축하나다. 우리 이곳셋 공부하게 해주섰 감사함리다."

 "사랑하는 아들, 성타 마지하에(맞이하여). 아들아. 하느님 감사들니다."

 손에 연필을 꼭 쥐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어르신들 눈빛이 진지하다. 받침이 바로 생각나지 않는 글자는 우선 자음과 모음을 적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지우개로 지웠다가 연필로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연습장에 편지를 미리 써놓고 그대로 옮겨 적는 학생도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김성자(임마쿨라타, 한국여성생활연구원 부원장) 교장이 돌아다니면서 "남편에게 쓰는 건 틀리지 말고 잘 쓰셔야 한다"고 하니,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경기도에서 1시간 넘는 거리를 통학하며 한글을 배우러 오는 김영자(가명, 59)씨는 남편에게 첫 성탄 카드를 쓰고 성탄의 기쁨을 나눴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한 김씨는 결혼한 지 36년 만에 한글을 배웠다.

 뒤늦게 까막눈에서 벗어나

 "한글을 모르니깐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많더라고요. 늘 자신이 없었는데 한글을 알아가는 기쁨이 생기면서 자신감도 함께 얻었습니다."

 김씨는 "처음 가족들이 모르게 다녔는데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응원해주고 있다"며 "한글교육을 받으면서 신앙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비신자 교리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50살 넘은 아들에게 성탄 카드를 쓴 김 모니카(75)씨는 "성경을 읽을 줄 몰라 반모임에 나가면 항상 주눅이 들었다"며 "'이건 아니다' 싶어 시메온학교를 다니게 됐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이름 석 자만 쓰고 읽을 줄 알았던 김씨는 성경을 읽을 줄 아는 눈을 성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성경이 눈에 들어오는 게 신기하고 기쁘다"면서 "배우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6ㆍ25전쟁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장사하는 동안 살림을 꾸려야 했다. 학교에 다닌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20년 동안 식복사로 일한 김 데레사(73)씨는 친구 소개로 시메온학교를 알게 됐다. 다리 부상으로 초등학교 1학년을 한 달만 다니고, 그 후론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가정형편이 녹록지 않아 이른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한글을 배운 것도 기쁘지만 워낙 사람 사귀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이었는데 이곳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돼 기쁘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나처럼 배움의 시기를 놓쳐 한글을 배우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면서도 "근데 하나를 기억하면 다른 하나를 자꾸 까먹어서 큰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 헬레나(75)씨도 기쁘기는 마찬가지. "평소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도 엄두를 못 냈는데, 이제 마음껏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음 지었다. 정씨는 "무엇보다도 유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제 유서를 쓸 수 있게 됐다"며 흐뭇해했다.

 김성자 교장은 "처음 어르신들은 자신이 한글을 모른다는 것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며 "그러나 단계가 올라갈수록 자신감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니어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제출한 일기와 편지 등 작품을 모아 수료식이 열리는 2월에 전시할 계획이다.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 산하 문해교육 과정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 산하 (사)서울시니어아카데미는 한글을 배울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을 위해 올해 3월 시메온학교 문을 열었다. 시메온학교 문해교육은 한글을 모르는 남모르는 아픔을 해결하고, 각자 삶의 주인으로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수업은 문해교육 과정을 통한 신앙교육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3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수업(총 40주간)을 진행해 왔다. 한글교육과 더불어 주요 가톨릭 용어를 배우는 교리시간도 있다. 지역 주민에게는 선교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산성당과 자양동성당에서도 시메온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시메온'이라는 이름은 1976년 한국교회에 처음 노인대학을 설립한 고 박고빈(시메온) 신부의 세례명에서 따왔다. 시니어아카데미에 따르면, 문해교육 잠재 수요자에 해당하는 중학교 학력 미만 인구(2010년 현재)는 전체 성인 인구의 15.7%인 577만 명에 달한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사단법인)서울시니어아카데미는?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가 2006년 설립한 (사)서울시니어아카데미는 노인에게 다양한 문화활동과 참여활동 등을 지원함으로써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2007년 노인요양보호사 및 노인상담사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2009년부터는 서울시 노인복지과 지원으로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니어아카데미는 이 밖에 정부와 사회기관들의 노인 관련 지원사업에 공모해 노인들이 교회 내 전문인력으로 활동하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풍부하고 다양한 노인사목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문의 : 02-765-8458, 서울시니어아카데미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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