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연중 제18주일(8/6)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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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진 [mjin] 쪽지 캡슐

2000-08-05 ㅣ No.1762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나해) 2000.8.6

 

우리는 살면서 지금 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경험을 한가지 이야기 해보면 제가 서울을 올 때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천 만 명이 넘는 서울 사람들 중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몇 사람 밖에 없으니 좀 자유롭게 살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본당 신부로 있으면서 무엇을 해 본다는 것은

항상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도 길러 뒤로 묶어 보기도 하고,

옷도 좀 자유롭게 입고, (지금 까지 청바지 한 번 입어 보지 못하였다.)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올 때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을 와 보니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십 몇 년 동안 신부로 살아온 틀에서 벗어나기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자유롭게 변화해 보려고 하면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이 지금까지 신부로서 만들어 놓은 틀이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육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하고 싶었던 것, 혼자 치킨 집에 가서 닭다리 하나 먹어 보는 것조차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새롭게 무엇을 변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변모 축일을 지내는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본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는데

그러한 모습을 지닌 분이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제가 서울에서 가지고 싶었던 변화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도 부족해

빵의 형상을 지닌다는 것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역시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흙으로 돌아갈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새로운 삶에 대한 변화를 힘들어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틀 안에 안주하고 싶을 때가 더 많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건져 주었을 때

그들의 행동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은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이집트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였던 것입니다.

노예 생활에서 진정한 자유인으로 변화하기 위한 고통이

자꾸만 옛날로 돌아가고 싶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변화보다 안주하는 삶이 더 쉽고 편하게 느껴졌던 것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린다는 것이고 그 버리는 것은

고통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 주시지만

그 모습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고 난 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그 변화의 모습을 위해 지금 우리는

우리 안에서 시작한 변화를 완전한 변화로 나아가도록

다시 말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완전한 하느님 자녀의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바꾸지 않은 우리의 모습,

아니 바꾸고 싶지 않는 세속적인 우리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초막을 짓고 거기서 살자고 하지만

당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산으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초막을 짓고 살자는 것은 변화를 싫어하고 안주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유혹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의 노력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더 잘 살고자 할 때는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완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변화의 몸짓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 주일 살아가면서 조금은 힘들더라도 완전한 하느님 자녀가 되는 그 날까지 변화의 몸짓을 계속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신: 처음 청량리 게시판에 들어 오면서 주일 강론을 실어 봅니다.

부족하지만 이쁘게 보아 주십시오. 종종 게시판을 들어와 보는데

게시물 번호가 얼마나 나갔는지 보다

읽고 마음이 상큼한 내용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당장은 번호가 많이 나갈지 모르지만

갈수록 게시판을 찾는 사람이 적어질 것 같다는 우려를 해봅니다.

죄송합니다. 처음 들어 오면서 말이 너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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