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시나이산의 별빛-순례의 여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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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0-07-22 ㅣ No.1642

 7월10일 낮1시30분에  출발한  KAL은 11시간이나 쉬지않고 날았다.서울과   이집트 카이로와는  여섯시간의 시차가 나서 현지시간 10일 오후 6시30분 도착. 비행기는  줄곳 해를 따라 왔으니  서울은 밤12시가 지났는데  이집트는 이제 막 저녁이 시작되는 오후 6시30분이다. 오늘 우리의 하루는 총 30시간, 여섯시간을 더 사니  괜히 부자가 된 것 같다.

카이로 공항에서 빠져 나오니 자동차  매연 가스가 먼 나라에서 온 나그네 코를  휘감는다.  연평균 강우량 20밀리에 사막에서 불어오는 먼지와 더운  바람,  유럽이나 다른 이웃나라에서 팔려온 중고차들,그리고 산유국이면서도 탈황하지 않은 싸구려 기름을  쓰는가, 이집트 공기는 매케하고  후텁지근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카이로 외곽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역의 호텔에 여장을 푼다.  내일부터 고대 서양사의 제일 첫 머리를 장식했던 이집트에서의  순례 일정이 시작된다.  구약 창세기 39장에서 보면 이집트는 형제들에게 버림 받고 팔려 온 요셉이 꿈을 해몽 해 줘 높이 들린  나라요, 모세가 4백30년의 긴 종살이에서 민족을 해방시켜 빠져 나간 출애급의 땅이요, 신약에서 보면  요셉 성인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의 일가족이 헤롯왕의 고난을 피해 피난을 한 곳이다.

 

 둘째날. 아침부터 해는 뜨겁다.  카이로 구시가지에  있는   예수피난교회를 먼저 순례했다.

이곳은 애급정교회의 일파인  콥트교파가 지키는  성당으로 성당은 거의 지하 부분에 들어있다. 콥트교파는  성가족이 헤롯왕의  고난(마태 복음 2장)을 벗어나기 위해 머무른  올드카이로에 성당을 짓고  10세기에는 개축을 하여  지켜온 것으로 알려진다. 성당은 오래된 탓인지 어둡고 퇴락해 가는듯 보였으나 소박한 이콘은 마리아의 잉태와  예수님의 탄생,그리고 이집트로의 피난등을 순서대로  잘 표현해 전달한다.  콥트교회에는  지금도  앞쪽에 소위 지성소라는 곳이 있다.이곳은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곳이다.  궁금해서 휘장을 살짝 들어 보았으나 안쪽으로 문이 잠겨있어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카이로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하였다.이집트는 다신교의 사회였다. 새도 뱀도 신이라 믿고, 황제 "파라오" 도 신으로 불사 불멸한다고 생각했으며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 죽으면 미이라를 만들어 놓고 영생을 빌었다.   피라미드도 또한 라를 위한 영생의 집으로 지은 것으로 이집트인들의 투철한 종교관을 생각케한다.

 

 세째날에는 카이로를 떠나 홍해와 수에즈운하를 구경하고 여덟시간동안  버스로 사막을 달려서 시나이산 인근의 마을 세인트 캐터린 빌리지에서  여장을 푼다. 가도가도 물 한 모금 마실 수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 두었더라면 차라리 이 고생은 안했을 것이 아니냐며    원망한다. 고독과 절망 속에 모세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하느님은 매일 아침 만나와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 주셨다.  시나이 산자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며 벌써 산에서는  영산의 신비한 정기가  느껴진다.

 

내일 새벽의 시나이산 등정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시나이산은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은 곳이다.

이집트에서의 나흘째 날. 새벽 1시30분에 깨어나  준비를 하고 산밑1,500미터 지점에서 집합해 해발 2,285미터의 시나이산을  2시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어두워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성지 순례자들로 산 밑은 북적댄다.플레시 불빛에 의지해 한발짝씩 떼어가며 산을 오른다. 등정에 자신이 없는 이들은  11달러씩을 삯으로 주고 베두인들이 재산 목록 1호로 생각하는 낙타등에 올라 탄다. 낙타를 타고 하는  편안한 순례 대신에 고행을 통해 깨닫음에 닿고 싶어 호흡을 고르며 밤길을 재촉한다.

사막의 밤하늘은 너무도 아름답다. 진한 잉크빛 하늘에 금방이라도 황금빛  별들이 쏟아져 내릴듯 찬란히 빛나고 있다. 언제 하늘에 저리도 별이 많았던가. 도시의 불빛이 한줄기 비추지 않는 오지, 구름 한점 가릴것 없는 맑은  하늘과  습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않는  건조한 사막의 공기  때문인가, 산을 오를수록 하늘의 별들은 더 가까이 크게 빛나고  있다.

 시나이산을 오르며 고대인들이 왜  천문학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었던가와  예수님의 탄생을 별빛을 통해 알고 따라 온 박사들이나 양치기들의 혜안이  새삼 느껴졌다.

 사막의 밤 하늘 빛깔은  주위가 밝아올수록 엷어져 간다. 인디고 블루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엷어져  마침내 투명한 청자빛 하늘이 된다. 그리고  한가운데서 오염되지 않은  태초의 모습으로  붉은 해가 힘차게 솟아 오르자, 여기저기 무더기 지어 숨죽이고  일출을 기다리던  순례객들 사이에서는 세계 각국, 다른 말의 성가가 터지기 시작했다.

 

  시나이산 초입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세인트 캐터린 수도원이 있다.

 313년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333년에는 국교로 정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세웠다는  수도원 한편에는 구약의 출애급 중 하느님앞에 나와 신발을 벗은 모세의 이야기와  - 잡목 숲에서 불이 나는데도 불붙지 않은 한 그루 나무-를 알려주는 한 떨기 식물( 마치도  덤불 딸기  같은 모습의)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늘어져 있다.

 

 남들이 늙었다고 하는 80의 나이에 하느님을 만나고  출애급을 이룬 의지의  모세를 생각하며 나 자신의 출애급은 언제부터 였나 , 그리고 매일 매일  자신을 얽매고 있는 온갖 것 들로부터의  탈출을 시작해야 할 나의 출애급을 다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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