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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떠나는 성지순례[3] 첼레,라베르나,몬테까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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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5-09-27 ㅣ No.1904

8. 8월31일(수)맑음. 트라시메노호수,큰 섬,코르도나의 성녀 마르가리따 성당,
첼레 은둔소(Le Celle), 라베르나 오상경당 미사(평일미사).

 

 

트라시메노 호수에 있는 3개의 섬중에 큰섬.

 

프란치스코성인께서 첼레은둔소에 계시다가

1211년 사순절 40일동안 이 큰섬에서 단식하시며 지내셨다고 한다.

 

 

큰섬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성당- 먼지 쌓인 가대, 빛바랜 벽화와 현대적 감각의 스테인드글라스.

 

고린토후서4,18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큰섬에 있는 성프란치스코의 낡은 목각상-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베드로전서1,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다." 여럴분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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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시메노 호수를 떠나 꼬르도나로 향하였다.

 

 

작은형제회의 막달레나라고 불려지는 코르도나의 성녀 마르가리따(축일:5월16일) 성당

 

"이사람 영혼은 어디에 갔을까?" 

회개와 겸손의 생활로 관상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신 성녀이며 움막에서 사셨고

작은형제들의 영적지도를 받으셨으며 1297년 선종하셨다.

성당안에 성녀의 유해와 성녀의 판넬화가 있다.

 

 

첼레은둔소 입구 Eremo delle Celle

 

 

첼레은둔소의 셀라(독방)

 

첼레는 셀라로 되어있으며, 까르첼리는 까쇼(감옥,종교적 관점)이라는 뜻이다.

첼레는 사진에서 본 것 보다 셀라가 훨씬 많이 있었다.

 

 

아름다운 첼레 은둔소

 

침묵과 고독 속에서 성인들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첼레 은둔소

 

첼레는 1500년대 부터 카푸친형제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옵세르반데스 분리역사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성프란치스코의 독방은 초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독방-첼레은둔소

 

성인께서 은둔소를 위한 회칙른 1223년 첼레에서 쓰신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둔소: 그렉치오(리에띠계곡), 첼레(꼬르도나),까르첼리(아시시근처) 알베르나(라베르나 산)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축일:6월13일) 아기예수님을 안고 계시고 백합을 들고 계신다.-첼레은둔소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여기에서 설교집을 썼다고 하며,

금언집으로 유명한 복자 에디지오형제(축일:4월23일)가 첼레은둔소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축일:7월21일)와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축일:5월20일) 도 여기에 계셨다고 한다.

 

 

첼레 은둔소 문 위의 벽화-예수님의 손과 성프란치스코의 수도복 입은 손, 십자가

 

 

아름다운 첼레 은둔소를 뒤로 하고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오상을 받으신 라베르나로 향하였다.

 

 

라베르나 오상경당으로 올라 가는 길

 

오른쪽 산위로 올라가면 관상의 특은을 입으신 베르나의 복자 요한의 움막이 있다.

 

 

라베르나의 대성당 마당에 있는 십자가

 

라베르나는 1213년 키우시의 오를란도 카타니 백작이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희사한 곳이다.

여기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1224년9월17일 오상을 받으신다.

 

 

매와 함께 계신는 성프란치스코의 상-십자가의 경당

십자가의 경당은 성인께서 1224년 거처하였던 움막위에 지어진 경당이다.

 

성인께서 두번째로 거처하신던 곳으로 오상 경당 입구에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오상을 받으신 곳(1224년9월17일) -오상경당.

 

육각형으로 테를 두러 유리를 씌워 보호하고 있었는데 기름 등잔불을 켜 놓았다.

장소가 주는 거룩함, 성지이다.

십자가상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몸에 오상을 받으신 프란치스코 성인.

"사랑하면 닮는다."

 

 

오상경당 제대 벽화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있는데 십자가상의 예수님과 성모님(고통의 성모마리아축일:9월15일),

사도 성요한(축일:12월27일),성프란치스코(축일:10월4일, 거푹한상흔축일:9월17일), 성예로니모(축일:9월30일),

슬퍼하는 천사들과 해와 달이 있고, 십자가 위에는 성령의 비둘기가 있었다.

그리고 테두리는 올리브나무를 표현한것 같다.

 

 

라베르나 오상경당에서의 첫미사.

제대벽화와 제대, 그리고 오상을 받으신 자리.

 

제대에는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라틴말로 씌여 있었다.

 

다음날은 오상경당에서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미사로 봉헌하였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오상경당의 가대에는 성프란치스코의 초기 형제들을 음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오상경당의 가대는 양옆으로 12개씩 24개의 초상이 있었는데 아쉬웠지만 형제들의 이름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으시는 것을 표현한 부조.- 오성경당 입구

 

 

오상경당으로 가는 길에 그려진 성인의 일생을 담은 벽화

 

매일 오후3시에 라베르나 대성당에서  이 벽화가 그려진 길을 따라 오상경당까지

예절이 있는데 14세기에 시작된 이후 한번도 끊긴 날이 없다고 한다.

 

 

라베르나 순례자 숙소의 커튼에는 예수님손과 성프란치스코의 손, 그리고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었다.

 

 

 

9. 9월1일(목)맑음.  La Verna 오상경당(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상흔축일미사)
몬테카살레(소금길산 은둔소,도둑경당), 리에띠에 도착(옛수도원 순례자숙소)

 

 

프란치스코 성인의 친필 편지(복사본)

 

오늘날 성인께서 쓰신 글, 편지중에 두 개만이 프란치스코의 친필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프란치스코가 레오 형제에게 주신 양피지 축복문이고(왼쪽)

다른 하나는 같은 레오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두 개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아주 소중한 보물로 보존되고 있는데,

원본 하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Spoleto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오상 경당에서의 미사 봉헌-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 미사로 봉헌 하였다.

 

"지극히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로 세상을 구속하셨기에,

저희는 여기와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성모자-오상경당의 제대 맞은편 벽(도자기)

 

 

OUR LADY OF THE STAIRS

성모자를 중심으로 왼쪽은 성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축일:8월10일), 오른쪽은 성녀글라라(축일:8월11일)

 

성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는 부제복을 입으시고 석쇠를 들고 계시며,

성녀글라라는 성체현시대를 들고 계신다.

 

오상경당으로 가는 곳의 계단 근처에 있는 벽화이다.

 

 

오상경당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피에따 경당

 

 

프란치스코 성인이 거처하던 바위 굴.

 

피에따 경당을 지나 오상경당 으로 가는 중간에 성인의 일생을 담은 벽화 중간에 있었다;

 

 

성 보나벤투라 경당 - 라베르나

 

성 보나벤투리는 1259년에 여기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한다.

제대위의 십자가는 예수님과 세라핌천사를 표현한것 같다.

 

라베르나에는 피에타경당을 비롯하여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경당,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 베르나의 복자 요한경당등이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축일:1월20일) 경당

 

 

거룩한 바위로 가는 길

 

 

거룩한 바위로 가는 길

 

"그의 마음이 내적으로 십자가에 못막히신 주님을 입을수록

그의 육신도 외적으로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입었다"(3첼라노2)

내적으로 십자가를 입은 데에 대한 왹적인 드러남, 그것이 바로 오상이다.

 

 

거룩한 바위 앞에 있는 십자가

 

 

라베르나 성당, 오른쪽에 해시계 광장, 왼쪽에 오상경당이 있다.

 

 

라베르다 대성당 측면에 있는 해시계

 

 

성녀 막달레나 경당

 

프란치스코성인께서 처음 거처하시던 곳은 막달레나(축일:7월22일) 경당이 되어 있었다.

 

 

라베르나 성당에 있는 피에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피에따는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지만

여기 계신느 피에따의 성모님과 예수님의 모습은 더욱 슬프게 보인다.

 

 

라베르나의 뽀르지웅쿨라-천사들의 성마리아 성당

 

 

라베르나의 뽀르지웅쿨라 내부 (도자기)

 

 

라베르나 성당의 유물관

 

 

라베르나성당의 입구

 

 

오상경당의 입구

 

도자기로 된 제대멱화와 그리고 성인께서 오상을 받으신 장소를 표시한 기름등잔불이 보인다.

그리고 입구 문 위에는 오상을 받으시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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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베르나를 아쉽지만 뒤로하고

몬테까살레(소금길산)은둔소로 향하였다.

 

 

몬테까살레 내부

 

 

몬테까살레 은둔소 제대(십자가, 성모자상)

 

 

지금도 카푸친형제들이 사용하는 가대에는 그레고리안탼트 책이 펼쳐 있었다.

 

 

여기에 유명한 프란치스코 성인이 예수님의 옆구리의 상처를 친구, 생명수를 마시는 성화가 있었다.

아! 이 성화가 여기에 있었구나!

 

 

“그리스도의 영혼 (Anima Christi)”           
           

“그리스도의 영혼은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성체는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혈은 나를 열광케 하시고,           

그리스도 늑방에서 흘린 물은 나를 씻겨 주시며            

그리스도의 수난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소서 “

 

 

성 보나벤투라 독방의 벽에 걸린 성화

 

보나벤투라성인은 1259-60년에 라베르나와 여기에 계셨을 것이라고 한다.

 

 

파도바의 상안토니오의 독방 벽에 걸려있는 성화

 

 

파도바의 성안토니오

 

안토니오성인은 1230년에 라베르나와 여기에 계셨을 것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강론집을 쓰셨을 것이며

1231년 파도바로돌아가서 36세라는 짧은 나이로 거룩한 죽음을 맞이 하였다.

 

그런데 예전에 있던 성인들의 성작은 도난 당하였다고 한다.

 

 

성인의 목각상

 

계단위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돌침대가 있었느데 너무 작았다.

어떻게 주무셨을까?

 

 

1200년대의 몬테까살레의 피에따(목각상)

 

이 피에따상은 미켈라젤로가 어렸을때 보았을 것이며

나중에 바티칸에 피에따상을 만들때 참고 했을 것이라고 한다.

(바티칸의 피에따보다 약 100년 앞선다)

 

 

프란치스코성인의 투니카(수도복)

 

 

성인들의 유물

 

 

이곳에 살았던 강도세람중 두사람의 유골

 

이곳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는 성프란치스코, 성보나벤투라, 파도바의 성안토니오 세분과

그리고 거룩한체 하는 사악한 강도 세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온다고 한다.

 

 

몬테까살레의 십자가

 

이곳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었기 때문에 순례자 숙소가 된적도 있고

소금을 운반하는 길이었기에 강도들도 많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몬테까살레 은둔소

 

 

몬테까살레의 입구

 

오른편 계단입구에 바티칸의 피에따 복사본이 있다.

 

 

아쉽지만 아름다운 몬테까살레를 떠나며......리에띠로 향하였다.

 

 

 

리에띠에서 우리 순례단이 묶었던 순례자 숙소.

 

이곳은 예전에 수도원이었는데 아주 고풍스런 숙소였다.

순례기간 대부분 수도원숙소에서 지냈다.

 

다음은 리에띠 계곡에 있는

폰테콜롬보, 그렉치오, 뽀지오부스토네, 라포레스타를 순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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